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영화음악 중에서 '그는 해적이다 (He is a pirate)'는 유튜브 조회수를 다 긁어모으면 몇 억은 될 정도로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오케스트라 곡이다.
이 영화는 원작 없이, 디즈니랜드에서 제일 인기있는 놀이기구 '캐리비언의 해적'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졌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최후의 해적선에는 붙잡히면 교수형에 처해질 해적 잭 스패로우가 타고 있다. 레게 머리와 배배 꼬인 수염에다가 짙은 화장으로 시커먼 눈을 동그랗게 뜬 잭은 꺄악꺄악 소리를 지르고 몸을 비비 틀며, 참새처럼 가볍게 촐삭거린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해적답지 않게 어설퍼 보이는 잭이지만, 쏟아지는 총알을 얄밉게도 잘 피한다. 해적이라면 마땅히 소탕되어야 하거늘, 영화를 보다 보면 해적 잭 스패로우가 피터팬처럼 해적에게 잡힌 웬디를 구하러 온 것 같은 착각이 들면서, 끝까지 안잡히길 바라게 된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승승장구하며 5편까지 나왔다.
이 6,7분 짜리 음악이 없었으면 영화가 이만큼 성공하지 못했을 거라는 데 누구든 고개를 끄덕일 만큼 대단한 곡 '그는 해적이다 (He is a pirate)'의 작곡가는 오스카상을 두 번 타고, 그래미 상을 세 번 탄 한스 짐머이다. 한스 지머는 라이언 킹, 글래디에이터, 캐리비언의 해적, 다크 나이트, 인셉션, 인터스텔라, 던케르크, 듄의 음악 감독이다. 후유! 대단한 프로필이다. 어머니가 뮤지션이었던 한스 지머는 집에서 혼자 피아노를 쳤지만, 엄격한 교육을 싫어해서 겨우 2주 정도 피아노 레슨을 받은 게 전부였다. 나머지는 밴드에 들어가서 스스로 혼자 배웠다고 한다.
그만큼 '캐리비안의 해적'의 주제곡은 기존 클래식 곡들과 달리 형식적으로 자유로워서, 많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다양하게 편곡하고 도전했다. 큰 북, 작은북과 심벌즈까지 온갖 퍼커션 악기들이 총동원되어 펼치는 긴박한 비트에다가, 진군 나팔 소리를 내는 관악기들의 비장함이 더해지면, 이 짧은 곡은 베토벤처럼 강렬하다. 반면 작은 참새 같이 가볍고 리듬감 넘치는 잭의 장난스러운움직임을 표현하는 듯한 현악기 부분에서는 모짜르트의 밝음이 묘하게 포개진다.
OST 공식 영상음악이 제일 좋지만, 뜻밖에도 폴란드 지브로우스키(Zebroski) 음악학교 오케스트라가 그 어떤 오케스트라보다 멋지게 이 곡을 연주했다. 오케스트라 규모는 작지만, 관악기와 타악기 비중이 높고 현악기 비중이 낮아서, 긴박감과 비장함이 잘 살아있다. 각 악기의 솔로 파트를 클로즈업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어느 악기가 어느 노래를 부르는지 잘 구분할 수 있고, 악기들이 어떻게 서로 협력하는지 잘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원곡에 충실하고, 어린 학생들이 살짝 코믹하고 경쾌한 느낌을 잘 살렸다. 덕분에 전 세계 1억 명은 이 음악학교를 알게됐다!
영화 '캐리비의 해적'에는 유명한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잭 스패로우역을 맡은 조니 뎁은 원래 락밴드 멤버였는데, 팀버튼 감독의 페르소나가 되어 '가위손' 에드워드, 로알 달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찰리와 초콜렛 공장'에서 윌리 웡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이상한 모자장수로 나왔다. 영화마다 조니 뎁이 워낙 강렬하게 분장하고 나오다보니, 사람들이 정작 잘 생긴 조니 뎁의 얼굴을 모른다. 해적의 아들이자 대장장이로 나오는 윌 터너를 맡은 올랜도 블룸은 반지의 제왕에서 긴 금발의 요정, 레골라스다! 그리고 윌 터너와 사람에 빠지는 엘리자베스를 맡은 키이라 나이틀리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오만과 편견'에서 사랑스러운 엘리자베스 베넷이었고, '비긴 어게인'과 '이메테이션 게임'에서 여주인공을 맡았다. 혹시 아이가 아직 어리다면, 온 가족이 같이 보면 엄청 좋아할 클래식 영화들이다.
되든 안되든 쓰러질 때까지 달려들어 막 해치워야 할 뭔가 있다면, 잭 스패로우처럼 막 해내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