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한살, 그녀들의 사는 이야기
“우리 아버님이 몇 주 전에 암 수술하셨어.”
내가 먼저 도넛 가게에 앉아서 다시 수다를 펼쳤다.
“수술 잘 마치셨고 지금 댁에 계셔. 역시 병원보다 집이 좋은 거 같아”
아픈 어르신들의 이야기는 단골 소재이다.
신장개업한 친구네 돼지고깃집은 3시에 문을 연다.
우리는 4시에 가기로 했고, 그동안 신천역에서 회포를 풀기로 했다.
무엇부터 이야기할까?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아무나 먼저 가족이야기를 시작하면 바로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야기가 늘어진다.
K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맞다. 나 119이 실려 갔잖아”
왜 왜? 쇼킹한 이야기를 왜 이제 하는 거냐며 우리는 어서 말하라고 재촉했다.
“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려고 일어나는데 몸이 너무 안 좋아 잠시 대기를 했어.
점점 어지럽더니 토까지 나오는 거야. 그래서 남편이 119를 불렀고 응급실에 가서 검사를 죄다 받았어.
아무래도 뇌쪽 이상인가 봤는데, 귀쪽인가봐. 수평을 맞추는 돌이 양쪽에 있다더라고,
심지어 물 위에 떠 있대. 그 돌이 늙으면 물아래로 떨어진다나. 암튼 그 돌이 떨어져서 어지러운 거래.”
늙으면 벌어질 일이라니 곧 나도 한번 크게 아플 것만 같아서 하나라도 놓칠세라 꼼꼼히 듣다가 이 또한 기억 못 할까 봐 핸드폰의 메모장을 열고 <물에 떠다니는 돌> 이라고 적었다.
기억을 못할 것 같은 메모였지만 썼다는 것 자체로 안심되었다.
이런저런 검사를 마치고 수액을 맞고 집에 오니 나아졌다고 했다.
이렇게 낫게 된 것도 천운이라며 친구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극한의 어지러움을 간증했다.
이번에는 K가 이야기를 꺼냈다.
둘째 고3이 이야기가 아니라, 곧 제대하게 될 체대 2학년 큰 아들 이야기였다.
“자취한다잖아? 군대에서 모은 돈으로 자취를 하겠다며 말이야, 그게 말이 돼? 서울인데 왜 자취를 하냐고? 심지어 집에도 잘 안 들어오면서 자취하면 그냥 생활비는 어디서 생기는 줄 아나 보지?”
언성이 높아지면서 어제 싸웠던 이야기를 우리에게 던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아들도 군대에서 갇혀 사는 게 힘들고 이제는 그만 혼자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이야기 종종 했다. 그래서 K 아들의 심정도 이해가 가긴 했다. 그렇지만 K 편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라 눈치 있게 참았다.
군대 제대 후 바로 집을 얻을 것 같은 기세를 부려뜨리지 못해 다시 아들과의 2차전을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특별할 거 없는 엄마의 치매 이야기는 특별한 주제에 끼지도 못했다.
다른 한 친구 S가 신천역에 도착하자, 택시를 불러서 개업 식당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