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양에는 비슷한 구전동화가 존재한다. 계모에게 구박을 받다가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사는 <콩쥐팥쥐>와 <신데렐라> 이야기는 어딘가 비슷하다. 마찬가지로 당나귀 귀를 가진 서양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바로 손에 닿는 것을 금으로 바꾸게 해달라며 소원을 빌었던 미다스 왕이다.
미다스 왕의 귀는 처음부터 당나귀 귀였던 것은 아니었다. 음악의 신인 아폴론과 반인반수(半人半獸) 형태의 목동의 신이였던 판이 음악 시합을 했다. 심판이었던 티몰루스 산신이 아폴론의 승리를 선언했지만, 미다스 왕은 판의 음악이 더 아름다웠다며 불만을 표한다. 그러자 분노한 아폴론이 미다스 왕의 귀를 당나귀 귀로 변하게 만들었다.
미다스 왕은 자신의 귀를 모자로 가리고 다녔지만, 이발사에게는 어쩔 수 없이 당나귀 귀를 보여줄 수 밖에 없었다. 왕은 이발사에게 비밀을 지키라고 명령했지만, 입이 근질거렸던 이발사는 땅에 구멍을 파고 '미다스 왕의 귀는 당나귀 귀'라며 소리쳤다. 그 구멍 위에 갈대밭이 자랐고, 바람이 불 때마다 '마디스 왕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울려퍼져 결국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대한민국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와 흡사한 내용인데, 복두장(모자를 만드는 기술자)가 임금의 비밀을 알고 있었고 이 비밀을 대나무 숲에서 외쳤다는 점이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당나귀 귀를 가진 임금은 누구였을까?
신라의 응렴이라는 자가 18살에 화랑이 되었습니다. 응렴이 스무 살이 되던 해, 당시 신라의 왕이었던 /헌안대왕이 그를 불러 궁중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당시 왕들은 궁궐을 함부러 비울 수가 없어 바깥을 둘러본 사람들을 불러다가 경험을 듣곤 했었다.
응렴은 행실이 아름다운 사람 셋을 보았다며 이야기했다. 남들의 윗자리에 앉을만한 자가 겸손하여 아래에 있는 사람, 부유하면서도 검소한 옷차림을 하는 사람, 귀하고 세력을 가졌으나 그 위력을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헌안대왕은 눈물을 흘렸다.
신라 47대 헌인대왕 이전의 정치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실제 기록에 따르면 헌인왕의 사촌이자 43대 왕이었던 희강왕은 836년 헌인왕의 아버지를 죽였고, 2년 뒤인 838년 헌인왕의 6촌이었던 44대 왕 민애왕은 43대 왕인 희강왕을 죽였다. 839년 헌인대왕의 형인 45대 왕 신무왕은 44대 민애왕을 죽였으나 그 해 등에 난 종기인 등창으로 인해 죽었다. 이후 신무왕의 아들인 46대 문성왕의 시절도 어지러웠는데 대표적으로 우리가 해상왕으로 알고 있는 장보고의 반란이 있었고 문성왕은 이 장보고를 암살했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응렴의 이야기는 헌인대왕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또한 헌인대왕은 응렴의 어짊을 알아보고 자신의 두 딸 중 한 명과 혼사를 맺고 싶다고 했다. 집에 돌아간 응렴은 가족들과 이 일에 대해 의논했다. 첫째 공주보다 둘째 공주가 아름다우니 둘째 공주와 혼사를 맺는게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응렴이 이끄는 무리에 범교사라는 인물이 찾아와 첫째 공주와 혼사를 맺으면 반드시 세 가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응렴을 설득했다.
응렴은 첫째 공주와 결혼했고, 아들이 없던 헌인대왕의 뒤를 이어 왕의 자리에 올랐다. 왕이 된 응렴은 범교사를 불러 좋은 일 세 가지가 무엇이었느냐 물었다.
"제가 말씀드렸던 세 가지 좋은 일이 이제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큰 공주에게 장가들어 지금 왕위에 오른 것이 그 하나이며,
전에 그 아리따움을 흠모하던 동생을 쉽게 얻을 수 있게 된 것이 그 둘이며,
큰 공주에게 장가들어 돌아가신 임금님 내외분께서 매우 흡족해하신 것이 그 셋입니다."
왕이 그 말을 고맙게 여겨 그에게 '대덕' 벼슬을 내리고 금 1백 3십 냥을 내려 주었다. 왕이 죽자 시호를 '경문'이라 했다."
- 삼국유사 기이2 <48대 경문대왕>
이 경문대왕이 바로 당나귀 귀를 가진 오늘의 주인공이다. 응렴은 헌인대왕이 보았던 것처럼 어진 인물이 아니라 상당히 계산적으로 왕의 제의에 응했다. 실제로 즉위 3년 뒤, 헌인왕의 둘째 딸을 후비로 맞게 된다. 자신에게 그런 조언(꾀)을 한 범교사에게 '대덕(大德)'이라는 벼슬을 내렸는데, 말 그대로 덕이 큰 사람을 칭하는 말이었다. 범교사가 과연 그런 인물인지는 잘 모르겠다.
삼국유사에는 경문대왕이 왕위에 오르자 갑자기 귀가 당나귀 귀처럼 길어졌고, 침실에는 수많은 뱀이 모여들었다고 적혀있다.
신라 제 48대 경문왕이 왕위에 오른 후, 귀가 갑자기 당나귀 귀처럼 자랐다.
왕비와 궁궐 사람들 모두 이를 몰랐지만 복두장이 한 사람만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평생 말하지 않다가 죽을 때가 되어 도림사 대숲 가운데로 들어가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 외쳤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네!"
그 후로는 바람이 불면 대숲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네" 왕은 그것을 싫어하여 대나무를 베어 버리고 산수유를 심었다.
그러자 바람이 불면 그저 이런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네"
- 삼국유사 기이2 <제28대 경문대왕>
왕의 침실에는 매일 저녁 수많은 뱀들이 모여들었다.
궁궐 사람들이 겁을 내 쫓아내려 하자 왕이 말했다.
"과인은 뱀이 없으면 편히 잘 수가 없소. 뱀을 쫓지 마시오!"
왕이 잘 때는 매번 뱀들이 혀를 내밀어 가슴 위로 뒤덮었다."
- 삼국유사 기이2 <제 48대 경문대왕>
이것은 무슨 의미였을까? 실제 경문대왕의 재위 기간에도 정국은 혼란스러웠다. 재위 이후 7년간 계속해서 각종 홍수, 가뭄 등으로 인한 흉년이 잦았고 15년 동안 궁궐과 절 등을 재건축하는 토목공사를 벌이거나 연회장을 고치는 등의 노역으로 백성들의 불만도 잦아 반란도 종종 일어났었다.
임금의 귀가 커진다는 것은 백성들의 소리를 들어달라는 소망으로도 볼 수 있다. 원래 큰 귀를 가진 상은 부처의 상으로 자비로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경문대왕의 귀는 당나귀의 귀였다. 결국 복두장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이야기 하자 그 이야기도 듣기 싫어 대나무 숲을 베어버렸습니다.
왕실의 침실에 있는 뱀의 존재는 이렇다. 왕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왕에게 함부로 다가가지 못하는 존재인 동시에 왕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보호해주는 마음이 편한 존재이다. 화랑이 권력기반이었던 경문대왕이 화랑에 의해 정권을 유지한 것이라 추측된다. 경문대왕이 왕위에 오른 과정도 불안정해서 언제 왕위에서 쫓겨날까 불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삼국유사보다 조금 더 역사적 기록을 근거로 한 삼국사기에서도 경문대왕의 평가는 그리 좋지 않다.
경문왕 15년 여름 5월 용이 궁궐 우물에 나타나 곧이어 구름과 안개가 사방에서 모여들자 날아갔다.
가을 7월 8일에 왕이 죽었다.
-삼국사기
당시에 보통 용은 바다에 산다고 믿었다. 신라의 문무대왕은 그가 죽으면 죽은 뒤 용이 되어 왜군을 막겠다며 자신을 바다에 묻어달라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안대왕은 조그마한 우물에서 나와 구름과 안개가 모여들자 사라져 버린 용으로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