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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문 Jan 07. 2022

나의 이름은

건축물에 이름 짓기

이름의 사전적 뜻은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람이나 사물, 단체, 현상 등에 붙여서 부르는 기호]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름을 주제로 삼았으니 우선 사람의 이름에 대해서 살펴보아야겠다. 사람에게 이름은 단순한 호칭의 수단이 아니라 명예와 인격을 포함하고 있는 개념적인 명칭이다. 과거에는 손주가 태어나면 할아버지께서 마치 과제를 풀듯 이름을 직접 지어주셨다. 나의 이름도 몇 달을 고민하다 결정하여 출생신고가 늦어졌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래서 본 생일은 음력 8월인데 주민등록은 다음 해인 1월로 되어있다. 살다 보니 호적상 생일과 실제 생일이 다름으로 겪는 불편함이 꽤 많다.


작명소에 가면 하나같이 사람 이름에 따라서 운명이 바뀔 수 있다며 공을 들여 작명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려운 한자음을 따서 집안 '호'를 붙이거나 돌림자를 쓰기도 한다. (예를 들면 여자는 '자' 돌림으로 '미자', '경자'로,  남자는 '식' 돌림으로 '준식', '광식'으로 지어 촌스러운 이름이 지어지기도 한다. 대충 지은 느낌도 들고 크게 공들여 보이지도 고민한 흔적도 없어 보인다.) 사람의 이름을 잘 지어서 전부 큰사람이 될 것 같으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훌륭한 사람들만 넘쳐났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럴 바에야 차라리 별칭으로 '개똥이, 쇠똥이, 돌쇠'라고 불렀던 시절이 훨씬 정감 있다. 하지만 요즘은 시대가 달라져 별명을 이름으로 부르게 되면 엄청 놀림거리가 됐을 것이다. 우리 아이 이름을 '돌쇠' , '향단이'라고 불렀다면 동글이, 앵글이가 엄청 짜증을 냈을 것이 뻔하다. 이름이 뭐라고 그냥 부르기 좋으면 그만 아닌가.


한국인의 이름 인기 순위 [이미지:네임 차트]  전체 1위는 '지우' /  [부동산 114]



사람의 이름처럼 어떤 건물에 이름을 붙일 때는 건물이 속해 있는 사회와 문화를 바탕으로 지어지기 마련이다. 하물며 사람의 삶과 늘 함께하고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축물이야 말로 그에 걸맞은 이름을 지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수많은 건축물의 이름은 건축물의 용도와 성격 그리고 주변의 환경과 너무 동떨어진 경우가 많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리둥절한 경우가 많다.


우리 아파트 이름은 '신동아 파밀리에'이다. 파밀리에는 스페인어로 '가족'이라는 뜻인데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 명동 복잡한 구석 골목길에 자리한 식당 '숲길가든'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숲길이 없는데)
- 영등포 도심 속 '타임스퀘어' 복합쇼핑몰 (뉴욕에 '타임스퀘어' 광장처럼 형성하고 싶은 것인가)
- 읍면에 위치한 작은 빌딩 '롯데타워' (짜리 몽땅 건물이 잠실의 롯데타워와 견줄 만 한가)
- 지리산 입구에 '리버사이드 모텔' (산속의 강이 웬 말인가)
- 팔당 강 주변에 '로드 힐 사이드' (평온한 강가의 산속 언덕이 자리 잡고 싶다는 의미인지)
- 주택가의 '가로수 맨션' (맨션이란 대형 고급 아파트를 지칭.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이름이다)


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변에 위치한 '삼일빌딩'은 건축 당시 국내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삼일빌딩은 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건축가인 김중업 건축사가 설계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종로구 삼일로 입구에 위치했다고 하여 싱겁게도 '삼일빌딩'이라고 이름이 지어졌다. 여의도의 랜드마크 '63 빌딩'도 건축 당시 국내 최고층 건물이었는데 63층이라는 이유로 개성 없어 보이게  '63 빌딩'으로 건물 이름이 정해졌다. 그때 당시는 63층의 건물이 워낙 대단하다고 난리가 났었지만 현재는 63층 이상 건물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한 나라의 왕이자 권위의 상징인 대통령의 집무처 청와대의 이름도 파란색 청기와로 지붕을 덮었다고 그냥 '청와대'로 불려지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단지, 눈에 보이는 그대로  ‘푸를 청(靑)’에 ‘기와 와(瓦)’를 써서 ‘푸른 기와가 덮인 집’이라는 그 건물의 모양만 말하고 있다.


삼일빌딩   /  63빌딩   /  청와대  [이미지:네이버]


최근에는 브랜드의 중요성을 잘 알고 홍보나 광고효과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시그니처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아파트 건설회사는 자체 고유 브랜드를 가지고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브랜드명 역시 우아하고 예쁜 것 같지만 그 뜻을 알아보면 이미지에 걸맞지 않은 억지스러움이 있으며 너무나 생소하고 어려운 이름이 유행처럼 번졌다. 뜻과 의미를 알 수 없는 프랑스어나 외국의 지명 등을 도용하기도 한다. 우스갯 말로 요즘 며느리들은 연로하신 시어머니가 기억하기 어렵게 여러 단어가 조합된 국적불명의 어려운 아파트 이름을 선호한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아름답고 부르기 편리한, 건축물의 용도에 걸맞은 이름을 짓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건축물의 이름 또한 사람의 이름 못지않게 심사숙고하여 짓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대 궁궐인 경복궁, 경희궁, 덕수궁, 창덕궁, 창경궁의 기품 있는 이름과 경복궁 내의 근정전, 만춘전, 천추전, 경회루 등은 모두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가 없다. 옛 조상들이 이름을 짓기 위해 지혜를 모으고 고민했던 흔적들을 찾아보았다.


옛 건물에는 한자 어귀를 빌어 와 정신을 집어넣거나 풍경을 담기도 한다.
경복(景福) 궁 - 큰 복이 깃들인 궁궐..
운현(雲峴) 궁 - 구름이 넘는 고개 길의 집.
독수(獨守) 정 - 홀로 지키겠다. 무엇을 원칙을.
녹우(綠雨) 당 - 사시사철 녹색 비가 내린다 비자림 숲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지식과 경험을 통해서 판단하고 결정한다. 이름을 짓는데 너무 형식적이고 틀에 얽매일 필요는 없겠지만 이름이 갖는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다시 한번 새겨볼 때 우리들의 건축물 문화는 더욱더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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