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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번들 May 18. 2022

살아야 할 이유, 죽어야 할 이유

Dear Life

  건기와 우리로 나뉘는 아프리카 초원의 많은 생명들은 건기에 큰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그들은 한 방울 물을 찾아 메마른 초원을 헤매고 다닌다. 만약 그들에게 생명을 스스로 끊을 권리가 있다면 그들 대부분은 고통 속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죽음과 고통과 죄책감의 삼중고에 시달리는 인간도 자살을 권리로서 주장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끊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죽어야 할 권리를 말하기 전에 살아야 할 의무를 다해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는 참 솔직하고 용감한 사람이었다. 자살을 무조건 막는 사회가 아니라 개인의 권리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살과 조력자살이 용인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논리는 어차피 우리 사회는 개인의 의식주뿐 아니라 마음의 고통을 해결해 주는 사회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살을 금지할 수 없다고 하였다. 더 나아가 자살을 막기보다는 오히려 도와주는 사회가 개인을 구원해 주는 것이고 자기를 실현하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가슴에 심한 통증 같은 것을 느껴졌다. 그리고 그를 잃게 될까 봐 긴장되었다. 그러나 그가 부모님과 가족들이 있기에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고 말했을 때에야 다소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지금 우리의 생명은 누가 부여해 주었는가. 많은 사상가들은 하늘이 부여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천부인권설이 주장되기도 하였다. 우리의 생명권은 하늘이 부여해 주었기에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류는 자살을 금기하는 문화를 만들어 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까지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살아왔다. 우리의 생명은 사랑하는 부모님과 가족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에 의해 지켜져 왔다. 그렇기에 생명은 자신만의 것이 아닌 공동체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 생명을 끊게 되면 우리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기게 된다.       


  지금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당신 혼자 그 모든 고통을 참고 견뎌라.”라고 한다면 너무 가혹할 것이다. 그렇다고 “너의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자살할 수 있어.”라고 권고한다면 그것은 더 비극적일 것이다. 그들의 고통을 우리 사회가 함께 지고 가는 따뜻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죽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지 말라고 말려 주는 사회, 살 수 있는 여러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그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죽음이 아니라 삶을 선택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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