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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립소 Nov 21. 2022

인류애 충전

발표자 플래닝을 메일로 받은 지난달 말부터 이번 주 내내 날 괴롭힌 영어 발표는 말 그대로 망했다. 지독한 부담감만큼 내 노력도 쏟아부었다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기반을 잃고 허우적대는 내 영어 능력치 부족한 암기력이 환장의 콜라보를 토해내며 발목을 잡았다. 2주 동안 박물관을 몇 번이나 오고 갔고, 자료를 뒤져보며 작품에 대한 정보 공부는 완벽했다 생각했다. 누군가 그 작품에 대해 뭐든 질문해도 대답이 바로 튀어나올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모국어, 한국말로 말할 때이고 난 프랑스 학교 커리큘럼에서 영어 발표를 준비해야 했다. 일주일 내내 작문한 스크립트를 외었지만 내 영어는 말 그대로 쓰레기였다. 아무렇게나 튀어나오고 잊어버린 단어와 표현들을 상기시키려 이십여 분 내내 문장은 자꾸 끊겼고 선생의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듯한 찡그린 미간을 여러 번 보았다. 발표가 종료되고 역시 총체적 난국이라 생각했는지 선생은 다른 발표자들의 과정처럼 내 발표의 장단점을 학우들에게 묻지 않았고 "영어는 부족했지만..."으로 시작하는 평가를 읊조리며 당혹스러움을 정리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래 보였다. 내 발표를 듣던 동기들의 눈빛도 자꾸 어른거려 머리가 새하얘진 건지 역시 선생의 영어를 못 알아들은 건지 그가 말하는 평가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내가 공부할 리스트에 ‘영어 올렸다. 사표를 내던지고  나라 전문학교를 다니며 학업  부족한 내가 따로 공부할 것들   나라의 역사, 예술의 역사, 신화, 성경에 이어 다섯 번째로 포함되었다. 하루를 쪼개고  쪼개며 채찍질하고 나를 독려해가며 시간을 계획해도,  페이지의 프랑스 책을 읽는  30분가량을 할애하는 내가  목록들을  해결할  있을까. 수십  입으로 읽어보고 손으로 써가며 외운 내용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지능과, 할애되는 시간에 비해 머릿속에 남는  없는  공부 방식의 비효율성. 어떡해도 숨길  없는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인정해야 하는  괴롭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 솟아오르는 욕망들 때문에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손대 보지만 부정당한 결과는 자꾸 나를 무너지게 만든다.



수업 발표는 주말 야외 수업이었고, 아무리 행복한 토요일이래도 11월의 아침 바람은 생각보다 매서웠다. 몸도 마음도 차가워 오들오들 떨던 내게 동급생들은 "네 발표 덕분에 이 작품에서 미처 캐치하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 "와 드디어 우리 발표 끝났다. 오늘은 한숨 돌리자."라며 진하게 어깨동무를 해줬다. 하아, 이 친구들은 어디 마음 달래기 학원이라도 다니는 건가. 엉망진창으로 구겨진 자존심이 조금이나마 펴졌다. 친절하고 소중한 말들. 동급생들의 응원 아니었다면 우울한 마음은 주말 내내 나를 지배하고 있었겠지.


어영부영 괴롭던 수업이 끝났고 그들과 간단히 양파 수프를 먹고 헤어졌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오랫동안 걸었다. 소르본 클루니 캠퍼스부터 생제르맹 대로를 따라 파리 보자르 앞을 지나고, 카루셀 다리를 따라 센 강을 횡단했다.

오후 두 시가 넘어가자 햇살은 한결 따뜻해졌고, 누적된 걸음은 체온을 조금씩 올려주어 아침의 싸늘한 감정을 어느 정도 잊을 수 있었다. 파리 시내에 살던 시절엔 숨 쉬 듯 보던 익숙한 풍경들이지만 볼 때마다 눈부시게 화려하고 아름답다. 이 날따라 유난히 노랗고 붉게 물든 이파리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더 심금을 울려댔다. 오늘 유난히 울적한 작은 미물에겐 일상의 길목이지만 마음과는 달리 야속한 눈길이 자꾸 돌아간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카루셀 광장의 수많은 관광객들은 유리 피라미드와 루브르 건물과 함께 연신 셔터를 누르며 신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아마 그들의 사진 속에는 아무리 휘황찬란한 옛 궁전의 화려함도 그들의 행복함을 치켜세워 줄 액세서리가 되어 있을 테다. 한 걸음걸음마다 다채로운 관광객들의 기쁨을 마주하니 나 역시 만감이 교차한다. 처음엔 단순히 ‘난 오늘 기분이 별론데 당신들은 행복하구나’라는 별 뜻 없는 질투였다가, 수많은 미소가 스펙트럼처럼 셀 수없이 지나치니 ‘당신의 설렘과 기대만큼 파리가 아름다웠으면' 하는 바람으로 바뀌었다. 군중이 많은 공간은 여전히 힘들지만 때론 그런 노바디를 통해 예상치 못한 치유를 받는다. 빈말이라도 고마운 친구들의 위로(?)와 누군가의 수많은 행복들이 겹쳐져 내 입가에 스며들었다. 이렇게 며칠 버틸 기운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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