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를 참지 못하는 이유
그리스로마 신화의 제우스는 신들만이 쓸 수 있는 불을 인간에게 전해준 프로메테우스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에 프로메테우스의 형제인 에피메테우스를 통해 인간들을 벌하기로 마음먹는다. 제우스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토스에게 진흙을 빚어 아름다운 인간 여성 ‘판도라’를 만들게 한다.
이후 에피메테우스와 판도라는 결혼을 하게 되는데 이때 제우스는 절대로 열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작은 상자를 하나 선물한다. 하지만 이 미스터리한 상자에 대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판도라는 상자를 열게 되었고, 상자 안에 있던 질투, 복수, 전염병, 욕심, 원한 등 세상에 온갖 재앙들이 쏟아지게 된다.
혹자는 궁금함을 참지 못한 판도라 때문에 세상이 어지러워 졌다며 그녀를 욕할지도 모르지만, 열지 못하는 선물을 준 제우스가 참으로 악독하다. 인간은 미스터리를 참기 힘든 존재이기 때문이다.
미스터리(mystery)의 어원은 그리스어 ‘뮈오muo’에서 유래되었는데, ‘눈을 감다’ 또는 ‘숨기다’라는 뜻이다. 우리가 상대방에게 어떤 선물을 줄 때 포장이라는 도구를 활용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포장만큼 실속 없는 관행이 없다. 결국엔 상대방의 손에서 찢기게 될 뿐이란 걸 알면서도 추가적인 비용을 들여 물건을 감싸고 리본을 묶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그러나 이 포장은 분명히 인간의 심리를 파고드는 부분이 존재한다.
포장의 본질은 미스터리이다. 포장을 하는 순간 아무렇지도 않았던 물건은 선물로 탈바꿈한다. 포장은 그것을 뜯어내기 전까지는 안에 든 물건이 무엇인지를 감추어 버린다. 설령 책을 포장지로 싸서 그 모양을 통해 물건을 짐작할 수 있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뜯어보고 싶은 심리적 가려움을 참아내기가 힘들어진다.
우리는 도대체 왜 이러한 미스터리를 참지 못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왜 하늘에는 신전이 있고, 바다 끝에는 절벽이 있고, 죽음 뒤에 사후 세계가 존재하며, 밤이 되면 나타나는 늑대인간, 드라큘라, 도깨비, 구미호 같은 생명체를 상상해내었을까? 도대체 이 능력은 생존에 무슨 필요가 있었을까?
뇌는 생존을 위해 현실에사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향후 일어날 일을 위해 예측모델을 만들었고 이를 패턴화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이러한 패턴에 벗어나는 일들이 발생하게 된다. 그럴 때 우리의 뇌는 ‘주의’라는 자원을 소모하면서 예측에서 벗어난 일에 집중하도록 하였다. 이를 관장하는 대표적인 물질 중 하나가 바로 도파민이다.
도파민은 쾌락에 관련한 물질로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것이 즐겁다는 느낌은 이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집중하라는 지시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의를 써야하는 자원은 예상 가능한 뻔한 곳에 쓰여지지 않는다. 이러한 자원은 우리가 가진 예측 모델에서 벗어난 예측 오류에서 쓰이게 된다.
문제 해결을 위해 항상 예측을 하는 인간의 뇌의 관심이 정확한 예측이 아니라 예상치 못했던 사실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뇌세포들이 예상 밖의 사건들에 민감한 이유는 명확하다. 그들의 예측 모델을 변경해야 할 수 있는 중요한 학습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UC 데이비스대학교의 연구원들은 피험자를 fMRI 기계 안에 넣고 그들에게 호기심을 유발할 만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선 이 질문과 전혀 관련 없는 인물 사진을 보여준 뒤 정답을 알려주었다. 스캐닝을 끝낸 피험자들에게 인물 사진에 대한 깜짝 퀴즈를 진행했는데, 피험자들의 호기심 정도가 높은 상태에서 봤던 인물의 얼굴을 훨씬 더 잘 기억해내었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질문을 듣지 피험자들의 중뇌에서 도파민 회로 활동량이 증가했다. 도파민이 분출되자 기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해마의 활동량도 증가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정신적 소프트웨어는 다른 동물들에게도 있지만, 인간의 두뇌는 미스터리한 서사에서도 도파민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판도라의 상자도 결국 이야기다. 인간에게 지구는 미스터리 박스였다. 사실 예측 기계로서의 뇌가 어떠한 답을 내놓지 못해 불안 상태를 지속하는 것 또한 좋지 않았다.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쳐 홍수가 나고, 화산이 분출하며, 땅이 흔들리고 사냥감들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는 일들은 먼 인류의 조상들에게 굉장한 스트레스가 된다. 지속되는 불안은 해마를 위축시키고 면역력 또한 약화시킨다. 그러니 우리는 이러한 불안을 사라지게 해줄 이야기꾼이 필요했다. 과거에는 주술사들이 이러한 역할을 맡았다. 그들은 신들의 노여움과 저주와 같은 이야기를 통해 나름의 인과관계를 설명해주었다. 믿음은 불안을 제거해주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