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이동>, <블랙미러 시즌3 - 에피소드 추락>
<블랙미러 시즌 3>의 첫 번째 에피소드 <추락Nosedive>가 그려내는 사회의 모습은 매우 흥미롭다. 이 사회에서는 나의 모든 행동이 남들에게 별점으로 평가받는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탄 사람을 이상하게 흘겨보지는 않았는지, 주문한 커피가 제대로 나오는 지와 같은 사소한 영역에서도 점수를 받게 된다.
주인공 레이시 파운드의 점수는 4.2점으로 이 점수를 지켜내기 위해 매일 아침 욕실에서 거짓 미소를 연습한다. 만나는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노력하며, 집으로 돌아와 하루 동안 나눈 사소한 대화를 강박적으로 점검한다. 어느 날 새로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구경하는데, 아주 마음에 드는 아름다운 집의 집세가 부담이 된다. 그런데 '우수 영향력자 프로그램', 즉 평점 4.5이상인 사람에게는 집세를 20% 할인해준다는 정보를 듣고 점수를 높일 방법을 강구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오비 블레스토라는 옛 친구에게서 결혼식날 신부 들러리 부탁을 하는 연락을 받게 된다. 나오미는 무려 4.8점의 평점을 받는 우수 영향력자이며 그녀의 예비 신랑 또한 높은 평점을 보유하고 있다. 레이시는 이번 기회를 통해 평점 높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감동의 연설을 하여 평점 4.5점을 만들고자 수락한다.
마침내 결혼식 날 공항으로 가는 길에 몇몇 사람과 마찰이 생겨 평점은 4.18점으로 떨어진다. 결혼식에서 곧 평점을 올릴 수 있을거라 생각해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공항에서 결혼식장에 갈 비행기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에 당황한다. 항공사 직원은 다른 비행편에 남은 좌석이 있지만 고급 승객들을 위한 것이라 예약을 위해선 4.2점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시는 점수가 깎인 것에 대한 억울함과 급한 마음에 직원에게 욕을 하게 되는데, 공항 안전 요원은 그녀에게 하루 동안 평점 1점을 깎고 차감 지수가 2배가 되는 페널티를 부여한다. 우여곡절 끝에 평점 1.4점의 트럭 운전자의 차를 얻어 타면서까지 나오미의 결혼식에 도착하지만, 그녀의 연설은 감동적이 아닌 충격적으로 끝을 맺는다.
사실 나오미는 학창 시절 레이시를 괴롭혔던 친구다. 레이시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리기도 했고, 심지어 레이시의 남자친구와 잠자리를 가지기도 했다. 나오미가 결혼식 들러리를 부탁하던 날, 레이시의 동생은 누나를 괴롭혔던 그런 여자랑 아직도 연락을 하냐고 말했지만 레이시는 그 과거를 부정했다. 그저 놀이였을 뿐이며 머리카락은 자신이 잘라달라고 부탁한 것이고 나오미와 자신의 남자친구가 잠자리를 가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나오미는 평점 관리사와의 상담을 통해 레이시를 신부 들러리로 선택했다. 모두가 평점 4.5점 이상인 하객들 앞에서 평점 4점 초반대의 오래된 친구를 불러 진정성을 보이면 0.2점 정도 오를 수 있을 거란 평점 시뮬레이션 때문이었다. 그러나 레이시가 결혼식에 가는 여정에 2.6점이 되자, 나오미는 결혼식에 오지 말라고 연락한다.
<추락>의 세계관에서 별점은 사회적 승인이다. 점수는 양방통행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평가받는 중압감으로 서로 예의만 차릴 뿐 속내를 내비치지는 않는다. 평점이 개인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사회에서는 남들의 평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회이다. 이런 사회에서 자기 모습대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레이시가 비행기를 놓치고 얻어탄 평점 1.4점 트럭 운전사는 안타까운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녀 역시 과거에는 평점에 연연하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말기암에 걸린 남편이 점수가 더 높은 다른 환자에게 치료 순서가 밀려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때 그녀는 생각했다. "다 좆까"
그 이후로 하고 싶은 말은 내뱉고 살면서 평점이 1.4점이 되버린 것이다.
숫자에 가치가 부여된 <추락>의 사회는 우리 사회와 다른 사회일까? 카카오 택시에서는 기사만 평점 평가를 받지만 우버에서는 승객도 기사의 평가를 받는다. 공유 숙박 플랫폼 에어비앤비에서도 집 주인 호스트와 여행객 게스트 쌍방으로 평가를 받는다. 기업 차원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하는 중국의 사회신용제도도 있다. 알리바바 계열사인 앤트 파이낸셜 서비스 그룹의 세서미 크레디트(Seasame Credit) 프로젝트에서는 공유차량업체나 결혼정보업체 같은 다른 플랫폼과 협력하며 사람들의 행동을 평가하고 점수를 매겼다. 점수가 600점에 이르면 약 1000달러를 바로 대출받아 알리바바에서 쇼핑할 수 있다. 650점 이상이면 보증금 없이 렌트카를 빌릴 수 있고 공항에서 VIP 체크인 자격도 얻는다. 666점 이상이면 앤트 파이낸셜에서 약 1억 원의 현금 대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700점 이상이면 재직증명서 없이 싱가포르 여행이 가능하고 750점 이상이면 유럽 각국을 쉽게 드나들 수 있는 비자 신청서도 받을 수 있다.
세서미 크레디트에서는 점수가 낮은 사람과 친구가 되면 어떤 불이익을 당하는지 경고하고 순위를 높이는 방법도 조언한다. 2017년에 중국 최고인민법원은 615만 명에게 지난 4년 동안 사회적 범죄로 인해 항공기 탑승을 금지시켰다고 발표했다. 그 밖에도 165만 명의 사람이 경범죄로 사회신용 블랙리스트에 올라 기차를 탈 수 없었다.
플랫폼 권위자의 영향력도 어마어마해진다. 가령 세서미 크레디트에서 공산당에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에게 신뢰 점수를 깎아버린다면 갖가지 사회적인 배제를 받을 수 있다. 평점이 높은 사람에게 주어진 보상으로 인해 사람들의 행동 방식을 통제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별점은 그 규모가 작던 크던 우리 사회에 점점 들어오고 있다. 이것은 '신뢰'라는 자본의 가치를 만들어낸다. 가령 낯선 해외 여행에서 맛있는 음식점을 찾고 싶을 때나 친절한 택시기사를 찾고 싶을 때 평점으로 이루어진 '신뢰' 또는 '신용'은 게으른 뇌가 효율적으로 선택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사진, 책, 영화, 음악 등 뿐만이 아니라 처음보는 사람마저 단순한 숫자로 판단하게 되었을 때, 그 숫자로 인해 사회적 인프라와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이 일상이 된 사회는 어떠한 모습일까? 점점 밀려드는 5점짜리 신용 자본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우리 사회는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