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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eyaChoi Jan 01. 2025

템페스트, 절망을 넘어 환희로

온 더 라디오| 베토밴

'다 다 다 다아아아'하고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것 같은 베토벤 5번 교향곡의 처음 네 음이  세계를 열광시켰다. 베토벤은 모짜르트와 함께 중세와 르네상스 이후 서양음악사의 한가운데 있다. 역사는 17세기-18세기 바로크음악, 18세기 후반-19세기초 고전파 음악, 19세기 낭만주의 음악, 19세기말-20세기초 근대음악, 20세기 현대음악으로 이어진다. 클래식이라는 이름도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이 속한 고전파(classic period)에서 따왔다.


베토벤을 이야기할 때, 가족사와 술과 불멸의 연인이 빠지지 않는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아들 베토벤도 다 음악가였고, 모두 술을 잘 마셨다. 특히 술꾼이었던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모짜르트처럼 신동으로 만들어서 돈을 벌고 싶어했다. 늘 취해있던 아버지는 아들을 밤새 잠도 안재우고 피아노연습을 시켰고, 나이를 속여 공연에 내보냈지만, 신동 만들기는 실패했다. 요즘이라면 아동학대로 신고당했을 거 같은 아버지는 결국 알코올 중독으로 죽었다. 베토벤도 매일 맥주와 와인을 마셨지만 좀처럼 취하지 않았다. 게다가 머리도 안빗고 옷도 허름하고, 화도 잘내고 괴팍했지만, 여자들에게는 인기가 많았다. 편지 속 '불멸의 연인'이 누구인지 추적하는 영화까지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동생의 아들을 애지중지 키우긴 했지만, 베토벤은 평생 싱글이었고, 주로 여관에서 혼자 밥을 먹었다. 그러다보니 일찌감치 여기저기 아파서 귀도 점점 멀었고, 짜증도 많고 성격도 아주 괴팍했다. 결국 위장에 물이 고이고, 다리에 부스럼이 생기면서 (아마도) 만성 췌장염과 간경변으로 죽게됐다. 죽는 순간에도 베토벤은 아주 좋은 와인을 보고, '유감이다, 유감이다, 너무 늦었어' 하고 아쉬워하며 숨을 거두었다. 장례식에는 2만 명에 가까운 빈 사람들이 모여서 존경하는 음악가 베토벤을 떠나보냈다. 이웃에 살던 슈베르트도 용기내서 만난지 1주일만에 베토벤이 죽자 종일 울며 관을 운구했고, 나중에 베토벤 옆에 묻혔다.


비록 신동은 못됐지만, 베토벤의 재능은 뛰어났다. 1787년 17살 베토벤이 31살 모짜르트를 찾아서 빈으로 갔다. 처음에 냉랭하던 모차르트가 베토벤 연주를 듣고, 나중에 이 아이가 세상을 크게 놀라게할 거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하지만 베토벤은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급히 본으로 돌아갔고, 이후 모짜르트가 죽는 바람에, 둘이 다시 만나지 못했다. 둘이 아예 못만났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베토벤은 모짜르트 음악을 아주 좋아했고,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을 적은 연습장에 모짜르트 교향곡 40번의 29 소절이 적혀있다고 한다.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으로 죽은 후, 1792년 베토벤은 빈으로 가서 모짜르트를 가르쳤던 하이든에게 배웠다. 하이든은 바이올린 1, 바이올린 2, 비올라와 첼로로 구성된 현악 4중주의 구조를 만들었고, 당시 제일 잘 나가는 음악가였다. 하이든은 모짜르트를 '진짜 천재'라고 인정하고, 모짜르트는 하이든을 '파파'라고 부르며, 잘 가르치고 잘 배웠다. 반면, 까다로운 베토벤은 하이든이 가르치는 방식에 불만이 많았고, 사람 좋은 하이든이었지만 베토벤이 성실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그래도 베토벤이 하이든 음악을 좋아했고, 1796년 처음 출판한 피아노 소나타 Op.2를 하이든에게 헌정했다. 지금 보면, 천재들끼리 서로 알아보고 가르치고 배웠다.


1802년 귀가 안들려서 절망에 빠진 32살 베토벤이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유서를 썼다. '누군가 내 옆에 서있었고, 그는 멀리 플루트 소리를 들었지만, 나는 못들었고 목동의 노래도 못들었다. 그저 무안했다.... 나는 내 삶을 끝내려했다. 오직 예술만이 나를 지탱해준다. 아, 내가 느낀 것들을 다 만들 때까지 이 세상을 떠나기 어렵다.' 유서였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고백이었고, 장애를 이겨내고 다시 살기위한 열정 넘치는 맹세였다. 갈수록 귀가 안들려서 베토벤은 피아노에 귀를 대고 진동을 느끼며 작곡했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작업이 영 안믿기는지, 영화 '카핑 베토벤'에서는 한 도우미가  '작곡을 도왔다'고 설정했다.


극도로 궁핍했던 베토벤은 그래도 수완이 좋아서, 돈을 받고 곡을 팔았다. 저작권 협회가 없던 시절이어서, 한 곡을 여러 출판사에 동시에 팔기도 하고, 특별판도 만들어서 팔고, 더 비싸게 팔려고 흥정도 다. 왕이나 귀족들 후원에 기대지 않고 경제적으로 자립한 덕분에, 베토벤은 귀족들에게 굽신거리지 않았다. 괴테와 산책하다가 만난 귀족들에게 괴테가 공손하게 인사했지만, 베토벤은 뻣뻣했다. 그뿐 아니라 귀족에게 머리숙여 인사한 괴테에게 국민시인의 자존심을 지키지 않았다고 잔소리하는 바람에 둘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다. 이토록 공화주의자였던 베토벤이 나폴레옹을 좋아해서 교향곡 3번을 헌정하려고 했지만, 나폴레옹이 스스로 왕이 되는 바람에 화난 베토벤이 제목을 영웅으로 바꿔버렸다는 야사가 있다. 실제로는 왕이 된 나폴레옹이 돈을 많이 주겠다고 베토벤을 부르자, 베토벤은 원하는 액수를 받으면 빈을 떠날 생각이 있는 것처럼 말해서, 1809년 자극받은 황태자와 후작에게서 큰 연금을 얻어냈다. 프리랜서였던 베토벤 이후, 음악가들은 곡을 출판하고 음악회를 열어서  경제적으립할 수 있게 되면서, 비로소 궁정음악을 벗어났다.


베토벤은 피아노 시대를 활짝 열었다. 바흐는 초창기 포르테피아노를 싫어해서, 피아노곡을 작곡하지 않았다. 모짜르트는 하프시코드로 시작해서, 나중에 피아노를 좋아하고 피아노곡을 썼지만, 일찍 죽었다. 그에 비해서 베토벤은 처음부터 피아노로 시작했고, 피아노 소나타 32개에 더해서 피아노 협주곡을 5개나 썼다. 지금까지 사랑받는 이 곡들은 낭만주의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위대한 피아니스트였던 수많은 후대 작곡가들에게 바이블이 되었다. 지금은 학생들에게는 입시곡, 젊은이들에게는 콩쿨곡, 현역 프로들에게 소나타 전곡 연주에 도전하며 진짜 실력을 뽐내는 중요한 레파토리이다.


베토벤의 9개 교향곡들이 다 대단하지만, 역시 클라이막스는 마지막 9번이다. 베토벤은 30년 동안 70번 가까이 이사다녔다. 작곡하다가 열 받으면 물을 바가지로 뒤집어써서, 난데없이 물벼락 맞은 아랫집 불만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다. 영화 '베토벤이 위층에 살아요'에서 보면, 54세에 완전히 귀가 멀어버린 베토벤은 동네 작은 콘서트홀에서 '합창 교향곡'의 초연을 직접 지휘했다. 오케스트라 연주 막바지에 터져나오는 합창 '환희의 송가'에 이르면, 연주자도 합창단도 청중도, 온갖 층간소음에 시달렸을 랫집 이웃도, 모두 하나된 마음으로 '음침한 고뇌를 돌파하고 환희에 도달'하는 듯 가슴벅찬 감동을 느낀다. 연주가 끝난 후, 귀먹은 베토벤은 관객들의 박수소리를 들을 수 없었지만, 일어서서 환호하는 관객들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베토벤의 곡을 하나만 골라서 소개한다는 건 불가능한 미션이다. 그래도 골라야한다면, 베토벤이 자살을 고민하며 가장 힘들어했던 질풍노도의 시기에 작곡하고, 헌정자가 없어서 마치 스스로에게 헌정한 듯 싶은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Tempest 폭풍)' 3악장과 완성도가 아주 높다는 23번 '아파쇼나타 (Appassionata 열정)' 3악장을 차례로 들어보자. 현재 우리에게 닥친 고통과 불안이 무엇이든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마음 깊이 숨어있는 삶에 대한 열정을 끄집어내서, 다시 삶을 사랑해보자.


1955년 5회 쇼팽콩쿨 2위, 1962년 2회 차이코프스키 콩쿨 1위를 차지했던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가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템페스트 3악장을 들어보자. 러시아적 열정이 넘치고, 쇼팽처럼 낭만적이며 부드러운 연주다. 아쉬케나지는 루마티스 관절염으로 피아노를 그만 두고, 지휘자가 됐다. 우리나라에도 몇번 왔다. 1949년 페르초 부소니 콩쿨 4위, 2004년 음악계의 노벨상인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수상한 알프레드 브렌델이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열정 (appassionata) 3악장을 들어보자.  음향이 다소 고르지 않지만, 베토벤 피아노 곡에 대한 해석이 탁월하다는 평을 듣는 피아니스트이다. 템포가 좋다. 끝까지 박자도 힘도 안밀리고, 딱 베토벤처럼 들리게 다.



하이든 (1732-1809) 오스트리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 (1756-1791) 오스트리아

루드비히 반 베토벤 (1770-1827) 독일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1937-, 러시아에서 아이슬란드로 망명)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템페스트 3악장.

https://youtu.be/TQBBOZ8a0yg?si=H9CEd6A2eCTdu5yL


알프레드 브렌델 (Alfred Brendel, 1931-,  체코 출생 오스트리아 국적)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열정 (appassionata) 3악장.

https://youtu.be/OAGgiEGV_tg?si=b_og_c9rCP-LpNZ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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