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란하마 May 02. 2024

영화 <스턴트맨> : 달콤하고 쫄깃하게 톡 쏘는 로맨스

 

    

   <스턴트맨>은 달달하고,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슬리퍼 질질 끌고, 레모네이드를 마시면서 별다른 기대도, 그 어떤 고민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본 게 참 오랜만입니다. 신화적인 극한의 게임과 체험 불가능한 우주 공간에서 인류의 서사를 펼치는 영웅을 보면 소시민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은 먼지에 지나지 않고, 역사적 인물에 대한 영화를 보고 나면 무지에 대한 부채의식을 짊어지지 않을 수 없었죠. 때로는 영화관이 엔테터인먼트가 아니라 타성에 젖은 의식을 재조정하고, 시대정신과 철학을 주입하는 교육장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스턴트맨>은 눈깔에 힘주지 않고 느긋하게 보고, 신나는 노래를 들으면서 스릴에 액션을 토핑으로 얹은 연애담을 즐기면 그만입니다.  

  <스턴트맨>은 이미 우리에게 <존 윅> <아토믹 블론드> <데드폴 2> <분노의 질주 : 홉스&쇼> <불릿 트레인> 등으로 잘 알려진 데이비드 레이치 감독이 연출한 영화입니다. 그가 스턴트맨 출신의 감독이라서 일까요. 어떤 영화든 액션의 유전자가 스크린에 차고 넘칩니다. <스턴트맨>도 그런 색깔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로맨스에 액션을 가미한 게 아니라 액션 포인트를 먼저 세워두고 로맨스 스토리로 그걸 엮어놓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듭니다.

  스토리는 간단합니다. 촬영감독에서 이제 막 입봉하는 작품을 찍는 영화감독 조디(에밀리 블런트)와 썸을 타던 스턴트맨 콜트(라이언 고슬링)가 영화를 찍다가 부상을 당한 뒤 잠수를 탔다가 다시 영화 현장에서 두 사람이 만나 위기를 극복하고, 달달하게 꿀이 흐르는 연인이 된다는 흔하디 흔한 로맨스입니다. 그럼에도 재미있습니다. 상영시간 126분이 훌쩍 지나갑니다.      



  <스턴트맨>을 보고 느낀 점, 몇 가지를 정리해 봅니다.

  첫째, 치밀하게 딱 맞춰진 구성이 스토리의 흥미감과 극적 긴장감을 높여줍니다. 조디가 찍고 있는 우주로맨스 영화 <메탈스톰>의 남주인 스페이스 카우보이와 여주인 에일리아나는 각각 콜트와 조디로 대응됩니다. <메탈스톰>은 자신들의 이별과 만남의 로맨스였던 거죠. 밀당과 오해와 애정이 뒤범벅된 조디의 감정이 시나리오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던 겁니다. 그런 시나리오가 콜트를 만나면서 완벽하게 완성되는 거죠. 영화처럼 연애하고, 연애하는 것처럼 영화가 만들어집니다. 결국 <메탈스톰>은 <스턴트맨>이었던 셈이죠.     

 

  둘째, 멋진 캐스팅으로 만으로도 영화의 절반은 그냥 먹고 들어간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어떤 캐릭터라도 자연스럽게 소화해 내는 라이언 고슬링과 연극으로 시작했지만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다양한 연기를 보여준 에밀리 블런트의 케미가 잘 맞았습니다. 두 배우의 티키타카가 <스턴트맨>을 풍성하게 만들고, 재미를 배가시켜 줍니다.



  셋째, 에일리언 장갑을 낀 조디와 콜트의 전화통화 이분할 씬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조디가 <메탈스톰> 대본에서 화면을 이분할로 나누어 촬영할 거라는 의견을 말하고 있지만 그건 조디와 콜트가 현재 겪고 있는 감정적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죠. 서로를 바라보는 이분할의 씬이 <메탈스톰>과 <스턴트맨>을 중의적으로 넘나들며 애정과 갈등의 감정을 잘 담아냈습니다.


  넷째, 스턴트맨들의 프로 근성이 관객의 근육까지 움찔거리게 만듭니다. 자동차를 여덟 바퀴 반을 구르게 한 게 최고의 회전 장면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됐다고 하는데 언젠가 또 다른 스턴트맨의 노력으로 그 기록도 경신이 되겠죠. CG가 아니라 실제 액션으로 구현한 장면에서 스턴트맨들의 거친 숨결과 땀내가 물씬 풍겨납니다. 고작해야 엔딩 크레딧에 이름이 뜨고, 운이 좋으면 쿠키영상으로 얼굴이 잠깐 보일 정도지만 스턴트맨에 대한 애정과 철학이 없이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거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스턴트맨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경의를 표합니다.


  다섯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수많은 추억 조각들을 떠오르게 하는 이야기가 넘쳐 납니다. <록키> <킬빌> <분노의 질주> <러브 액리> <노팅힐> <라스트 모히칸> <스타워즈> <화성침공> <에일리언> 등등이 떠오르고, <육백만불의 사나이> 리 메이저스가 출연하고, 어떤 장면에서는 뚜~뚜~뚜~뚜~뚜 하는 효과음도 들리죠. 콜트가 물에 빠졌다가 헤엄쳐 나오는 장면은 <본 시리즈>에서 맷 데이먼의 수영 폼과 각도까지 흡사합니다.


  여섯째, 귀도 즐겁게 합니다. 오프닝 씬부터 하드 록 밴드 KISS(악마적 분장을 하고, 공연이 끝나면 무대에서 악기를 때려 부수는 해프닝을 하지만 Knights In Satan's Service의 약자는 결코 아님)의 ‘I Was Made for Lovin' You’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다섯 번이나 반복해서 나오더군요. 가히 데이비드 레이치 감독의 최애곡이라 생각됐습니다. 그 밖에도 Taylor Swift의 ‘All too Well’, Phil Collins의 ‘Against All Odds’ Guns N’ Roses의 ‘Sweet Child O’ Mine‘, Christopher Cross의 ’sailing‘,  AC/DC의 ’Thunderstruck‘, DJ Khaled의 ’All I Do Is Win‘ 등등이 어깨를 들썩이게 합니다. 올드 팝을 좋아하는 분들한테 취향 저격합니다.



  일곱째, 엔딩 크레딧의 쿠키 영상까지 다 봐야 영화가 끝납니다. 스토리의 결말이 쿠키 영상에 담겨있습니다. 쿠키 영상으로 마무리를 하는 건 참 드물죠. 그러니까 쿠키 영상도 영화의 한 부분입니다. 빼놓을 수 없는 거죠. 절대.      


  사족 – 영화관마다 <범죄도시4>가 범람하네요. 참, 씁쓸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