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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a Dec 29. 2021

당신은 몇개의 단어로 생각하나요?

첫번째 에세이


 “꺾어보내기


일상에서 술을 나름대로 즐겨본 사람이라면 어딘가의 술자리에서 한번쯤 들어봤을 문장일텐데, 

“어! 술 꺾어 마시기 없기!” 

술잔을 한번에 다 비우지 않고 나누어 마신다는 의미에서 ‘꺾는다’’라는 표현을 잘못?쓰는 재밋는 문장이다. 실제로 ‘꺾는다’는 동사는 물리적인 물체를 구부리고 굽힌다.는 의미를 갖기 때문에 나무가지를 꺾거나 허리를 꺾을 때에나 쓰는 단어인데, 꺾을 수 없는 액체인 술에 붙이는 잘못된 경우이지만 부조화에서 오는 신선함이 그 장면의 시각적 감각을 살리기 때문에 나도 종종 쓰는 말이였다. 하지만 이정도 쯤이야 너도나도 쉽게 쓰는 용례라 영감을 얻기에는 쫌, 이라며 혀를 찰 준비를 한다면 아직 이르다. 


어떤 휴일날 시간이 비어서 서점에 들렸던 날이였다. 머리를 식히는 용도로 활자를 보는 종류의 사람이라 그런 일이 내게는 종종 있는데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그 타이밍에는 타인들의 잡자부리 인생 스토리를 보면 기분이 한결 좋아지기 때문에 인터뷰집을 꺼내서 탐독을 하던 차였다. 그러다가 얻어걸렸다. 

작가였던가,누군가가 자신의 주말 일상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하는데 

“토요일이면 아침 일찍 달리기를 하고 와서 씻고 밥을 해먹고 영화를 보거나 해야 할 일들을 모조리 다 하는 거죠, 그러고 저녁이 되면 글을 쓰기 시작해요. 전 그렇게 주말을 꺾어보내는게 좋아요 


술도 아니고 주말을, 하루를 꺾어보낸다니! 추상적인 개념에 “꺾는다”는 단어를 붙이자 하루를 1막, 2막으로 구분해 새로운 마음으로 두번 살아가고자 하는 어떤 이의 결연한 마음가짐이 단박에 느껴졌다. 게다가 ‘꺾다’와 ‘보내다’가 더해진 ‘꺾어 보낸다’라는 세상 없던 단어로 더블 부조화를 이루기까지 하니 마음이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술을 그렇게 꺾지 않고 마셔댈 때에는 기록하지 못했는데 이 글을 보자마자 얼른 나만의 단어수첩에 기록을 했다. 그리고 덧한 메모에는 ‘단어 자체는 일반적이라도 무엇을 형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가 새로워 질 수 있음’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직업병처럼 생각해보건데 회의를 하거나 기획서에서 활용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흔하게 쓰이는 ‘부캐’, ‘N잡러’와 같이 밋밋해져버린 표현보다 훨씬 시각적이고 상상력을 주는 단어니, 출근해서 한번, 퇴근해서 한번 두번씩 다르게 살아가는 ‘하루를 꺾어사는 사람들’로 표현한다면 또 다르게 다가갈 수 있다. 연결되어 떠오르는 이미지도 다르다. 이럴 때보면 단어의 힘은 정말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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