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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va B Nov 15. 2024

모래가 만든 세계(4) - 모래에도 급이 있다

중동의 사막 지역에 위치한 사우디 아라비아에 모래를 수출한다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널리고 널린 것이 모래인데 모래를 수입한다. 낸시 팰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에 방문한 것에 반발한 중국은 대만에 경제 보복 정책을 시행했는데 이때 대만으로의 모래 수출을 금지하기도 했다. 대만은 사막 지역은 아니지만 그 흔한 모래를 경제 보복 카드로서 사용하다니 도대체 무슨 모래인 걸까?


기사에 나온 모래는 대부분 건설용 모래이다. 모래는 단순한 알갱이처럼 볼 수 있지만 모래의 종류와 특성은 다양하다. 건설 현장에서 쓰는 모래는 각이 져 있고 단단해야 한다. 그래야 시멘트를 부어 골재가 붙을 때 결합력이 강해서 단단한 콘크리트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사막의 모래는 오랫동안 풍화작용을 겪어서 대부분 너무 곱고 둥글다. 사막에 널린 모래는 건설용 모래로 사용할 수 없는 모래이다.


건설용 모래보다 더 귀한 취급을 받는 모래도 있다. 건설용 모래는 1톤에 몇 달러면 살 수 있지만 아이오타 주의 모래는 1톤에 1만 달러에 판매된다. 이 모래는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반도체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최고급 모래이다. 반도체 웨이퍼는 실리콘으로 만들어지는데, 실리콘은 지구에서 가장 풍부한 원소 중 하나이다. 그러나 문제는 실리콘에 조금만 불순물이 섞여 있으면 반도체 칩이 제기능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리콘은 자연상태에서는 산소와 결합한 이산화규소(SiO2), 석영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석영을 순수한 실리콘으로 분리하는 과정이 상당히 까다롭다.


먼저 석영 덩어리를 강력한 전기 용광로에 넣어 산소를 제거한다. 그러면 메탈 실리콘이라 불리는 순도 99%의 실리콘이 남게 된다. 그러나 이 99%의 순도는 부족하다. 첨단 기기용으로 사용하려면 소수점 아래로 여섯 자리까지 내려가는 99.999999%의 순도가 필요하다. 태양 전지판에 들어가는 실리콘이 이 정도 순도를 자랑한다. 반도체 칩은 소수점 아래로 11자리까지 내려가는 순도가 필요하다.


메탈 실리콘에서 복잡한 과정을 거쳐 사염화규소(Silicon Tetrachloride)와 삼염화실란(Trichlorosilane) 2가지 화합물로 분리한다. 사염화규소는 광섬유의 코어를 만드는데 사용되고, 삼염화실란을 더욱 정제하여 만들어진 폴리실리콘은 태양 전지나 반도체 칩의 재료가 된다. 각 단계를 거칠 때마다 하나 이상의 회사가 필요하며, 순도가 올라갈수록 가격은 당연히 비싸진다. 처음 99% 순도의 실리콘보다 정제 과정을 거친 폴리실리콘이 10배는 더 비싸다.


폴리실리콘을 녹일 때 용기도 중요하다. 이미 극도로 순수한 물질이기 때문에 그냥 냄비를 사용할 수는 없다. 단일 물질로 만들어진 용기가 필요한데, 이 물질은 폴리실리콘의 녹는점보다 높은 온도를 견뎌야하며 폴리실리콘을 오염시키지 않아야 한다. 이 용기를 만드는데 또한 순도 높은 석영이 필요한데, 그런 석영이 나오는 곳중에 하나가 바로 스프루스 마을이다. 2020년 인구 조사 기준 거주민 2,000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에서 나오는 석영이 아니라면 순도 높은 반도체를 만들기는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2008년 스프루스 파인의 생산 시설 중 한 곳에서 화재가 발생해 모래 공급이 중단되었는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마비가 될 뻔한 적이 있었다. 현재 지구상에서 순도 99.99999999999% 실리카 모래를 얻을 수 있는 곳은 이곳 뿐이다.


광물 연구소 연구원인 존 슐란츠는 전 세계에서 온 석영 샘플을 조사한 결과 거의 모든 석영에 제거할 수 없는 오염물질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스프루스 파인산 석영은 채굴된 시점에도 이미 높은 수준의 순도를 자랑한다. 또 다른 지역의 석영과 다르게 결정 구조가 열려 있어 불화수소산을 직접 주입하여 불순물을 녹여냄으로써 순도를 한층 높일 수 있다. 일부 오염 물질이 있는 스프루스 파인산 석영은 고급 휴양지 해변이나 골프장 벙커의 모래로 사용된다. 2008년 아랍에미리트의 한 골프장은 고급스러운 벙커를 만들고자 이런 모래를 4,000톤이나 수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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