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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문 Nov 15. 2021

단청

A picture of many colors and designs

평소에는 산을 찾아가지는 않는다. 무릎에서 딱딱 소리가 나면서부터 오르막보다는 평지를 선택했다. 그나마 천천히 걷기 좋은 소리천을 2시간 정도 걷고 나면 땀이 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건강검진 병원 의사 선생님께서 "운동을 안 하면 죽습니다"라는 소리를 하셔야 의지를 불태워 산을 오른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심학산]은 능선을 따라 걷기 운동으로 최고의 코스다. 가을이 짙어져 가을 단풍이 물들다 못해 불타고 있었다.


CCM을 즐겨 듣는 나는 교회도 다니지 않으면서 약천사라는 절은 꼭 빼놓지 않고 들른다. 파주에서 유명한 절 중에 한 명소인데 커다란 불상이 둘레길 입구를 떡하니 지키고 있다.



단청 [丹靑]

옛날식 건물의 벽과 기둥, 천장 따위에 여러 가지 색으로 그림이나 무늬를 그림
A picture of many colors and designs


약천사는 대웅전보다 훨씬 크게 지어진 사찰이다. 심학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약천사는 고려시대 절터로 전해지다가 나름 특화된 형식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단청은 그야말로 촌스럽기 그지없는 색감을 가지고 있다. 사전적 의미로 음양오행설의 배경을 지녔다고 하는데 그 뒤에 감추어진 빨강, 초록, 파랑, 노랑 등등. 은은한 파스텔톤도 아니고 원색 그대로다. '깊이감'을 강조하기 위해 강렬한 원색을 선택했는지 아니면 세월의 흐름을 이겨내려고 사용했는지는 궁금해졌다. 형형색색의 원색들이 배열을 맞추고 기본 원칙을 세우고 있어 흡사 색칠공부를 연상시킨다. 단청의 질서는 건축물이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자연의 풍화작용과 사람들의 손길을 충분히 소화해 낼만큼 색감을 지녔다. 그냥 부드러운 파스텔 톤을 사용했으면 어떻게 달라질까도 무척 궁금했다.


단청을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해 보면 신기한 상상이 늘어난다. 얼핏 보면 똑같은 무늬 같은데 차분히 살펴보면 그 안에 또 다른 다양한 무늬가 연속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붓으로 채색된 연꽃잎은 이질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면서도 하나하나 다른 걸 표현하고 있다. 차라리 공장에서 대량생산이라도 하듯 찍어대면 쉽지 않을까도 생각했지만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이는 일이 불자가 말하는 속세에서 할 수 없는 일이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도시의 건축은 시대의 문화적 유산임에는 틀림없다. 심학산 약천사처럼 100년 이상을 내다보는 건축물이 아니더라도 세월의 역사를 고스란히 견뎌낸 동시대적 건축물이다. 약천사 처마 밑의 조명을 받으면 멋진 사선을 그리는 작품이 아니더라도 건축물의 작품마다 예술가의 긍지를 지니며 시공간을 같이 어울리게 한다.


건축사가 되려면 건축대학 5년제를 졸업하고 실무경력 3년 이상을 인정받아야 비로소 시험에 응시할 기회를 얻는다. 이렇게 긴 건축설계 경력을 가져야 가능한 것으로 변호사나 의사보다도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따져보면 변호사 업무가 생명과 직접 관계가 없음이고, 의사는 개체의 생명을 다루는데 비해 건축사에게는 수십, 수백 명의 생명이 좌지우지되는 다중이용 건물을 짓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그렇다. 건축물을 부동산 가치로만 보는 사회인식, 최근 요소 수부족 사태처럼 열악한 수주환경, 광주 건물 철거 붕괴사고 등 안전을 무시한 무리한 경비절감이 문제가 되곤 한다.


건축사와 의사는 대조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의사를 찾아온 환자는 아무리 신분이 높은 사람이라 해도 아파서 얼굴을 찡그리며 힘들어한다. 반면 건축사를 찾아온 손님은 그 누가 됐든지 상관없이 꿈에 부풀어 희망을 가지고 찾아온다.


삭막한 도시 풍경에 약천사처럼 단청이 잘 어울리는 집을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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