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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문 Jan 03. 2022

새벽 공기를 가르며

암행 순찰

잠은 보약이라고 했다. 잠이란, 지쳐가는 내 몸을 리셋해주어 새롭게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시간이다. 지난번 초저녁에 잠들어 깊은 잠을 잤을 거라고 칭찬하며 눈을 떴는데 낮잠처럼 고작 30분을 자고 일어나서 분통하고 억울해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도 그랬다. 깊은 잠을 잔 것 같지만 개운치 않은 하품을 했다. 두 눈을 번쩍 뜨기는 아까워 한쪽 눈으로 지그시 그것도 실눈을 뜨고 창가 쪽을 응시했다. 지난번 실수를 다시 되풀이 하진 말아야지 하고 일부러 핸드폰 시계를 보지 않았다. 짐작으로 '아마 새벽 3시는 됐겠지...'라고 생각해 보았다. 억지로 눈을 질끈 감고 잠을 더 청했다. 한 10분을 그렇게 눈만 감고 있다 보니 이 생각 저 생각에 더 이상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다시 잃어버리지도 않은 양을 찾아 떠났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끝내 양 열 마리도 못 찾고 핸드폰 시간을 확인했다. 말짱 황됐다. 새벽 3시. '음... 뭐지...' 나이를 먹으면 아침잠이 없어진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시계를 확인한 후 더 이상 잠을 청한다는 건 불가능 해졌다. 정신이 맑아져서 누워있는 것이 더 불편했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집을 나서본다. 그러고는 몽유병 환자처럼 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창을 반쯤 내렸다. 칠흑 같은 어둠과 새벽 공기는 코를 자극시키며 약간의 비린맛처럼 찝찔했다. 뭉쳐진 듯 낮게 깔린 새벽안개는 헤드라이트 조명에 더욱더 긴장감을 고조시켰고 두 손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운전대를 조였다. 도로 옆 잔디에서 풍겨오는 익숙한 풀냄새는 군 복무 시절 야간 보초근무 때를 떠올리기에 충분했을 정도로 진동했다.


이렇게 새벽에 갑자기 눈이 떠질 때 무작정 현장 감리를 떠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 첫 번째는 차가 안 막히기 때문에 현장을 여러 군데 점검하는 시간이 짧아진다. 신호등도 대부분 점멸등으로 바뀌어 있기 때문에 신호대기가 없어 운전하기 편하다. 낮에 운전하는 것보다는 시간도 절약되고 집중력이 더 생긴다.

- 두 번째는 현장 야간근무자 외에는 사람이 없다. 복잡하고 정신없는 현장 공정 시간에 감리를 하다 보면 작업자들도 분주하고 현장소장이 워낙 바쁘기 때문에 차분하게 공정을 체크하기가 어렵다. 이것이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새벽에 현장점검을 나오는 가장 큰 이유다. 낮시간 현장에 도착해서 업무와 관련 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다 보면 정작 중요한 감리를 소홀히 할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현장소장 눈치 볼 것도 없고 내가 확인하고 싶은 곳까지 꼼꼼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서 정확하게 감리를 할 수 있는 새벽 암행 순찰을 선호한다.

- 세 번째는 오전 6시 이전에 사무실 출근이 가능하다. 회사 지하주차장에 도착하면 습관처럼 매일 주차하는 자리에 차를 세운다. 평소의 출근 시간인 9시에 도착하면 주차장은 차들로 꽉 차고 입구에 만차를 표시하는 차단기가 내려와 차가 들어갈 수가 없다. 입구에서 20분은 대기해야 겨우 빈자리를 찾아서 차를 주차할 수 있게 된다. 일찍 출근한 보상으로 승하차하기 쉬운 주차자리를 찜하는 것은 묘한 쾌감이 있다.


'나는 전설이다'


새벽 동이 트기도 전, 흡사 [영화 '나는 전설이다']를 연상케 하며 도로를 헤매고 다닌다. 지구의 유일한 생존 인물인 양 감리현장을 새벽마다 이곳저곳 좀비처럼 누비고 다닌다. 새벽에 마주하는 현장의 공기는 다르다. 평소에 잊거나 스쳐 지나쳤던 자신에 대한 존재를 깨닫게 하고 내 안의 다른 자아들과 소통도 하게 된다. 심리적으로는 아주 멋진 시간이다.



공사감리세부기준 행정규칙   [출처] 건축감리 l 중간감리보고서 제출시기|



공사감리자는 위의 규정처럼 공사 진척사항을 공사 시공자로부터 제출받아 공정을 검토 확인하게 되어있다. 제출서류 중에는 공사감리일지, 공사현황사진 및 동영상, 의견 자료 첨부, 공사감리 체크리스트 등이 있다. 최근에는 지자체의 지도. 감독이 강화되었고, 감리를 부실하게 수행해 공사 현장에서 철근 배근 누락이나 가설 시설물 붕괴 등 잇따른 부실시공이 발생하게 되면 그에 따른 처벌이 크게 강화되었다. 부실공사 발생 현장에서 일부 감리자의 업무 소홀이 확인되는 등 감리자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어, 주택건설 공사 과정에서 감리자의 책임과 의무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감리업무를 게을리 해 위법한 시공이 발생하면 형벌 기준이 2년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책임이 무겁다.



나는 급변하는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다. 직업과 업종이 하루가 다르게 생겨날 때마다 이것을 예측하고 기민하게 대처해야만 했다. 현실은 미래지향적이기보다는 과거에 매달리는 느낌이 더 많다. 건축감리가 그렇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기보다는 서류제출에 더 비중을 많이 둔 탓이다. 탁상행정이 소탐대실(小貪大失)의 결과를 빚게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최근 새롭게 발휘된 건축 해체 감리 역시 공사 철거 시공 중 발생한 사고 때문에 생겨난 업종 중의 하나다.


감리와 관련된 글로 진행이 되어 예전에 실제 발생했던 사건을 실례로 '2015년 의정부 오피스텔 화재' 사고를 기억해 내었다. 한겨울 얼어버린 오토바이 키박스를 라이터로 녹이려다가 불을 내 5명이 숨지고 129명이 부상당하는 등 134명의 사상자를 낸 '의정부 도시형 생활주택 화재' 참사 피고에게는 금고 1년 6월이 선고됐다. 부실 공사를 한 건축주이자 시공자에게는 방화 피고인보다 더 무거운 징역 4년 6월, 허위 보고서를 작성한 공사감리자에게는 징역 4년이 선고됐다. 그동안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던 감리자는 현재 법정 구속됐다.


# 재판부 판결문 내용 중 #

*방화 피고인 판결 : 키박스를 라이터 불로 가열하고도 확인하지 않고 자리를 이탈해 134명의 사상자를 내 그 결과가 매우 무겁다"며 "과실이 복합적인 점, 깊이 반성하는 점, 건강 등을 고려했다"라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징역 1년 6월)

*건축주 판결 : 설계도면대로 공사하지 않았고, 화재 안전시설을 갖추지 않아 화재가 커지는 참사를 낳았다"라고 판단했다. (징역 4년 6월)

*공사감리자 판결 : 소방헬기 프로펠러가 일으킨 바람이 불을 키웠다는 주장에 대해 "헬기가 도착하기 전에 불길이 크게 번졌으므로 프로펠러 바람이 불길을 키웠다고 단정할 수 없다"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징역 4년)


당시 화재사고 기사에는 공사감리자가 허위로 감리보고서를 작성하였다고 기록되어있는데, 실제 감리자 얘기는 시공사가 방화문 '도어 클로져'를 설치하지 않은걸 지적하지 않아 발생한 감리소홀에 대한 주요 사안이라고 밝혔다. 의정부 오피스텔 화재 사고의 가장 큰 문제는 외단열공법을 시방서대로 공사를 시행하지 않은 점이 중요한 팩트라고 생각했다.



이렇듯 건축물 시공과정에서 인정에 치우쳐 스쳐가듯, 혹은 봐주기식 감리를 보게 되면 감리 소홀에 대한 형벌은 상상 이상으로 무겁게 책임이 주어진다. 134명의 사상자를 낸 화재사고의 경우 방화문의 제거, 비상구 '도어 클로져' 미설치, 탈출할 수 없는 창문의 구조, 좁은 복도 등도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만약 건축법에 건축물 유지관리 조항을 개선하여 매년 소방점검 등에서 재점검을 실행하였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인재였다. 더욱이 오피스텔의 경우 생명과 안전을 중시하는 건축물 유지 관리법 재정에 대한 명분이 더 절실해 보였다.


새벽 3시에 하루를 시작할 때면 하루의 시간이 48시간처럼 길게 느껴진다. 회사에 도착해서 그동안 미루었던 결재 건들과 계획 설계들을 다시 재정비했다. 온갖 잡일을 다 해내도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틈틈이 개인 일기도 쓰고 브런치에 글도 옮긴다. 부지런하게 하루를 살다 보면 퇴근할 때 보람은 두배로 커진다. 온종일 몸을 혹사시켜 지친 나에게 오늘 밤은 진정 꿀잠을 청하고야 말겠다고 맘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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