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재킹>. 제목만으로도 스토리가 충분히 감지되는 영화입니다. 거기다 역사적인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흥미롭지만 사실을 토대로 했다는 건 극적인 캐릭터나 구성도 그만큼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죠. 사실의 영역 안에서 극적인 상상력을 펼치는 건 쉬운 노릇이 아닙니다. 까딱 잘못 만들었다가는 제작비를 엄청 많이 들인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서프라이즈’ 판이 되기 십상입니다.
재난 영화를 보는 즐거움은 관객도 스크린에 몰입되어 공포와 서스펜스의 현장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이죠. 관객에게 공포와 서스펜스의 현장감을 선사하려면 우선 전제되어야 하는 게 스토리와 캐릭터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리고 스토리의 배경과 캐릭터의 액션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야 하겠죠.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투모로우>를 보는 내내 추위와 전율을 온몸으로 느끼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를 보면서 우주에서 아득한 추락의 공포를 경험한 건 개연성 있는 스토리와 시각적 효과 때문입니다. 논리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이입이 될 수밖에 없죠. 그만큼 사회적 메시지도 강하게 남게 됩니다.
<하이재킹>은 지나간 역사적 뉴스를 스크린으로 소환한 건 고무적이지만 영화적인 즐거움을 주는 덴 조금 아쉬운 면이 있었습니다.
<하이재킹>을 보고 나서 느낀 점, 몇 가지를 정리해 봅니다.
첫째, 1969년 KAL기 납북사건과 1971년 납북사건을 자연스럽게 연결지은 건 스토리의 개연성과 신뢰감을 주었습니다. 그 두 사건 속에서 부기장인 태인(하정우)의 캐릭터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납북당하는 항공기를 격추하라는 상부의 명령이 떨어졌을 때, 명령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공군 파일럿과 사람의 목숨이 제일 소중하다는 휴머니스트 사이에서 윤리적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죠. 그런 폭력적인 상황에서 그가 내린 판단과 결정은 그의 양심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게 그의 캐릭터입니다. 소영웅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소시민적인 휴머니스트였죠. 그래서인지 납치범 용대(여진구)를 대하는 방식도 상당히 인간적입니다. <하이재킹>이 자연 재난이 아니라 문제적 인물에 의한 반사회적 사건이라는 점에서 두 인물의 부딪침은 섬세한 싸움이 되어야 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성깁니다. 비행기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극한의 긴장감을 주려면 두 사람의 감정과 심리적인 대결이 치밀하게 이루어졌어야 하는데 그 부분을 생략해 버린 게 아닌가. 심리대신 액션에만 치중한 느낌. 그래서 하정우의 깊이 있는 표정과 연기가 스토리를 온전하게 다 담아내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는 생각에 안타깝고 아쉬웠습니다.
둘째, 악인은 당연히 나쁜 사람입니다. 나쁜 행동을 해도 누구도 감히 제지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의 아우라를 가진 악인이야말로 최고의 빌런이죠. 영화를 보는 내내 용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두 가지. 승객 56명과 승무원 4명이 꼼짝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용대의 악한 능력이 뛰어났는지, 그리고 사제 폭탄의 위력이 정말 엄청났는지. 그 두 가지가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형이 북한에 있다는 사실로 인해 용대에 남한에서 린치를 당하고, 거기다 가난으로 인해 어머니마저 비참하게 죽어 북쪽으로 가서 팔자를 고쳐보겠다는 생각으로 비행기 납치 계획을 한 건 이해가 됩니다. 문제는 그렇다면 그가 그런 욕망을 실현할 악인으로서 캐릭터를 부여받았느냐는 겁니다. 공항대합실에서 중학생에게 학연의 관심을 보이고, 노인을 바라보는 그윽한 시선은 오히려 인간적이었습니다. 반공 국시로 피해를 받았다면 그에 대한 반작용의 액션과 표정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그는 애초부터 악한은 아니었다의 근거로 그의 과거 서사를 피해자 시각에서 보여 주다보니 결국 인간적인 용대를 문제적 인물로 만든 건 무지한 폭력의 시대 탓이라는 동어반복 논리에 빠지게 했습니다. 사제 폭탄의 경우도 신뢰가 가지 않았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폭발하기 전까진 그 위력을 전혀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수십 명의 승객들이 꼼짝하지 못할 정도의 위력과 공포를 관객들이 공감하려면 폭탄의 성능을 미리 보여줬어야 합니다. 용대가 사제 폭탄을 만들어 몇 번의 시험을 했을 때, 그 폭발력을 보여줬더라면 용대가 들고 있는 사제 폭탄을 두려워하고 그게 승객들을 압도하는 무기로서 효과도 있고, 극적 긴장감도 훨씬 생생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그런 디테일한 묘사가 있었더라면 용대의 욕망과 분노에도 공감이 되었겠죠. 제라드 버틀러(글라이드 쉘튼 역)와 제이미 폭스(닉 라이스)가 주연을 맡았던 <모범시민>에서 글라이드가 처참하게 살인을 하고, 도시를 폭파하는 것에 대해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건 일종의 부작위에 대한 관객들의 동의였던 셈이죠.
셋째, 1970년대에 대해 꼼꼼하게 고증한 풍경과 풍속을 볼 수 있었던 건 즐거움이었습니다. 항공티켓을 끊은 뒤 선착순으로 달려가 좌석을 차지하고, 비행기 안에서 흡연을 하는 것.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피울 수 있는 양담배에 대한 모습. 가난한 냄새가 풍기고 낡은 수채화 느낌의 동네 골목. 사회 전반을 억누르고 있는 레드 콤플렉스. 평범한 시민들의 의상과 일상 등등.
넷째, 비행기 안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돈이 많은 사장과 그의 부하, 보자기에 닭을 싸들고 딸을 보러 가는 노모, 청각장애의 어머니와 검사 아들, 좌석에까지 욕심을 부리는 사내, 전직 경찰관과 그의 아내, 그리고 까까머리의 중학생까지. 그런데 극한의 위기 상황 속에서 이들이 움직이는 건 본능적인 생존욕구에 따른 자연스러운 행동이 아니라 마치 마리오네트처럼 조종을 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연습부족이란 생각밖에. 더구나 비행기를 타기 전과 사고 이후로 심리적인 변화가 생긴 사람을 한 두 사람 넣었으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탑승하기 전에 싸우던 연인이 사랑을 확인한 계기가 되거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인물 등등.
다섯째, 극한 상황의 긴장감과 공포감을 배가시키는 건 시끄러운 소음보다는 침묵입니다. 납치범으로 인해서 비행기 안이 시끄러울 수 있지만 그게 지속되면 소란이 되고, 그 소란 속에 긴장감과 공포감도 분산되기 마련입니다. 비행기 안이 너무 소란해 대사까지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조용히 정지되어 있는 듯한 시간 속에서 느끼는 공포와 전율, 그 계산이 아쉽습니다. 침묵이야말로 액션과 액션 사이를 연결해 주는 가장 요긴한 시퀀스입니다.
여섯째, 여객기 납치라는 사건이 야기한 긴장과 살신성인의 희생으로 해소된 재난 스토리의 메시지는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요. 반공 국시의 국가적 폭력에 의한 시민의 일탈? 소시민적인 휴머니스트의 인간애? 적어도 하나는 성공한 셈입니다. 묵혀 있던 역사적 뉴스를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올렸다는 것. 세계 최초로 여객기를 활주로가 아닌 해변 모래사장에 착륙시켜 인명을 구했다는 것. 하긴 그것만으로도 소중한 일이죠.
사족 – 용대와 승객들을 보면서 60마리의 뱀한테 둘러싸인 개구리 한 마리와 60마리의 개구리에 둘러싸인 뱀 한 마리가 떠올랐습니다. 누가 더 난감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