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빠히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띠네 뮤지엄 May 25. 2023

빠히 일기 (5) 아코디언, 낭만 그 자체


울려퍼지는 아코디언, 낭만 그 자체

The echoing accordion sound, pure romance itself.




파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소리는 '아코디언' 이다.

역동적인 아코디언 소리는 몸도 마음도 들썩이게 만든다.



"어깨야 그만 들썩여, 일단 좀 참아봐"


가고싶은 목적지가 달라 쿨하게 개별 여행을 하기로 했다. 다이애나는 오르세 미술관으로, 나는 뚜렷한 목적지 없이 파리 시내를 탐방했다. 어느덧 저녁이 되고, 다이애나와 만나서 함께 숙소에 들어가기로 했다. 급 피로해진 다리를 이끌고 숙소 앞 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늦게  먹은 점심이 소화가 느린 관계로, 바로 디저트를 시켰다. (직원이 되게 의아해했다.그럴만도) 10유로짜리 크레페를 하나 시켜서  먹고 있는데, 레스토랑 안쪽에서 재즈밴드의 라이브 공연이 막 시작되었다. 왠 떡! 라이브 재즈를 듣게 되다니! 재즈 보컬의  목소리는 누텔라처럼 쫀득하고 달콤했다. 리드미컬한 아코디언 소리가 나의 내적 댄스를 불러 일으켰고, 둠칫둠칫 흔들리는 어깨를  붙잡느라 몇번이고 심호흡을 했다.


https://www.instagram.com/reel/Cij9fQ4K5O9/?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id=MzRlODBiNWFlZA==


"나도 멋있게 늙어가야지"


나는  목적이 없이 걷는 걸 좋아한다. 발길이 가는대로 걷다보면 평소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다. 파리에서도 센 강을 따라  걸었다. 손수건 하나 깔고 앉아 이야기하는 사람들, 햇살이 잘 드는 곳에 누워 책 읽는 사람들, 맥주 한 잔 시켜두고 노래 듣는  사람들,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한 템포 쉬어가고 있었다. 한 노부부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고 (벤치도  아닌) 작은 담벼락에 걸쳐 앉은 모습이 얼마나 쿨하던지…! 할머니가 되었을때 저런 모습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 아닌 다짐을  했다. 


https://www.instagram.com/reel/Cij9fQ4K5O9/?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id=MzRlODBiNWFlZA==



"불어오는 바람에 걱정을 싣어 보낸다"


파리에  있을 당시, 난 그리 신이 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한국에선 정말 많은 불안들이 나를 재촉 하고 있었고, 출장이라는 핑계로  자신을 속이며 도망치듯 파리로 떠나왔다. 불쑥 불쑥 찾아오는 불안들을 잊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였다. 


숙소가  16구에 있어 에펠탑이 멀지 않았다. 도보로 30분 정도. 혼자 저녁을 먹고 산책 겸 에펠탑으로 향했다. 언제나 그 앞은  관광객들로 가득했는데, 유독 북적이는 곳을 발견했다. 버스킹 중이였다. 멋진 공연을 놓칠 수 없지! 허스키한 버스커의 목소리에  홀린 채, 잔디에 철퍼덕 앉았다.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속에서, 눈을 감고 음악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머릿 속 잡념이 사라지는듯  했다. 노랫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각국의 다양한 언어들, 이해하지 못해도 그 뉘앙스는 모두 행복을 담고 있었다. 진짜 세상 속을  살고있는 기분이었다.


길고 길었던 여름이 지나가고, 겨울이 막 도착했던 그날 밤, 부는 바람에 걱정을 실어 보내고, 

온전히 행복을 느꼈다.




Merci

매거진의 이전글 빠히 일기 (4) 한번 더 떠나는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