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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네디 Aug 27. 2023

필리핀 시골마을 아버지와 아들(ANAK)

ON THE WAY TO BAGUIO

캐나다 전문 유학원을 운영하던 2008년, 영어권 국가로 어학연수 떠나기 전 기초회화를 다지기 위한 목적으로 필리핀 연계 연수를 계획하는 학생들의 수가 폭증했다.

연계 연수 상담하러 온 신규 등록 학생들 뿐만 아니라 이미 캐나다 수속을 끝내고 출발일이 정해진 시점에서 굳이 3개월 연기해 필리핀을 거쳐 가겠다는 학생들까지 가세하며 수익은 크게 늘었다.

이미 1년 전부터 물가 낮은 필리핀에 어학원을 설립하면 웬만해서는 손해 볼 일 없을 테니 같이 해보자는 제안이 끊이지 않았고 그때마다 정중히 거절했으나, 관련 업무 지식이 쌓이고 어느덧 내 사업체에서 보내는 학생만으로도 손익 분기를 가뿐히 넘어 큰 수익이 예상됐기에 안 할 이유가 없었다.


더운 날씨, 요란한 소음에 더해 후진국 도심의 단점이 확연한 마닐라는 탐탁지 않았고, 세부로 눈을 돌리자니 사방이 휴양지로 둘러싸인 입지가 거슬려 제3의 장소를 물색해야 했다.

당시 스파르타식 운영으로 성공한 어학원이 있다는 정보와 1500m 고지의 시원한 도시라는 매력에 끌려 바기오를 일순위로 정했고, 58년 개띠 동업자를 포함한 일행 셋과 함께 시찰하기로 했다.


250여 km 거리라 해도 도로 사정이 워낙 좋지 않아 당일 왕복하자면 얼마가 걸릴지 예측 불가능한 대장정.

가는 내내 차 안에서 기절한 듯 잠들기 위해 밤을 새우고 새벽에 출발했다.

막상 차에 오르자마자 2003년 밴쿠버를 향해 날아가던 비행기 안 한 남자의 피곤, 가련한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도 같은 이유에 시차적응이라는 목적을 추가해 전날 밤을 새웠지 아마.

그간의 삶이 생리, 생체적 변화를 일으켜 안락한 여행형 인간으로 진화한 상태였으면 하는 작은 기대, 누구처럼 '자고 일어났더니 도착했다'라는 무의식 이동의 소박한 바람을 쇠고챙이로 쪼아 부수듯, 에어컨 바람은 끊임없이 건조한 안구를 찌르고 괴롭힌다.

끄자니 덥고 켜자니 쓰라리고, 영락없는 필요악.

불면에 시달리는 이들의 고통을 눈시리게 절감한다.

나오는 건지 하고 싶은 건지, 그 중간 어느 계급의 존재감으로 간간히 눈물을 짜내는 불성실한 하품을 통해 추정컨대 오감에서 오는 짜증을 감내하며 치르는 장거리 여행 목록의 한 꼭지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슬픈 예감 보다 적중률 높은 불길한 예감.

배가 고프고 화장실도 급해 휴게소에 들르자 절박하게 호소하지만 필리핀 드라이버는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

하긴 있을리 만무했다.

전원이 빚어낸 풍경을 반으로 가른 좁다란 편도 1차 도로에 휴게소는 무슨.

나보다 더 급했는지 눈치보던 일행 중 하나가 큰소리로 쉬었다가자 한다.

길가에 세운 차를 등진 채 소변을 보며 불만 하나를 지운다.

그래도 여전히 남아있는 허기와 불면과 새벽까지 마신 소주가 남긴 두통과 술냄새를 지워 줄 뭔가가 필요하다.

담배를 입에 물고 한모금 빨자마자 후회한다.

입 안 텁텁함을 견디며 음료수 파는 곳이 나올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한다는 막연함이 방금 막 덮친 탓이다.

당연히 누군가 물 한 통은 챙겨 올 거라는 모두의 안일주의가 낳은 갈증 비극.

여러모로 피곤하다.

그나마 다행으로, 내리쬐는 뜨거운 볕이 활기를 불러 일으키는 듯한 기운은 나쁘지 않다.

꼬마 구름 몇 점 떠다니는 청명한 하늘을 훑는 것으로 고생한 안구를 한동안 달래고, 진행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역방향으로 걸어오는 사람 형체 둘이 눈에 들어온다.

흐릿했던 시야가 점차 뚜렸해지며 명확한 형상과 색채, 명암이 구분되기 시작,

뙤약볕에서 일하는 사람들 고유의 검은 피부, 대조를 이루는 밝은 계열 티셔츠 그리고 여덟 살 쯤 되는  아들 양손에 들린 샛노란 바나나 두 송이.

몹시 반가운 마음에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기까지 한다.

하얀 이를 선명하게 드러낸 화답을 봐서는 순조로운 협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보인다.

은인이 될지 모를 사람을 다짜고짜 장사치 취급해서는 안될 터, 불쌍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낸다.

'바기오 가는 길인데 오줌 마려워서 잠시 내렸고, 아버지를 돕는 아들이 착하게 생겼고, 바나나가 맛있어 보이고, (결론적으로)배가 고프고'

'온화한 미소'라는 표현을 셀 수 없이 읽고, 쓰고, 말하고, 듣고, 보고, 지으려 애쓰며 살아왔지만, 내 평생 그리도 완벽한 '온화한 미소'는 경험한 적 없다.

그 선량한 마음의 온기만으로도 빚진 기분이건만, 눈으로 우리 인원을 세는 가 싶더니 아들 손에 있는 한송이를 내 품에 안겨주며 부채감을 가중시킨다.

일행에게 바나나를 맡기고 재빠르게 주머니를 뒤져 500페소를 꺼냈다.

그 시절 필리핀 물가라면 시골 마을 한 가정 5일치 식비에 상응하는 금액.

흔쾌히 받아들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손과 고개를 크게 저어 극구 사양한다.

아름다운 실랑이를 벌이다 방법을 고쳐, 값을 치르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선의에 대한 보답이라는 의미 전달을 위해 그의 손을 감싸고 눈을 맞춰 고개 끄덕였다.

일행 각자 한마디 씩 거들며 내가 바라는 인간미 넘치는 장면을 결국 완성시켰다.

인사하고 떠나는 부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따갈로그로 뭔가 말한다.

기억나는 두 단어, 두 음절 '아낙', '딱보'.

이미 따뜻하게 채워진 가슴, 이제는 바나나로 배를 채운다.

안일주의자들 전원이 감동한 뜻밖의 노랗고 달콤한 유기농 식사.

잦은 마닐라 출장으로 필리핀 대도시 문화에 익숙했던 58년 개띠 동업자가 허겁지겁 바나나를 씹고 뭉게며 방금 사건으로부터의 소회를 밝힌다.


"와! 필리핀 수도 없이 왔다갔다 했지만 진짜 저런 사람은 처음봤다. 주면 그냥 다 받거든. 한 두번 옥신각신 한 적도 있긴 한데 저런 친구는 없어."


나는 일반화를 지극히 싫어하며, 경계한다.

필리핀에서 10년 이상 살아온 연륜과 식견으로 따지자면 과거 그의 문장은 단 한 사람만을 예외로한, 명백한 일반화의 오류를 품고 있다.

하지만 확률적으로는 그가 맞다.

오랜 기간, 여러 차례 식민지배 하에 살았던 영향 때문인지 근성의 모자이크 한 조각은 유난히 크고 도드라진다. 겨울이 없는 더운 나라라는 이유도 한몫 한다.

다만 체류한 날들을 합쳐 고작 2년 남짓한 세월을 보낸 그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한 가지, 외세 침략과 폭정으로 인한 핍박을 더불어 극복하려 했던 그들의 역사에는 나눔의 삶이 있었다.

공으로 얻으려는 염치를, 공으로 나누는 아량으로 상쇄한다고나 할까?

반대편에서 또 다른 색으로 밝게 빛나는 같은 크기의 모자이크 한 조각, 필리핀 시골 마을 한 가장이 건낸 꿀맛 바나나 한송이.


도심 속 건물 숲을 드나들며 바쁘게 일하던 이성의 속박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탁트인 원색 자연에서 만끽하는 감성의 정취가 만족스러웠는지 다들 떠날 기색이 없다.

기사와 저녁에 태풍이 상륙한다는 얘기를 나누던 58년 개띠 동업자가 담배 한 개비만 더 피고 출발하자는 말에 모두가 입에 물어 불 붙이며 동의하고 3분 정도 흘러 차에 오르려는데 멀리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온다.


부자가 오고 있다.

바나나와 조화를 이룬 노란 플라스틱 운반상자를 맞잡아들고, 아버지와 아들이 돌아오고 있다.

아들 손높이에 맞게 허리를 잔뜩 구부려 걷는 아버지와 자식된 도리로 아버지를 도우려 이 악물고 따라나선 아들이 직선으로, 사선으로 힘겹게 동선을 그리며 다가오고 있다.

달려가 그들을 맞았다.

바나나 가득한 운반상자.

고맙고, 미안하고...... 그래서 속이 상했다. 야속하기까지 했다.

아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며 웃는 그가 얄미웠다.

묵묵하고 꿋꿋하게 서있는 아들이 가여웠다.  


'에라 이 양반아'


우리가 왜 그곳에 정차했는지 설명했고, 500페소에 담은 내 뜻을 충분히 이해시켰다고 생각했다.

올 필요 없었다. 서로를 위해 안 왔어야 했다.  

도대체 왜 나를 이토록 괴로울 지경으로 미안하게 하는지 그 저의가 궁금해 물었다.


"왜 돌아온 겁니까?"


이에 아들 어깨에 손을 얹어 몇 걸음 뒤로 물러나게 한 뒤 다시 밝게 웃으며,


"에두카숀"


우리를 떠날 때 아들에게 했던 두 단어, 두 음절 '아낙(ANAK)', '딱보(TAKBO)'는 '아들', '달리다'의 의미였고, '에듀카숀(EDUKASYON)은 교육을 뜻하는 따갈로그였다.

기사에게 아낙과 딱보를 묻고 그 뜻을 들었을 때, 당연히 들뜬 기분에 집으로 뛰어갔으리라 여겼다.

자식에게 합당한 노동의 가치, 공정한 재화 거래를 가르치고, 돈 앞에 당당한 아버지의 모습을 각인시키려는 의도였을 줄이야.

한 가장의 속 깊은 자식 교육과 내 오해 사이의 큰 차이만큼 부끄러웠고, 감동이었다.

교육의 깔끔한 마무리를 위해 바나나를 차에 실어야 했고, 바나나로 남은 허기를 채워야 했으며, 도로 정체로 차가 설 때마다 지나는 사람과 나눠야 했다.


필리핀 가난한 시골 마을 한 가장에게는 가당치않은 요행보다 자식 교육이 우선이었다.

재물, 권세 헤게모니를 추종, 추앙하며 그저 자식들 남보다 편하고, 잘 되게 하려는 자본주의 속물 훈육이 아닌 올곧은 아버지의 행실을 본보기로 자식이 정직하게 성장하기 바라는 참된 인본주의 교육을 몸소 보여주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bmh64itn1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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