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도 안다니고 헨델을 몰라도, 대부분 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레엘~루우야~' 노래를 안다. 헨델의 '메시아'는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전세계 송연음악회에서 울려퍼지는 단골 레파토리다.
헨델은 아버지가 무려 63 살에 낳은 늦둥이였는데, 300년 전에도 법대가 있었고 법관이 인기였는지, 이발사이고 궁정 외과의사였던 아버지는 13 살 헨델에게 법관이 되라는 유언을 남겼다. 헨델은 그 유언에 따라서 법대에 갔다가 그만두고, 할레 대성당 오르간 연주자가 되었다. 일찌감치 실력이 뛰어났던 헨델은 25살 때 하노버 왕국의 선제후 루드비히 눈에 들어서 왕실 악장이 되었다. 꼭 돌아오겠다는 조건으로 여행을 떠난 헨델은 함부르크와 피렌체, 영국에서 연극과 성악이 결합된 오페라(opera)로 이름을 날려서 영국 앤 여왕의 마음에 들고난 뒤, 약속을 어기고 아예 영국에 눌러앉아버렸다. 그런데 앤 여왕이 후사 없이 죽고, 헨델의 배신에 잔뜩 화났을 루드비히가 영국 국왕 조지 1세로 즉위했다. 곤경에 처한 헨델이 자기 돈으로 배를 띄우고 그 위에서 멋진 '수상곡'을 여러 번 연주해서 왕의 마음을 풀어주었다는 야사가 있다. 아버지 이야기나 조지 1세 이야기로 보면, 헨델은 누가 뭐래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제 길을 갔던 거 같다.
지금은 '음악의 어머니'로 유명해서 계속 승승장구했을 거 같지만, 헨델의 삶이 항상 순탄했던 건 아니다. 당시에는 유명했을 쟁쟁한 음악가들과 경쟁해야 했고, 오페라가 연달아 실패한 뒤 파산하고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반신불수가 되었다. 경제적 곤궁을 벗어나기 위해서, 1732년 47살의 헨델은 연극 없는 음악회 형식의 오라토라오(oratrio) '메시아(Messiah)'를 만들어서 대대대(!) 대성공하며 재기했다. 이후 '메시아'는 수백년 동안 연말이면 전 세계 송년 음악회에서 꼭 연주되면서 지금까지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덕분에 헨델은 살아 생전 유명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합창단들이 연말이면 어김없이 '메시아'를 공연하는데, 표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렵다.
'할렐루야' 노래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헨델 하면 종교음악인 '메시아' 밖에 생각나지 않을 수 있지만, 1720년 즈음에 헨델은 피아노의 전신인 하프시코드를 위한 모음곡을 작곡했다. 모든 곡이 다 좋지만, 파사칼리아(Pasagallia G단조)가 특히 아름답다. 파사칼리아는 17-18세기 바로크 시대 때 행진곡이다가 나중에 발레곡으로 쓰였고, 이후 다시 느린 삼박자의 춤곡이 되었다. 파사칼리아에서는 주제 선율이 저음부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다가 점점 다른 성부에서 변주된다. 이후 노르웨이 할보센(1864-1935)이 바이올린과 비올라 듀오로 리메이크했다. 파사칼리아 자체가 변주곡이다 보니, 여러 악기로 구성된 수많은 변주가 쏟아져나왔다.
내노라하는 피아니스트들이 파사칼리아를 연주했지만, 정통 러시아 피아니스트인 예브게니 코롤리오프(1949-)가 연주한 파사칼리아가 무척 아름답다. 1968년 19살이던 코롤리오프는 라이프치이 바흐 콩쿨에서 우승했고, 이후 반클라이번에서 입상했다. 코롤리오프는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 해석의 대가로 평가되는데, 같은 바로크 시대 음악가인 헨델의 파사칼리아도 바로크 무드가 물씬 풍기게 연주했다. 이작 펄만(Itshak Perlman)과 핀카스 주커만(Pinchas Zukerman)이 연주하는 바이올린-비올라 연주가 무척 아름다워서 같이 링크한다. 캐나다 우주비행사 로버트 더스크가 콜롬비아 우주선에서 쿼르텟 젤라토(Quartetto Gelato)가네 개의 악기,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아코디언으로 편곡하고연주한 파사칼리아를즐겨 들었다고 해서 또 한번 유명세를 탔다.
몸도 춥고 마음도 추운 연말, 파사칼리아를 반복해서 들으며 추위를 뚫고 춤추 듯 사뿐사뿐 걷자.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