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생활은 계속된다.
자발적 위로. 자기 위안
아이들의 졸음이 엄습할 즈음이 되면 김치냉장고 속의 '이빠이 히야시'된 맥주를 꺼내서 들이킨다. 간혹 일간의 스트레스가 높을 때는 몇 시간 더 일찍 섭취하는 경우도 있다.
한두 잔의 유해한 음주는 이 밤 하루의 피로도를 낮추는 만병 통치약에 가깝다.
횡단보도 앞에서도 호기심이 폭발하여 조마조마하게 달싹거리는 꼬맹이. 궁금한 건 한시도 참지 못하고 바로 오디오로 뽑아내고 답변을 재촉하는 초등학생. 그 둘을 동시 다발적으로 응대하려면 어지간한 서비스 정신으로는 불가하다. 밤에 잠들 기색이 보이기 전까지는 언제나 스탠바이해야 한다. 이 정도면 모성애가 암만 충만하대도 엄마는 긴장감을 분명히 느껴진다. 아따. 너네 둘. 엄마 좀 그만 불러라. 아빠는 언제 오냐...
문화 체험행사를 위해서 잠시 들른 문화공간에서 교육과 체험을 진행하시던 진행자 분이 응원의 한마디를 건네셨다. "아이들이 조금 커야 엄마가 살만하지." 사실 여느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 아이들이 특별히 유별나거나 하진 않다. 오히려 이 정도면 점잖다는 말도 종종 듣는 소통이 잘 되는 아이들이다.(도치맘 도치맘) 그렇다 보니 살만하지 않은 수준은 아니지만, 사실 불편한 건 간혹 느껴진다. 가끔 갖는 짤막한 자유시간 동안 긴장 반경이 내 몸으로 국한되는 그 기분이 홀가분 한걸 보면 평소의 상황이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신랑은 어설프게 마시는 반주를 왜 하냐고 물었다. 그는 집이라서 가능한 이 소중한 안도감을 모르나 보다. 밖에서 시원하게 한잔 걸칠 수 없기에 잔잔바리로 잠시 맘을 내려놓는 중일 세만. 자발적인 위로. 자기 위안. '나 오늘도 애썼네.' 하며 나의 존재가치를 인정하는 시간인데. 오해가 억울하지만 그냥 오롯이 내가 버텨낸다. 사랑스러운 꼬물이를 지키고 돌보는 일은 지금의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광기의 지점까지 아이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걸 몰라주어도 상관없다. 이건 내 사랑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