내가 남길 불꽃은
출장과 여행으로 50개국 넘게 다니며, 도착한 도시에서는 늘 갤러리나 뮤지엄을 찾았다. 그곳 어딘가에 숨은 '원작'을 마주하는 일은 오래 멈춰 있던 스위치를 다시 켜는 순간에 가깝다. 최근 찾은 DDP의 바스키아 전시 역시 그러했다. 스치듯 지난 전기가 오늘도 맴돈다.
처음엔 낙서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두고 바라보면,
1980년대 뉴욕 거리의 뜯겨 나간 벽의 잔해,
갓 태어난 힙합의 비트,
과잉소비와 인종차별을 정조준한 신호들이 차례로 떠오른다.
바스키아는 인물들의 머리 위에 삐딱한 왕관을 얹는다.
미술사의 중심에서 비켜난 이들에게 건네는 작은 면류관이자,
그 계보에 자신도 서겠다는 조용한 선언처럼 읽힌다.
지워진 문장, 다시 덧쓴 단어, 숫자와 기호들은 우연한 낙서가 아니라
고르고 지우고 남기는, 계산된 편집의 결과물이다.
거리의 낙서, 해부학 도감, 만화의 영웅까지,
바스키아는 세상의 조각들을 리믹스했다.
전시장을 나설 즈음, 나에게 남은 것은 한 문장이었다.
힙합의 선구자 팹 5 프레디는 그를 이렇게 말했다.
장 미셸은 불꽃처럼 살았다.
불은 꺼졌지만 열기는 남아 있다.
27세에서 멈춘 시간.
여전히 작업 중인 스튜디오 바닥을 들여다본 느낌이다.
각종 기호들과 지워진 단어들 사이를 걷다 보니
나의 결을 더듬게 된다.
나는 누구에게 왕관을 씌우고 있는가.
내 일상 속 해부된 형상들은 무엇인가.
내 이름 옆의 ©는 정말 책임질 수 있는 말과 이미지인가.
27세에 세상을 떠나며 바스키아가 남긴 스케치와 메모들 앞에서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남길 불꽃은 어떤 모양일까.
훗날 내 곁에 함께 했던 사람들은 그 불꽃을 뭐라 기억해줄까.
이 전시는 결국 내 캔버스 위에서 나는 어떤 모양으로, 어떤 단어로 불꽃을 피워낼 것인지 선택하라는 초대장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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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photo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