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장식미술관 특별전 '파리 백화점의 탄생' 관람 후기
루브르 궁 건물 중 마르산 관(Marsan) 한켠에 마련된 파리시립박물관인 "장식 박물관"은 루브르 박물관의 거대한 규모에 숨겨져 관광객들에게는 주목을 받지 못하는 곳이다. 하지만 디자인을 업으로 삼거나 관심 있는 관객들에게는 성지와 다름없는 장소이다. "쓸모 있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실현하며 프랑스의 예술 문화를 육성한다"는 모토로 운영 중인 파리 장식 박물관은 회화는 물론 조각품, 도자기, 태피스트리, 가구 등을 어우르며 과거의 클래식함과 현대의 그래픽 아트, 패션까지 아우르며 약 150 000점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시대별, 테마별 12개의 상설 전시관을 보유하고 있는 알찬 박물관인 파리 장식 박물관. 다만 현재 상설 전시관은 공사 중이고, 파리 백화점의 탄생이라는 특별전을 지난 올 4월부터 진행 중이다(안타깝게도 이 특별전은 지난 10월 13일을 마지막으로 종료되었다). 이 특별전에서는 파리 고유의 발명품인 백화점을 산업혁명이라는 커다란 인류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조명한다.
산업혁명은 부르주아지라는 신흥 귀족을 만들었다. 산업 종사자, 은행가, 상업에 종사하던 이들은 자유주의의 혜택을 고스란히 영유했다. 부르주아지에게는 전통 귀족을 모방하면서도 그들의 품위를 넘어설만한 라이프 스타일을 중요시 여겼고,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기 위해 의복은 중요한 요소였다. 구매력이 커진 새로운 엘리트 집단은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장소 중 하나인 백화점을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백화점에 모여 자유롭게 상품을 구경하고, 정찰제를 도입해 가격 흥정 없이 모두가 동일한 가격에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혁신의 공간이었다. 오트쿠튀르 부티크와는 달리 백화점은 다양한 상품군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의 문턱을 어느 정도 낮추는 역할도 했다. 대량생산이 가속화되며 백화점은 더 많은 사람에게 열렸고 백화점은 소비의 변화 중심에 있었다.
이번에 전시된 다양한 종류의 자료들은 당시의 소비문화가 패션을 중심으로 얼마나 활발하게 움직였는지를 증명한다.
대량 생산을 바탕으로 상품의 판매량을 더욱 올리고자 19세기의 백화점은 매달 전략상품을 선정하여 특별 판매를 기획하였고 오늘날 바겐세일의 원조인 "sold"도 착안하였다. 1월에는 침구류, 6월에는 바캉스 용품, 8월 말부터는 학용품전, 11월은 정기세일. 이러한 백화점 마케팅은 지금까지도 그 문화가 남아 있다. 상업적 연간 달력은 광고로 만들어져 신문 등의 미디어에 게재하거나 직접 고객들에게 카탈로그를 배포하는 직접적인 캠페인으로 이루어왔다.
파리 백화점의 최우선 타겟 고객이 파리의 여성이라면 두 번째 타겟은 아이들을 통해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어머니 고객층이었다. 가정 내 소비를 담당하는 여성들은 지금까지도 백화점의 핵심 고객층인 만큼 어린이 제품 판매 전략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발전이었다. 또한 21세기 인구 증가, 계몽주의 사상의 발전, 부르주아 가족 모델의 성공으로 인해 어린이의 위치가 급격히 바뀐 이유도 있다. 과거와는 달리 아이들에 대한 보살핌과 교육은 더욱 세련되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서구사회에서는 고대부터 내려온 에트렌느 (étrenne, 연말, 새해 선물) 문화와 어우러져 장난감은 백화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코너 중 하나였다.
대량 생산은 곧 대량 판매라는 과제를 안겨주었다. 파리의 백화점들은 더 많은 판매량과 빠른 재고 회전을 위해 통신 판매라는 새로운 상업 시스템을 도입하여 이 문제를 해결했다. 때마침 등장한 철로 덕분에 대량 운송이 가능했기 때문에 배송에도 문제가 없었다. 파리의 백화점들은 매년 발행하던 카탈로그를 매 시즌 발행으로 늘이며 고객 기반을 파리를 넘어 지방, 해외로 확장하였다. 1870년대부터 카탈로그는 디테일한 삽화, 분야별로 발행하여 시대별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자료가 되었다.
비록 백화점이 소비의 문턱을 낮췄다 해도, 여전히 소비자들에게는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공간이어야 했다. 이러한 고객층의 근본적인 욕망을 겨냥한 '예술 공간 마케팅'도 주목할 만하다. 파리의 백화점들은 자체 아틀리에를 운영하며 예술가들과 협업해, 고객들이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 갤러리 역할까지 자처하며, 문화적·예술적 중심지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특별전은 백화점의 역사를 통해 산업혁명 이후 변화된 현대 소비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한 세기를 거슬러 올라간 역사의 산물들을 보며 소비의 사회적·문화적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경험이었다고 할까. 모처럼 박물관의 교육적 역할을 충실히 다한 전시를 만나서 기분이 좋았다. 굿즈 샵을 둘러보며 도록을 구입하고 싶었지만, 50유로에 가까운 가격은 더 깊은 울림을 주는 전시를 위해 남겨두기로 하고, 이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