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역설
습관은 뇌에서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저절로 하게 되는 행동이다. 자동화된 행동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이는 상당히 경제적이다. 매일 아침 출근하기 위해 몇 번 버스를 타야하는지를 검색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이처럼 우리의 뇌는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 적은 비용을 통해 저절로 행동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형성된 습관이 모두 좋다는 가정은 없다. 뇌는 생명에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가장 편한 길을 선택하고자 한다.
예컨대 풀이 우거진 길을 걷고 있던 자신의 우리의 머나먼 선조를 생각해보자. 그는 길을 걷다가 발 밑에 원통형의 기다란 물체가 똬리를 틀고 있는 듯한 형상을 발견한다. 비록 정확히 본 것은 아니지만, 그 즉시 높게 점프를 하고 전속력으로 그 물체로부터 멀어졌다.
도망을 친 후 천천히 다가와 확인해보니 그 물체는 어제 자신이 사냥을 하고 버린 밧줄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밧줄을 뱀이라고 오해를 하고 순간적으로 에너지를 분출하여 전속력으로 도망갔다.
정확성의 측면에서 보면 쓰지 않아도 될 에너지를 낭비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존의 입장에서 볼 때 이는 매우 합리적이다. 정확성을 추구하지 않고 무조건 도망가는 것이, 정확성을 추구하다가 죽는 것보다(똬리가 아니라 진짜 뱀이었다면) 훨씬 낫기 때문이다.
이렇듯 생존의 위협이 되는 순간 폭발적인 에너지를 사용하기 위해선, 그렇지 않은 순간에 체력을 충분히 비축해두어야 한다. 즉 근원적인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는 토요일 오전 아침, 침대에 누워 초코가 발려진 고열량 과자를 먹는 편이 우리의 뇌에게는 훨씬 자연스럽다. 그리고 이는 매우 편리하므로 반복하기 쉽다.
반복은 습관이 된다. 이렇게 뇌에 자리잡은 습관을 고치려면, 편리함에 반하는 행동을 반복해야 한다. 습관이 고치기 어려운 이유는 이 때문이다.
심리학자 캐롤 드웨크는 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생각하고 실패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두 가지 사고방식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고정형 사고방식으로 사람이 가진 재능이나 능력이 고정되어 있고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이다. 타고난 능력을 노력으로 이기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반면 성장형 사고방식은 재능과 능력이 노력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실패를 통해 성장과 발전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현대의 뇌과학은 뇌의 가소성이라는 개념을 밝혀내며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변화에는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을 기대하면 안된다.
뇌가 이미 구축해둔 도로의 경로를 바꾸고 공사하는 데는 일정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도로를 계속하는 한 뇌는 실제로(물리적으로) 변화한다. 변화란 무엇인가 변화하는 것이지만, 변화가 진정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변화가 변화하지 않는 지속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이 변화의 역설이다.
애초에 시도조차 없다면 뇌는 변화하지 않는다. 고정형 사고방식은 이 시도를 무의미하게 바라보기 때문에 변화를 바랄 수 없다.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선 변화와 반복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져야 하는 진짜 이유가 밝혀진다. 성장형 사고방식처럼 내가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반복을 지속할 수가 없다.
뉴런은 적어도 스무 번은 반복해 주어야 학습한다.
<마음의 기술> 中
뉴런이 어떤 정보를 저장하고 이해하는데는 적어도 20~30번 반복이 필요하다고 한다. 적어도 20~30번이다. 이를 습관화하기 위해선 더 많은 반복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작은 변화부터 시도하는 것이 좋다. 운동을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이 다짜고짜 10KM 마라톤으로 무리하면 심한 근육통과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 번의 충격적인 고강도 운동보다는 가벼운 운동을 반복하는 것이 낫다. 자신에게 알맞은 난이도로 과제를 쪼개어 반복해서 수행한다. 반복을 통해 뇌가 익숙해지면, 조금씩 난이도를 높여가야 한다.
반복되어 고착된 행동은 반복으로 변화할 수 있다. 더 효과적인 습관을 들이고 싶다면 '인내'가 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 마리 제비가 왔다고 해서 봄이 온 것은 아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