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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va B Nov 29. 2024

한 권의 책에는 자정장치가 없다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는 가장 위험한 사람은 단 한 권의 책만 읽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필자는 이 말을 깊게 새기며 함부로 '절대'와 '무조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딱 한 권의 책은 위험하다. 이론적으로 책에 기술된 내용에는 시간이 지나도 변화가 없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전설과 동화 이야기는 전해질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고 언젠가는 상당히 다른 이야기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은 고정된 텍스트 묶음이 덩어리 채로 움직이며 원칙적으로는 사본에도 동일한 내용이 담겨 있다. 변하지 않는다는 책의 특성은 선조의 종교에서 중요한 기술이 되었다. 언제나 오류를 범할 있는 인간의 말을, 언제나 변화하지 않는 책의 기록과 비교할 있다는 것은 신성한 신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종교인들에게 있어 훌륭한 기술이었다. 누구도 신성한 말씀을 잊거나 변경할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책은 불안전한 인간이 만든 것이었다. 신의 말씀이 적혀 있는 신성한 책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하고 떨어지지 않았다. 수 세기에 걸쳐 '랍비'라 불리는 학식 있는 유대인 현자들이 치열한 토론을 벌여 거룩한 책에 들어갈 말들을 정해갔지만, 어떤 이야기가 들어갈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갑론을박은 끊이지 않았다. 어찌저찌 완성된 책을 필사하는 과정에서도 오류는 발생했다. 필경사들이 고의로든 실수로든 책의 내용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 어떻게 장담할 수 있었을까? 


설사 이런 문구들에 오류가 없었다 하더라도 문제가 있었다. 책 한 권 안의 세상은 바뀌지 않지만 책 밖의 세상은 계속해서 새로운 상황들이 펼쳐졌다. 양을 치고 농사를 짓던 사람들의 삶에 초점이 맞춰진 이야기는 현대인의 삶에서 해석의 문제를 가져온다. 


예컨대 <성경>에서는 안식일에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쓰여있지만 무엇이 '일'인지는 자세히 기술되어 있지 않다. 랍비들은 안식일에 책 읽기는 일이 아니지만 종이 찢기는 일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을 수는 있지만 책을 찢어서는 안 되고, 안식일에 사용할 화장지는 미리 찢어놔야 한다.


또 <출애굽기>에는 새끼 염소를 요리할 때 그 어미의 젖에 요리해서는 안된다고 적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문구 그대로 해석하여 도축한 새끼 염소를 친어미의 젖에 요리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 문구를 확장 해석하여 육류와 유제품을 섞으면 안 된다고 해석했다. 그래서 프라이드치킨을 먹고 밀크셰이크를 마시면 안 된다.


이러한 일들은 한 권의 책이 오류가 없다는 믿음에서 발생한다. 이를테면 1992년 교황이 300년 전 갈릴레이의 종교재판이 잘못되었다고 공식적으로 사과할 때, 성경이 잘못되었다고 말하진 않는다. 성경의 잘못이 아니라 그것을 잘못 해석한 인간에 대해 사과한다. 랍비들이《구약》을 선별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유대인이 잊었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도 교회 공의회가《신약》을 편찬했다는 사실을 잊었다. 필자가 보았을 때 불안전한 인간이 만들어 낸 한 권의 책에서는 자장 작용의 시스템이 돌아가지 않는다. 한 권의 책이 절대적이라는 무오류성을 부과했을 때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수많은 관점을 묵살한다.



오늘날 헌법은 이와 조금 다르다. 비록 여러 가지 제약 사항들이 있긴 하지만 헌법은 수정이 가능한 자정 장치를 가지고 있다. 미국 헌법에서는 과거 노예제를 지지했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다면 계명을 수정할 수 있다는 헌법의 장치와 달리, 아무런 수정 장치가 없는 성경은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 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을 탐내지 못한다."라는 문구를 수정하지 못한다.(오해를 바로잡자면 필자는 비종교인이지만 성경을 무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성경에는 중요하고 좋은 가치를 전달하는 이야기도 많다.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자정 장치가 없는 시스템이다.)


혈압, 체온, 혈당 수치 등 우리 몸의 수많은 생리 지표들은 상황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특정 임계점보다 높거나 낮지 않도록 유지해야 한다. 잠을 자고 있을 땐 혈압이 조금 낮아지지만 운동을 위해 조깅을 나갔을 때는 혈압이 올라간다. 하지만 혈압은 일정 범위 내로 항상 유지된다. 우리의 몸은 수많은 자정 장치가 돌아가고 있으며 이러한 자정 장치가 고장 나면 죽을 수도 있다. 단 한 권의 책에 매몰되지 않고 계속해서 여러 분야를 읽어나가고자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 권의 책에는 자정장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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