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레온] 1. 경의 중앙선
쉰 한살, 그녀들의 사는 이야기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 피곤하게.
나는 그렇게 살기 싫더라.
대학원 2차 면접을 보고 온 날 경의 중앙선 능곡역에서 만난 친구가 나에게 꽂은 말이다.
인사치레로 물은 이야기인데, 면접 이야기는 너무 자세히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말문이 트이고 나니 어느 순간 면접위원을 흉내를 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제 그만하자.
싹둑 내이야기를 끊어줄 기막힌 타이밍이 되었다.
지하철이 도착했다. 경기도 시흥시로 향하는 ‘신천’행이었다. 내 인생의 처음, 서해선 지하철을 탔다.
친구가 왜 신천에서 장사를 하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르고 그저 신장개업에 초대되었기에 가고 있었다.
“추측하지 말자”
한 친구가 말했다. 서해선 지하철의 한 정거장은 일반 2호선의 서너 정거장만큼이나 길었다.
길었는지 천천히 가는 건지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만의 수다에 푹 빠졌다.
첫 주인공은 J였다.
“너는 왜 김포에서 일산, 어디? 탄현 근처로 이사 간 거야?”
“막내 고등학교 때문이지 뭐, 김포에서 40분 걸려서 일산으로 이사했어.
한 15분 걸리니깐 내가 다 살겠다 야”
이제 고2가 되는 막내 녀석의 학교와 학원 픽업 때문에 이사를 하게 되었다.
집을 산 것도 아니고 월세 백 만원 남짓을 내자니 돈이 새는 느낌이라고 했다.
“근데, 네 고3이 딸은 수시 넣었어?"
“ 다 광탈하고, 한 군데 되었어. H 대학교 전체 수석이라 4년 장학금 받아”
이렇게 겸손하게 말해도 되는 거야? 우리는 꽥 소리 질렀다.
광탈이 뭐야. 전체 수석이고 4년을 공짜으로 다닌다는데 겸손이 미쳤다야.
둘째가 고3인 K와 그리고 나는 J를 쿡쿡 찔러댔다.
웃을까 말까 하더니 어금니까지 보일 지경으로 J는 미소를 크게 지었다.
정말 효녀가 따로 없네.
현역에 대박이다.
우리는 더 이상의 칭찬과 감탄의 언어를 찾지 못해 계속 ‘대박이다’ 만 도돌이표로 외치고 있었다.
두 번째는 K 였다.
K는 웃으면 광대가 솟고 눈매가 하회탈처럼 가늘어진다.
세상 착한 얼굴이 이것이 아니면 무엇이랴.
내가 아는 세상 착한 얼굴의 K가 말을 꺼냈다.
“우리 고3씨는 재수하신다네. 그래서 독서실 끊어줬어.”
“도시락 싸주고 내보내고 저녁에 들어오라고 했어"
수능 점수가 어딘가 넣을 점수가 못 된다며 그래도 정시는 쓰겠다고 했다.
혹시 모르지 어딘가 실수로 받아줄 데가 생기면 좋겠다며 씩 웃는다.
수시도 논술도 모두 연습 삼아 지원했다며, 모든 것이 가볍게 끝나버렸다고 했다.
고3이 참으로 이렇게 쉽게 끝나면 허무할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J와 K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우리 막내, 6년 후 입시를 맞이할 막내딸이 고3이 되는 모습이 눈이 어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