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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진욱 Dec 18. 2023

<머리카락 우주>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기

9화

감정 그래프에 대해

위의 이미지는 작품을 처음 기획할 때, 스토리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감정 그래프를 그려보았던 이미지다. 감정 그래프를 그려보면서 어떤 씬이 중요하고, 어떤 순간에 관객의 감정이 고조되면 좋을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자신이 쓴 이야기라도 머릿속에서 한 번에 정리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으로 스토리를 접근하고 분석하면서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한 시간을 가졌다.


감정 그래프와 관련하여 검색하다 AI를 통해 관객들의 감정적 반응을 미리 예상하고 흥행 가능성을 예측한다는 흥미로운 기사를 보았다.(무려 2018년도 기사이다...) 자신의 시나리오를 직접 분석한 감정 그래프와 AI와 분석한 감정 그래프를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은 비교 분석이 될 것 같다. 자체 감정 그래프와 AI 분석 결과를 비교하면서 자신의 감정적 의도와 관객의 실제 반응 간의 차이를 파악할 수 있고, 관객들의 수용성을 고려하여 스토리를 수정하는 등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데 유용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겠다.



AI는 인간이 언제 눈물 흘릴지 알 수 있어


픽사의 애니메이션 ‘업(UP)’의 오프닝은 할리우드 최고의 오프닝 중 하나로 손꼽힌다. 13분 정도의 오프닝은 업의 주인공인 칼과 그의 부인 엘리의 한평생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 우연히 만나서 결혼에 성공하고, 아이를 가지려던 꿈이 무산됐지만 서로에게 의지해 살아가다 엘리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이야기가 잔잔하게 펼쳐진다. ‘업’은 엘리를 잃고 난 칼이 생전에 남아메리카 여행을 꿈꿨던 아내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집에 수천 개의 풍선을 달고 여행하는 이야기다. 오프닝 이후의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오프닝에서 이미 많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맥킨지와 MIT 미디어랩은 이렇게 영화를 보는 관객의 감정적인 반응을 AI 기술을 활용해 미리 예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영화의 특정 이미지가 사람에게 어떤 감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지를 분석한 것이다. 가장 부정적인 감정 반응에 0점, 가장 긍정적인 감정 반응에는 1점을 주는 식으로 각각의 장면마다 0~1점의 점수를 매겨서 영화 전체에 대한 감정 반응을 그래프로 표시했다.


이 분석에 따르면 ‘업’의 오프닝에서 긍정적인 감정 반응이 가장 높게 나타난 순간은 칼과 엘리가 아기를 가지고 싶어 하는 장면이었다. 이때 관객들의 감정 반응 점수는 0.65점에 가까웠다. 이후 엘리가 아기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부정적인 감정 반응이 늘었다가 칼과 엘리가 늙은 이후에도 서로를 안아주며 격려하는 장면에서 다시 긍정적인 감정 반응이 증가했다. 오프닝의 마지막 즈음에서 엘리가 죽고 칼이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에 부정적인 감정 반응이 가장 크게 늘었다. 불과 1분도 안 되는 순간에 0.57점에서 0.39점 정도로 점수가 뚝 떨어졌다.


맥킨지와 MIT 미디어랩은 분석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AI에 2000여 편의 영화를 학습하도록 했다. 할리우드 영화 500편과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비메오(Vimeo)에 올라온 단편영화 1500여 편이었다. AI는 영화마다 관객들이 보이는 감정 반응을 분석했고, 모두 2000여 개의 그래프를 만들었다. 맥킨지는 “2000여 편의 영화를 분석한 결과 사람들의 감정 반응을 크게 다섯 개의 그룹으로 묶을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 기술을 활용하면 영화의 흥행 가능성도 미리 예상하는 게 가능하다고 밝혔다. 맥킨지는 AI가 분류한 다섯 개의 감정 반응 그룹이 소셜미디어에서 각각 어떤 반응을 얻는지 지켜봤다. 그리고 특정한 종류의 감정 반응 그룹이 소셜미디어에서 더 많은 지지를 얻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맥킨지는 “긍정적인 결말이 부정적인 결말보다 더 많은 지지를 얻었고, 결말에 이르기 전에 행복과 불행이 반복해서 주인공을 덮치는 등 감정의 굴곡이 많은 것도 중요한 부분이었다”라고 지적했다.


물론 모든 영화를 똑같은 감정 반응 그래프로 만들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AI 기술을 활용한 이런 분석 결과가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유용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할리우드의 거장인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품도 항상 훌륭한 수준의 이야기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어떤 장면에서 어떤 감정 반응을 보일지 미리 예측할 수 있다면 영화 시나리오 작가들이 이야기의 수준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작업과정에 대해


단편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은 위의 영상처럼 한 샷을 완성하면 다음 샷을 완성시키는 어떻게 보면 단순 반복적인 과정을 거친다.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 작업 중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은 시나리오를 짜는 단계와 각 최종 샷이 완성될 때이다. 처음에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끊임없는 가능성에 즐거움을 느끼고, 그 상상이 현실로 나타나 최종 샷으로 완성될 때는 정말 기쁨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런 순간을 누리기 위해서는 제작비, 인력, 능력 등 다양한 현실적 문제들로 인해 어느 정도 타협해야 하는 메인 프로덕션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메인 프로덕션에서 "정말로 이 애니메이션을 완성시켜야 하나?"라는 의문과 좌절감이 자주 들긴 하지만 창조적 작업을 하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에 신속하게 대처하고 결정하는 민첩성, 그리고 차분하게 인내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닫게 된다.


3D 애니메이션은 렌더링 과정에서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그러나 머리카락 우주 작업의 경우 플레이블라스트를 활용하여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었다. 또한 렌더팜을 이용하지 않고 내 데스크톱에서 모든 신을 렌더 하면서 한 컸다 평균 5분 정도로 빠르게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어 수정이 용이했고, 계속 퀄리티를 높여나갈 수 있어 매력적인 방식이었다. 플레이 블라스트는 원래 애니메이터들이 작업 중에 빠르게 결과물을 확인하도록 고안된 렌더이지만 사실적인 표현 작업을 제외하면 관객이 스토리를 이해하고 몰입할 만한 수준으로 퀄리티가 높아졌다고 생각했다.

또한 우연히 VImeo에서 긴츠 질발로디스(Gints Zilbalodis,  https://vimeo.com/gints )의 단편작품을 보았는데 위의 이미지처럼 단순해 보이는 아트웍이지만, 독특한 카메라 연출을 통해 긴장감을 살려내어 몰입감이 높은 작품이었다. 그의 작업을 보며 플레이 블라스트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 작업에 도전할 수 있었다.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은 단편을 완성한 이후 2019년에 혼자 플레이 블라스트 렌더를 사용하여 <Away>라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완성했다. 한국에서는 이 작품이 인디애니페스트 2029년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상영되었으며 극장에서도 개봉된 걸로 알고 있다. 현재 그는 새로운 장편애니메이션 <Flow>를 작업 중이며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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