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한살, 그녀들의 사는 이야기
“S의 휴대폰이 없어졌는데, 혹시 너희들이 가지고 갔어?”
K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가끔 남의 휴대폰을 들고오는 경우가 있어서 물었나 싶어 옷주머니와 가방을 뒤져도 없었다.
옆에 있던 K도 홀딱 온 몸을 다 뒤졌다.
없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이미 지하철로 향하고 있었고 S와 J는 식당과 화장실, 그리고 도로위를 샅샅이 한 시간 이상 뒤지고서는 결국 경찰서에 분실신고를 했다.
나는 전자회사에 다니는 미안함으로, 인터넷으로 여러 폰찾는 방법을 검색하고 시도했으나 계정과 비번을 알아도 시원하게 찾아내기 쉽지 않아서 멀미 나게 찾다가 포기하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살때까지 우리는 그냥 잠자코, S가 메시지를 해주기를 여전히 기다리기로 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이 떠올랐다.
아까 고기를 굽다가 S가 내게 물었었다.
“너희 회사 임직원 몰에서 폰 좀 사려고. 얼마야? 내년에 3월쯤 살 건데. 그때 연락할게”
그런 뒤 두 시간 뒤에 폰을 잃어버리다니, 우체국에 다니는 S가 폰을 잃어버린 후 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니 애처롭고 짜증이 다 올라왔다.
신장개업의 액땜이려니 생각하고 싶은데 S가 마치 희생양이 된 것 같아서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30년지기 대학 친구 여섯 명은 카멜레온 통장을 만들어 매월 2만 원씩 저축도 하고 있다.
다섯은 결혼해서 아이들이 둘, 셋씩 있고, 한 명은 미혼이다.
대학교 전공과 무관하게 사장님, 회사원, 식당 주인, 방과후 선생님, 미술학원 실장님으로 살아왔다. 과거로부터 쓩하고 날아온 그 느낌이지만, 우리가 이렇게 고단하고 피곤하게 살 줄이야 정말 생각하지 못했다.
어이~ 청년들,
30년 뒤에 인생이 상상이 가시나요?
제발 취직해서 돈 좀 벌고 싶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취직했더니 하루하루가 고난의 연속이고 오늘만 지나기를 바라며 버틴 것이 벌써 30년쯤 되어간다. 이제 조금 편해지려나 생각하고 주위를 돌아보면 고만고만한 시달림을 여전히 받고 있다.
남들에게는 즐거운 일만 있는 것 같고, 나만 이렇게 힘든 것 같을 때가 제일 힘들었다.
가끔 만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처지는 그래도 나은 편이네 하며 위안을 받고 살았다.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 피곤하게!
이 말이 듣기 좋다.
열심히 산다고 인정해 주는 거 아닌가? 나에게 피곤함이란 목표 없이 사는 것이다.
목표를 이루고 난 뒤 보상 받는 느낌을 받으면 그 뒤 다른 목표 세우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얼마전 관광통역안내 자격증을 따려고 오픈 채팅방에서 면접 시뮬레이션 공부를 같이 했다.
그중에 한 분은 매년 자격증을 따는 것을 목표로 삼고 계속 도전하고 있었다.
지금의 내 모습이 딱 그러한 모습이다.
누구에게는 피곤함이 될 수 있을 그 고통이, 나에게는 피로회복제가 되는 것을 어느 순간 알아버렸다.
카멜레온이 살아온 인생이 제각각이듯이 우리의 인생 해결법도 제각각이다.
- 월세를 내고 살지만, 사업하면서 돈을 벌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그렇게 우울하지 않아.
- 결혼을 안하고 부모님과 살고 있지만 효녀가 되리라 마음먹었고 그래서 부모님과 사는 게 힘들지 않아.
- 어머니와 시아버님의 마지막 돌아가시는 험한 모습을 나혼자 지켜보고 감내해서 너무 괴로웠지만,
그분들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로 견뎌지더라.
-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아 맞벌이로 길러내며 잘 살았는데 이제는 나를 위해 아이돌 덕후로 살래.
- 가르치는 게 재밌어서 노년을 이걸로 먹고 살아보겠다고 생각해. 그래서 난 공부를 더 할래.
그렇지? 쉰 세살이라고 거창한 거 없다.
그냥 사는 거고 나머지 인생도 살아지는 거라 믿는다.
거위의꿈 中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난 그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