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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 Jul 12. 2021

비 오는 날 찾아온 친구

단편 동화

   

                                                        

  아직도 오네. 베란다에서 창밖을 내다보다 나도 모르게 입을 삐죽였다. 아침부터 비가 계속 오고 있다. 아까는 천둥도 쳤는데 무시무시했다.

  “으으, 추워.”

  나는 오돌토돌 소름이 돋은 팔을 쓸어내리며 창문을 닫았다. 여름인데도 몸이 으슬으슬 춥다. 오늘은 해가 아예 얼굴을 안 보여주려나 보다.

  “휴, 가기 싫어.”

  털썩, 거실 소파 위에 앉았다. 비가 와서 그런지 오늘은 지원이 집에 가기가 귀찮다. 선생님은 왜 수요일마다 독서일기숙제를 내시는 걸까? 우리 반 애들은 그것 때문에 수요일 날 신나게 놀지 못한다. 선생님은 수업 끝나면 놀면서 우리만 못 놀게 하고.

  “선생님, 치사해, 나빴어!”

  하지만 투덜대봤자 별수 없다. 숙제를 안 해가면 10분 동안 교실 뒤에서 수업을 해야 한다. 반장 민성이가 쳐다보는데 그럴 순 없다. 치이. 억지로 일어나 보조 가방을 챙겼다. 독서록, 필통, 그리고 동화책 한 권을 넣었다. 2시까지 102동 지원이네 집에 가기로 했다. 혼자하면 시간이 오래 걸려서 요새 종종 같이 한다.

  나는 현관 앞에서 신발을 내려다봤다. 어느 걸 신고 가면 좋을까? 이것저것 살펴보던 내 눈이 스르르 인라인스케이트에게로 갔다.

  ‘안 돼, 안 돼, 엄마가 화낼 게 뻔하잖아.’

  비 오는 날 스케이트 신은 걸 알면 엄마가 정말 펄쩍 뛸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지금 외출중이다. 빨리 갔다 오면 감쪽같지 않을까? 그리고 바로 옆 동인걸 뭐. 바퀴로 빗물을 쫘악 가르면 정말 신난다. 히히히~.

  스케이트를 얼른 신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아파트 건물 입구에서 다시 하늘을 쳐다보니 회색빛이다. 오가는 사람도 없고 분위기가 으스스했다.

  “대낮인데 왜 이러냐, 빨리 가야겠다.”

  “찌악.”

  어, 이게 무슨 소리지?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났다. 나는 머리 위로 올리던 우산을 내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뭐지? 어디야?

  “앗! 참새다!”

  세상에, 깜짝이야! 하마터면 밟아버릴 뻔했다. 왼쪽 발 옆에 자그만 참새 한 마리가 있었다. 나는 탁 쪼그려 앉았다. 옆으로 누워있는 것이 참새가 분명했다. 신기해서 가슴이 찌리리했다. 눈을 최대한 크게 뜨고 자세히 살펴봤다.

  “살았나?”

  살아있다. 눈도 깜박거린다. 날개도 조금 움직이고 하얀 배도 볼록거린다. 그런데 잠깐만, 아무래도… 힘이 좀 없는 것 같다. 밤색 같고 셋째 고모의 염색한 머리카락 색 같은 깃털이 축 늘어져있다. 참새가 누워있는 자리도 젖어있다.

  “왜? 대체 왜 참새가 여기 쓰러져 있는 걸까?”

  나는 골똘히 생각해봤다. 이건 아주아주 심각한 사건이다. 참새는 늘 나무 위에 앉아있다. 가끔 차에도 내려앉고 놀이터에도 잠시 왔다 가긴 하지만 대부분 나무 사이를 날아다녔다. 비가 오니 나뭇잎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있어야 할 텐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팔짱을 꼈다. 이러면 집중이 잘 되기 때문이다. 뭘까? 무엇 때문일까? 혹시, 아까 그, 아, 맞다! 그랬을 수도 있겠다. 좀 전에 무섭게 쳤던 천둥소리에 놀라 나무 위에서 떨어져버린 것이다. 나도 엄청 무서웠는데 참새는 얼마나 더 무서웠을까?

  “불쌍해라…….”

  정말로 마음이 아팠다. 얼마나 세게 떨어졌으면 똑바로 서지도 못한다. 눈도 천천히 깜박거리고 배도 천천히 볼록거린다.

  “참새야, 많이 아프지?”

  참새는 도망칠 기색도 없이 가만히 있다. 눈만 까맣게 반짝거린다. 나는 등 부분을 손가락으로 살며시 건드려봤다. 어맛, 보드라운 깃털과 그 속의 말랑한 살이 손가락에서 느껴졌다. 이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제 걱정하지 마. 내가 구해줄게.”

  더 이상 고민할 것도 없었다. 나는 결심했다. 참새를 집에 데려가야겠다. 안 데려 갈 이유가 없었다. 참, 엄마, 그러게 엄마가 좀 문제이긴 하다. 엄마는 동물이라면 죄다 싫어하기 때문이다. 작년에 비숑 강아지 한 마리를 얻었는데 결국 할머니 댁에 보냈다. 엄마는 냄새와 털을 참지 못했다. 게다가 알레르기비염까지 있었다.

  “서진아, 엄마 너무 힘들어. 부탁이야. 에에취~.”

  코를 잡으며 이렇게 얘기하는데 어쩔 수 없었다. 엄마도 밉고 비염도 미웠다. 휴. 하지만 엄마 잘못만은 아니다. 나도 참지 못하는 게 있으니까. 강아지 별이와 난 한달 동안 함께였다. 눈이 특히 예뻤는데. 할머니댁에 데려다주고 온 날, 나는 내방에서 혼자 울었다. 엄마가 미안하다고 했지만 별로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얜 다르다. 손바닥만 하고, 환자잖아! 내 소원이라고 말해야겠다. 만약, 그래도 ‘환자든 뭐든 애완동물은 절대 안 돼! 설마 잊은 건 아니겠지?’ 하며 내쫓는다면 이번엔 참새랑 같이 나도 집을 나와 버릴 거다.

  이런 생각을 하자 좀 슬퍼졌다. 만일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내가 없으면, 엄마, 아빠가 많이 외로울 거다. 하지만 별수 없다. 지금 이 참새를 지킬 수 있는 건 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새를 들어서 손바닥에 놓았다. 조금 떨렸다. 참새는 날개를 몇 번 파닥이다 가만히 있었다. 아주 가벼웠다. 그리고 손바닥이 점점 따뜻해왔다.      


  “이제 훨씬 밝아서 좋지?”

 나는 핸드폰의 손전등을 켜서 박스 옆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책상 밑이 둘만의 비밀 장소처럼 환하게 빛났다. 후훗,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정말 머리가 좋은 것 같다. 2학년인데 벌써 이렇게 똑똑하다니. 내가 대견스러울 지경이다. 그래, 내 방에서 가장 따뜻한 곳은 뭐니 뭐니 해도 이곳이다. 그래서 집에 들어서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다. 게다가 엄마가 택배 물건을 꺼내고 문밖에 내놓은 빈 박스를 참새 집으로 할 생각까지 해냈다. 참새가 있을 집이 없어서 큰일 날 뻔했는데 말이다.

  “찌이, 이악.”

  참새도 자기를 책상 밑으로 데려온 것이 마음에 드나보다. 조금 전부터 가끔씩 울음소리를 내고 있다. 나는 살며시 쓰다듬어주었다.

  “너 이름을 뭐라고 지어줄까? 찍찍거리니까 찌순이라고 할까? 아니야 아    니야, 찌순이는 꼭 생쥐 이름 같잖아. 그래, 반짝이라고 해야겠다. 눈이 반짝반짝 거리니까. 어때, 마음에 들어? 헤헤, 반짝이야.”

  히힛, 기분이 너무 좋다. 우리 집에 반짝반짝 친구가 찾아온 것이다. 반짝이는 이제 나의 네 번째 보물이 될 것이다. 내 첫 번째 보물은 우리 가족이고, 두 번째 보물은 내 통장에 들어있는 전 재산 542120원이고, 세 번째 보물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빠가 사 준 하얀 호랑이 인형인데, 드디어 네 번째 보물이 생긴 것이다. 정성껏 보살펴 주면 곧 병이 나아서 집안을 날아다니겠지. 만화영화에서처럼 내가 휘파람을 불면 쏜살같이 달려올 것이다. 정말 특별한 일은 이렇게 찾아오나보다. 나는 마치 반짝이가 말을 할 것만 같아 부리를 가만 바라보았다.

  “찌이, 짹.”

  어, 또 그런다. 반짝이가 몸을 비틀며 짧게 울었다. 좀 전에도 그랬다. 추워서 그러나? 방 안 온도는 이미 높였는데 이상하다. 아깐 수건으로 닦아주는 데 그러는 바람에 기절하는 줄 알았다. 무섭기도 하고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이건 반짝이한테는 비밀인데 실은 조금 징그러웠다. 배가 고픈지도 모르겠다. 어서 먹이부터 인터넷으로 검색해봐야겠다.

  어쨌든, 또 급한 것은 새장을 구하는 일이다. 작은 박스 속에서 계속 기를 순 없다. 무엇보다 반짝이가 무척 답답할 것이다. 엄마한테 안 들키기엔 좋지만 박스 속에선 날 수가 없으니까. 휴, 사야 할 게 너무 많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저금을 좀 더 해둘 걸 그랬다.

  방 안이 따뜻하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오고 있다. 나는 잠이 솔솔 온다. 박스 옆에 천천히 엎드렸다.

  꿈을 꿨다. 엄마가 커다란 박스가 되어있었다. 박스가 된 엄마는 네모난 종이 손으로 반짝이를 감싸 안고 어디로 사라지려고 했다. 내가 손을 뻗었지만 소용없었다. 박스 엄마는 뒤돌아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점점 멀어지는 엄마 박스. 안 돼. 반짝이 버리면 안 돼, 엄마. 제발. 반짝이 많이 아프단 말이야!      

  “띠띠띠띠 띠리릭.”

  “어?”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앉았다. 정신이 멍했다. 뒤이어 누가 신발 벗는 소리가 났다.

  ‘어, 뭐야, 엄만가? 엄마가 왜 벌써 왔지? 이모 집에 가면 실컷 얘기하다가  저녁 준비할 때쯤 오시는데.’

  “서진아.”

  엄마가 들어오며 나를 불렀다. 나는 급한 마음에 일단 방에서 나왔다.

  “어, 서진아, 집에 있었네. 지원이 집에서 숙제 다 하고 온거야?”

  큰 비닐봉지와 쇼핑백을 든 엄마는 빗방울이 옷 여기저기에 묻어있었다.

  “아, 아니, 어? 어, 다했어. 엄마 시장 갔다 왔나 보네. 은희 이모 집에선   빨리 나온 거야?”

  나는 정신 차리려고 애쓰면서 아무 일 없는 척 이것저것 물었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다. 숙제 못 해서 어떡하지? 그리고 반짝이에 대한 걱정이 밀려왔다. 왠지 배가 아팠다.

  “응, 살 것도 많고 이모도 저녁에 외출해야 된다고 그래서. 이모가 너 보고 싶대. 다음엔 같이 오래.”

  식탁에 짐을 내려놓은 엄마가 쇼핑백에서 사 온 물건을 꺼내며 말했다. 나는 멍하게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가 그런 내 표정이 이상했는지 물었다.

  “ 서진아, 왜? 엄마한테 무슨 할 말 있어?”

  “…….”

  “서진아?”

  “어, 아니, 그래 엄마, 다음에는 같이 가자.”

  나는 얼른 엄마 눈을 피하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가슴이 두근거려서 엄마 눈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식탁 옆에 서서, 나는 내 방 쪽을 봤다. 여기서도 내 방 책상 밑 박스가 보이는 것 같았다. 엄마는 저걸 못 본 걸까? 내 눈엔 그것만 보인다. 무엇을 숨긴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 정말 몰랐다. 반짝이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엄마는 귀도 밝은데.

  엄마가 아직도 동물을 그렇게 싫어할까? 비숑 별이는 벌써 1년 전 일이다. 그리고 반짝이는 털이 아니고 깃털이다. 사실 엄마도 새는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아빠가 오면 의논해 볼까? 아빠가 참새를 좋아하면 일이 훨씬 쉬워질 것이다. 2대 1이면 엄마도 조금은 생각해 볼 것이다.

  “따르릉.”

  전화가 온다.

  “서진아, 전화 좀 받아볼래?”

  식탁 의자에 앉아있던 나는 일어섰다. 엄마도 무엇인가를 들고 일어났다.

  “여보세요?”

  “서진야, 엄마가 너 양말 샀거든. 네 방 서랍에 넣어놓을게.”

  엄마가 내 방으로 가고 있다. 전화기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거기 서진이네 집인가요?”

  ‘어, 잠깐만, 양말 서랍은 책상 바로 옆에 있다!’

  “여보세요? 저 서진이 친구 지원인데요. 서진이 좀 바꿔주시겠어요?”

  “엄마! 잠깐만!”

  나는 수화기를 던지듯 놓고 내 방으로 뛰어갔다. 엄마는 새로 산 양말을 든 채 책상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엄마 등을 쳐다보았다. 아무 생각이 안 나고 힘이 싹 빠지는 것 같았다.

  “서진아, 이게 뭐니?”

  엄마가 허리를 굽혔다. 나는 반짝이를 생각했다.

  “에구머니나! 이서진, 너 지금.”

  “가만 놔둬요! 걔 지금 아프단 말이야!”

  나는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엄마는 내가 지른 소리에 놀라 돌아봤다. 나는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왠지 서럽고 속이 상해 울어버렸다. 꽉 죄어있던 마음이 아프게 풀어졌다.

  “내 반짝이 지금 아프단 말이야. 다 죽어간단 말이야. 으아아~~.”

  나는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작은 박스 속에 누워있을 반짝이가 떨어진 나뭇잎 같았다. 내가 크게 우는데도 방안이 조용했다. 엄마도 조용했다. 나는 엄마가 박스를 들어올리는 것을 바라봤다.

  “이 녀석아, 다 죽어가는 새를 이렇게 두면 어떡해? 엄마가 길 건너에 있는 동물병원에 먼저 데리고 가 볼 테니까 문 잘 닫고 따라와. 거기 특수동물병원이라 조류도 진료한다고 들었어. 알았지?”

  엄마는 이렇게 말하고 급히 방을 나갔다. 이어서 현관문 소리가 들렸다. 눈물 때문에 눈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놓아둔 양말로 눈을 대충 닦고 일어섰다. 양말에서 아기 새 냄새 같은 게 났다. 비 오는 날 나에게 친구가 둘 생겼다. 아주 작은 친구 하나. 그리고 늘 같이 있어서, 가끔 다투기도 해서 잘 몰랐던, 실은 내 마음을 제일 잘 아는 큰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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