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가 만드는 혼돈의 역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산불은 분명 재앙이다. 해마다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대형 산불은 많은 생명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간다. 숲 속에 사는 동물들은 물론이고 숲을 이루는 식물들에게도 붉게 치솟은 화염은 모든 걸 집어삼켜 버린다. 물론 산불이 난 근처에 사는 사람에게도 인명적, 재산적 피해를 가져온다.
산불로 인한 연소로 인해 많은 온실가스와 오염물질을 방출하며 지구온난화와 대기오염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산불을 진화하는 데도 많은 자원이 소모된다.
산불이 가져오는 여러 부정적인 요인 때문에 건조한 날씨가 되면 '산불 조심'이라는 팻말 카드를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산불은 꼭 안 좋은 영향만을 가져오는 것일까?
1910년 4월과 5월의 기록적인 가뭄 이후, 6월의 심한 번개 폭풍으로 여러 건의 화재가 발생하였다. 8월 20일 강하고 건조한 바람이 유입되며 여러 건의 화재가 거대한 화재로 합쳐진 1910년 'Big Blowup'라 불리는 대형 화재는 단 이틀 만에 남한 면적의 20%에 달하는 산림을 불태웠다. 이 사건은 미국 산림청이 산불 관리 정책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산림 관리청 행정 직원들은 충분한 인력과 장비만 있었다면 이러한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당시 그 산불과 싸웠던 윌리엄 그릴리, 로버트 스튜어트, 페르디난드 실콕스는 완전한 화재 진압 정책을 수립한다는 일념 하에 1920년부터 1938년까지 산림청장을 지냈다.
산불은 본질적으로 국가를 침범하는 것이다.
산불 발생 시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어떤 방법으로든 진화하라!
- 1935년 미국에서 시행된 '오전 10시 정책'
모든 산불을 발견 후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진압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오전 10시 정책'은 신속하고 적극적인 산불 진압을 강조했다. 대규모 번지는 산불과 그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책이었다. 대형 화재를 통제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마음은 197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일부 연구에서 화재가 산림 생태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당시 통념을 뒤엎는 생태학자들의 새로운 관점은 이러했다.
Let it burn
사람 때문에 생긴 산불이 아닌 자연적으로 발생한 산불은 일정 단계까지는 불타게 놔두라는 것이었다.
1988년 번개로 인해 발생한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 화재 사건은 이 논쟁을 점화시켰다. 걷잡을 수 없는 규모로 산불이 커지자 2만 5천여 명의 사람이 산불 진화에 투입되었지만 결국 산불은 비와 눈과 같은 자연현상에 의해 진화되었다.
산불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탁 트인 공간을 좋아하는 벌레들이 늘어났고, 이를 잡아먹기 위한 새들이 몰려들었다. 남은 재를 양분 삼아 여러 식물들이 되살아났다. 거대한 산불은 자연적으로 진화되었고, 숲은 산불 이전보다 생명의 종과 서식 형태가 다양해졌다. 이는 산불이 생태계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보여주었다.
산불은 새로운 생명들에게 기회가 되기도 한다. 예컨대 세계적으로 가장 큰 나무에 속하는 자이언트 세콰이어 나무는 3000년이 넘도록 살 수 있다. 평균적으로 50~85m 높이까지 자라며 직경은 6~8m에 달한다. 이 나무의 씨앗이 담긴 솔방울은 섭씨 200도 이상에서만 벌어진다.
거의 산불과 같은 화재가 나야 씨앗을 뿌린다는 말이다. 세콰이어 나무의 이러한 번식 전략은 나름의 일리가 있다. 산불로 인한 상승기류가 씨앗을 더 멀리 전달할 수 있으며, 기존의 다른 성체 나무가 사라지며 더 많은 양의 햇빛이 땅에 도달하고 죽은 나무들이 거름이 되어 새로운 씨앗이 자라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일정 간격으로 발생하는 산불은 대형 산불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2010년대 중반 캘리포니아주는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었다. 그러다 2017년에는 엄청난 비와 눈이 내렸다. 6년 간의 가뭄을 해소할 만큼 엄청난 양이었고, 사막 지역에 있던 동네마저 푸른색으로 뒤덮였다. 이는 2018년 다시 찾아온 가뭄으로 인해 말라죽은 잎들이 캘리포니아 역사상 손꼽히는 대형 산불의 불쏘시개가 되었다.
호주에서는 자연적인 산불을 지켜보는 것뿐만 아니라 주기적으로 산불을 내기도 한다. 나무줄기나 낙엽과 같은 퇴적물이 계속 쌓이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통제할 수 없는 대형화재를 막기 위함이다.
비가 많이 내려 식물 성장이 촉진되는 동안에는 산불이 줄어든다.
그러나 그 식물들 이 이후 가뭄 때 말라 죽으면서 산불의 연료가 증가한다
- 미국해양대기청
산불은 단순히 보면 재앙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복합적이다. 많은 사안들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