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 드라마
내가 국숫집을 하는 곳은 나의 주거지이며 항아리 상권이다. 오며 가며 지나가는 유동 인구가 있는 곳이 아니라 항아리 안에 국한된 주택가와 사무실들이 있어 고정된 인구들이 소비하는 곳이다. 이들이 차를 타고 밖으로 나가는 날에는 조용한 상권, 그런 곳이다. 그러니 늘 보는 얼굴의 손님들이다. 하지만 오픈 3년이 넘었는데 처음 방문하는 손님도 많다.
점심 피크에는 면이 바로바로 나가기도 하고, 점심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직장인들에게 빠르게 메뉴를 주기 위해서 대기하는 삶아 놓은 면이 있다. 2시부터 피크가 아니므로 이때부터는 미리 면을 삶아 놓지 않는다. 주문이 들어오면 면레인지 온도를 8로 맞추고 물이 끓기까지 7~8분 정도 걸린다. 면을 넣고 3분 30초 삶는다. 12분 후 국수가 나간다.
저녁 7시 한 손님이 들어와 멸치 국수를 주문했다. 레인지 온도를 올린다. 바로 뒤 이어 우리 건물 7층 단골손님이 제육 덮밥과 만두를 주문했다. 덮밥은 바로 나갈 수 있다. 만드는데 1분이다. 전기밥솥에 있는 밥을 담고 제육을 얹고 고명을 얹어서 나가면 된다. 그래서 뒤에 주문한 밥 손님 밥이 나갔다. 레인지 물은 당연히 아직 안 끓는다. 한 손님이 묻는다.
“오래 걸려요?”
“물 끓이고 있어요.”
'오래 걸려요?'와 '얼마나 걸려요?'를 구분하는 나는 좀 느긋했다.
5분 차이로 국수가 늦게 나가더라도 바로 삶은 면으로 만들어 나가는 게 맛있고 좋다는 생각, 저녁 7시는 여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손님도 주문하고 처음에 얼마나 걸리냐, 시간이 없다는 말은 하지 않았으므로 보편적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국수는 12분 안에 나가니 말이다.
이제 물이 끓기에 면을 넣고 덮밥 손님 만두도 작은 바구니에 넣어 면과 같이 삶는다. 만두는 2분 30초다. 면은 3분 30초. 면과 만두가 익는 동안 싱크대 정리를 했다. 한 손님이 싱크대 정리를 하고 있는 나를 향해 말한다.
-환불해 달라
-면 들어갔는데요. (곧 나와요)
2분 30초가 되어 만두를 꺼내서 밥 손님에게 만두도 드렸다. 뒤에 온 손님은 메뉴를 다 받았다. 끓고 있는 면을 보며 면 건질 준비를 한다. 한 손님이 말한다.
-다른 체인점에서도 먹어봤는데 바로 나온다.
-체인점이라고 다 같지 않다. 면을 미리 삶아 놓지 않아서 물 끓이고 면을 삶아야 해서 그렇다.
이윽고 알람이 울리고 면이 나와 찬물에 헹구고 있어서 국수가 나가기까지 30초 남았다. 한 손님은 벌떡 일어나더니
-음식 주문하고 10분이 됐는데 어떻게 음식이 안 나올 수가 있느냐. 사장이냐?
-네.
-(화가 잔뜩 나서) 명함 달라.
-명함 없는데요.
-여기 무슨 점이냐.
-00점이요.
-이름이 어떻게 되냐.
-(‘이름? 나 000인데...’그러는 사이에)
-여기 본사는 직원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야? (화가 치밀어 오른다.) 죄송하다는 말이 그렇게 어렵냐.
-(이런 상황까지 온 건) 죄송합니다.
이미 문 옆에 서 있길래
-환불해 드릴게요.
-(홧김인지 됐다고 한다. 덮밥 손님의 테이블을 보더니 내 말을 흉내 내며) “만두 나왔습니다”. 만두까지 다 나갔냐.
-밥은 바로 나갈 수 있어서 먼저 나갔고, 만두는 2분 30초, 면은 3분 30초라 만두가 먼저 나갔다.
-또또 죄송하다고 안 하고 변명을 한다.
-만두가 먼저 나간 이유는 알려 드려야죠.
한 손님은 이내 나가버렸다.
덮밥 손님 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나는 다행히 주방 바(bar) 안에 있었다. CCTV는 주방 안에도 있고 홀에도 있다. 덮밥 손님은 입속에 만두를 하나씩 넣으며 모든 행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 손님이 길길이 뛸 때 혹시 눈빛으로 나를 보호해 준 것도 있는 것 같다. 한 손님은 행동과 말이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한 손님이 나가자마자 한숨 돌리고 덮밥 손님과 담화를 하려는 순간, 다시 오는 게 보여서 덮밥 손님에게 향했던 몸을 돌려 내 일을 하는 것처럼 싱크대로 갔다. 한 손님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환불해 주세요.”
“네.”
나는 키오스크로 나갔다. 한 손님이 죽일 듯이 노려본다. 사람에게 저런 눈빛도 보낼 수 있다니... 그러나 그 화살은 맞지 않았다. 한 손님이 내 옆에 서 있었지만 침착하고 의연하게, 키오스크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누르고 매출 관리로 들어가 좀 전의 멸치국수 5천 원 카드 결제를 취소했다. 카드와 환불 영수증을 함께 조용히 건넸다.
“끝까지 미안하다고 안 하네.” 그러고 가버렸다. 10분 동안 벌어진 일이다.
무조건 죄송하다고 해야 하나? 나는 시종일관 상황 안에 있었지만 상황 밖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폭력성이 느껴지는 졸렬한 권력을 느끼면서 말이다. 한 손님이 시간이 많아 내일 본사에 전화해도 괜찮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참 그동안 곱게 장사를 했구나. 우리 동네 손님들이 교양이 있었던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