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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특별한 네가 있다

우정 그 이상의 무언가에 대하여

 나는 대단한 집안일 뻔 한 집에 태어나, IMF때 크게 망한 아버지의 딸로 한때는 전교 1등 하던 성적으로 일명 sky 즈음되는 학교는 거저  것처럼 굴더니, 꼴좋게도 일가친척들의 벌에 먹칠한 정도랄까.


 그래, 대학은 커녕 수능도 못 칠뻔한 정도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수능문제집 한 권 살 돈 없었다. 그러다, 수능날, 시험만 보고 집옆 어느 4년제 대학을 갔더랬다.      


 이리 말하면, 공부한 누군가를 욕되게 할지는 모르겠다만, 확실한 것은 나는 수학머리는 사칙연산이 잘 안 될 정도로 없는 순수한 머리를 가졌다. 그저, 공부하는 척이라도 좀 하면 괜찮았던 인문학계열로 어쩌다 보니 간 과가 세상에도 제일 싫어하던 역사. 사학과였다.


 당시 관광가이드가 되려고 마음먹고, 역사공부를 해서 해외를 돌아다니며 일을 하려고 했다. 그리고, 우연히 찾아온 기회로 호주 멜버른에 가게 되었다. 서론이 길지만,,, 나는 그곳에서 내 평생지기를 만나게 되었다.


 갑자기 흙수저로 급락한 처지에 애초에 목표치와는 너무 동떨어진 학교에 입학한 내가 나는 꽤나 싫고 초라했다. 그러나, 좋아한 것은 끝까지 매달려 보았던 나였기에 영어공부는 한 번도 쉬지 않았었다. 그 길로 끝까지 내달린 것이 미국 석사유학과 대치동 강사라는 타이틀을 얻을 정도는 되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그 당시, 좋아하는 것을 좇아 그곳에 가 있었던 게 아닐까? 가서 현지 친구들도 사귀고, 파티에 공부에 여러 가지 경험도 하였다. 그리고, 멜버른 근교에 집을 렌트하여 살게 되었다.


 '플랫'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명이 렌트를 하여 한 곳에서 사는 집. 그곳에서 나는 그녀를 만났다. 플랫을 함께 셰어 하던 친구의 친구. 유달리 나랑 잘 통하던 친구였다. 부산 말씨를 부드럽게 쓰는 교양 있는 20대 초반의 그녀는 지금껏 20년 이상 나랑은 꼭 친자매 같은 사이로 언제든 전화로, 만남으로 우리의 일상을 공유하곤 한다.


 일생에 한 명, 좋은 친구가 있다면 인생이 성공적! 이랬나? 나는 그럼 성공!!!


 그 친구는 나랑 달리 금수저에 유달리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티 풀풀 나는 아이였다. 나랑은 22살 겨울, 그녀는 법학과로 전과에 합격하고 온 '자축선물' 겸 온 '배낭여행'. 나는 동생이 하늘나라로 간 후 우울함에서 벗어나고자 '탈출구' 겸 학자금대출로 온 '해외 세 달 살기'.


 배경은 이리도 달랐지만...


우리는 금세 친해져서 멜버른 근교 필립아일랜드로 여행을 떠나 많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게 되었다. 그때는 내가 워낙 독립적이기도 하였거니와 몰입하면 주변에 무엇이 일어나도 모를 바보가 되는 답답이였기에..

필립아일랜드의 귀여운 펭귄들

 핑계를 대자면 그렇다는 거다. 사실은, 내 안에 풀어내지 못한 숙제들로 켜켜이 쌓여 마음이 힘들었기에 훌훌 털어내고자 무조건 밝게 웃으며 다닌 탓에 친구 사귈 여유가 없었다. 혹은, 마음을 친구에게 털어놓을 만큼 용기가 없었다.


 그러다,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영어 쓰며 살아가는 그 자유로움에 빠져 지내다가 살짝 향수병이 올 즈음 그 친구를 만난 것 같다. 한국인 친구라면, 무작정 고향 같던 그때...


 그러던 친구와 필립아일랜드 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그 친구가 화장실이 급해서 함께 뛰고 또 뛰어 찾았던 그 '헝그리잭'(플린더스 스테이션 기차역 옆 햄버거가게). 그 옆 계단으로 올라가 한 펍의 화장실이 다행히 열렸던 순간!

친구가 화장실이 급해 뛰어 갔던 그 호주 멜번 프린더스 스테이션

 그 순간에 그녀는 내가 그녀의 평생지기임을 알아 차렸댔던가?


 나는 그렇게 그녀와 지금껏 내가 서울로, 미국으로, 또다시 서울로, 그리고 내 고향 어디 즈음에 다시 결혼하고 자리 잡을 때까지 함께 주변을 여행하며, 일상을 공유하며 지내게 된 것이다.


 내가 고향친구를 잃고 우울증으로 힘겨워 모든 일을 그만두던 순간에도 내 사업이 와장창 미끄러져 힘든 순간에도.


 그녀가 옆에서 한 시간, 두 시간이고 전화기 너머에서 잔잔히 위로를 해 주었다.


 세상에 태어나길 잘했다. 굴곡진 삶 속, 수십 년간 그래도 나의 가족 외에 '너'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나는 많은 위로와 공감을 얻어 지금껏 또다시 도전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지?


 '친구'라는 주제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맨 처음으로 생각나는 사람.


 네가 있어 나는 정말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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