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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하세요 Sep 18. 2023

우리 동네 엄마들... 2번 엄마

매주 수요일 오후 2시 50분에는 첫째 딸아이가 방과 후 줄넘기를 하는 시간이다. 덕분에 오늘은 오전 그리고 절반의 오후의 휴가를 얻은 셈이다. 밀린 책도 읽고 소파에 벌러덩 누워 창밖하늘을 보며 게으름도 피워본다.

좀 있으면 딸아이와 또 함께 할 거란 것을 잘 알기에 이 시간은 더없이 달콤한 애피타이저다.


딸아이와 오후를 맘껏 요리하는 본격적인 식사시간이다.

"삐삐삐빅~~~ 엄마~~~~~~"

24시간 흥분과 설렘이 넘치는 첫째 아이는 현관문 여는 소리부터가 춤을 추는 것 같다.

'저 흥분을 어째 가라않히지.. 언제쯤 차분 해 질까...' 걱정이 가끔 들기도 하지만 경쾌한 눈망울에 나도 즐거워져 절로 웃음이 나온다.

"수진이 왔어..?? 오늘도 역시 학교가 재밌었어..? 특히 어떤 일이 젤 즐거웠니?"

"엄마 엄마 엄마..."

"아이고 숨넘어갈라.. 차분히  침착하게 제발..."

결국 삼키고 싶었던 내 염려를 아이에게 티 내고야 만다.

" 오늘 줄넘기 시간에 대박 대박... 있잖아... 수업 시작하려고 하는데 어떤 엄마가 다목적실에 들어오는 거야... "

"선생님 안 계셨어.?"

"있었지... 근데 그냥 막 이시유가 누구야? 하고 이시유를 부르는 거야... 그래서 시유오빠가 쳐다보니까..

갑자기 시유오빠한테 와서 막 손가락질 하면서 꾸중했어.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 으으"

"에? 그게 뭔 말이야.. 네가 지난번에 말한 시유오빠 말이야? 엄마가 듣기엔 동생들이랑도 잘 놀고 좋은 오빠라며.. 근데 무슨 큰 잘못을 한 건데..?"

"시유오빠 불쌍해... 시유오빠가 줄넘기하는 3학년 000 동생한테 욕하고 소리쳤다며 그 엄마가 혼내주러 온 거였어.. 그래서 오빠가 동생한테 사과했어.. 근데.. 그 애가 만날 오빠 놀리고 막 그래서 오빠도 화가 나서 그런 건데... 오빠는 땅만 보고 있었어... 나라면 진짜 억울했을 것 같아"

"............, 동생한테 욕한 것 잘 못했지만, 그래도 시유오빠 속상했겠다.. 그래서 수업은 잘했어..?"

"엄마가 걔가 얼마나 시유오빠 약 올리는지 보면 그런 말 못 할 거야.. 깐족깐족 정말 얄밉단 말이야. 오빤 우리한테 창피한 것 같았어 계속 땅만 쳐다보고 줄넘기했어... 시유오빠가 잘 못 한 거 없는데..."


딸아이에게 내뱉을 수 없는 육두문자를 속으로 수없이 삼켰다.

' 개또라이 아니야... 어떻게 한 쪽만 일방적으로 잘못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 그리고 설사 그렇더라도 선생을 개똥으로 보는 것도 아니고... 버젓이 옆에 세워두고 그런다고.. 아 진짜... 엄마들 욕은 다맥이고 있다 정말.. 지새끼 중요하면 남의 새끼도 중요한 줄 알아야지'

몇 번의 심호흡을 거치고 이성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그 친구 엄마가 선생님께 먼저 상의를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좀 아쉽네."

순화에 순화를 거듭해 내뱉은 말이다.


며칠 동안 시유가 맘에 걸렸다. 지난번 참관수업 때 봤던 기억 때문일까... 수업 전 다목적실 구석 바닥에서 쭈그려 책을 보던 아이, 6학년인대도 작고 왜소한 아이 그리고 황소 같은 그렁그렁한 눈망울이 유난히 슬퍼 보였던 아이...


"수진아~ 시유오빠 오늘 줄넘기 수업시간에 왔어.?"

"응 왔어.. 오늘은 쫌 조용조용 있어서 같이 못 놀았어.."

"이야~~ 오빠 정말 멋지다.. 창피했을 텐데 그래도 피하지 않고... 오빤 아주 그릇이 큰 사람인 것 같아.. 엄마는 걱정했거든. 왜 그렇잖아 시유오빠도 엄마한테 이를 테고 그러면 일이 혹시나 커질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엄마... 시유오빠.... 엄마 없어...."

"으헉..." 나는 이상한 신음을 토해내며 얼굴을 두 손에 파묻었다.

"얼마 전에 지나가다가 시유오빠가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는 거 들었어... 친구가 계속 놀려서 오빠가 엄마한테 이른다고 하니까.. 옆에 다른 친구가 너 엄마 없잖아라고 했어. "

딸아이는 빨개 진 두 눈을 벅벅 비벼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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