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재 에세이
“길어올리다”
언어는 사람들 속에서 쉽게 전염된다. 그래서 함께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유난히 자주 선택해서 쓰게되는 단어나 문장들이 꼭 존재하곤 한다. 그 감염경로 같은 건 잘은 모르겠다. 주축이 되는 누군가의 말버릇에서 비롯된 게 모두의 무의식 속에 침투되어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어떤 언어에 많이 노출되면 될수록 많이 쓰게 된다는 법칙이 존재하는지도. 하지만 특정 집단에서만 선택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은 설명하기 매우 어렵다.
광고회사 시절에 자신의 아이디어나 의견을 피력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춘 어떤 CD(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님이 계셨는데, 대화의 절반의 시작이 ‘이를테면’ 이라는 부사에서 출발하곤 했다. (전염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는 점은 심지어 본인은 잘 모르고 계셨던 말습관이였던 것, 무증상감염자가 이런 것인가.) 그 분이 그 단어를 택한 데에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겸손한 뉘앙스로 이야기 하기 위한 전략이였거나, 반대로 레퍼런스나 예시를 충분히 많이 들어야만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다고 오만하게? 생각했던 것이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의도야 어쨌든 간에 듣고 있는 청자로서 ‘이를테면~’ 입이 떨어지자 뒤에 다양한 아이디어가 늘 쏟아져 나오는게 매번 대단하고 신기했기 때문에 ‘이를테면’ 이라는 언어에 대한 기대감, 약간의 환상적 시각을 갖게 되고 말았고, 심지어 회의시간마다 ‘이를테면-‘ 이 등장하면 자동적으로 한시름 놓는 심리적 반응까지 느끼게 되었다. 그 놀라운 이펙트로 꽤 한동안 함께 일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우리도 모르게 ‘이를테면’ 을 자주 쓰게 되었고 실제로 입에 붙어버려서 의식하지 않아도 따라 문장 속에서 양념처럼 사용하곤 했었다.
그렇게 ‘이를테면’의 시절을 보내다 나는 광고회사를 벗어나 카00라는 IT회사로 커리어를 이동하게 되었다. 내가 있던 집단에서 벗어나 새로운 집단으로 옮겨가게 되었던 것이다. 새학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적응기에 놓여지면 인간들은 대체로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달라진 환경을 파악하기 위해서 촉수가 뻗어져 있던 시절,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에 전염되고 싶은? 단어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감염취약층인듯)
팀의 동료가 회의시간에 과거에 잊혀진 아젠다를 언급하는 상황이였다.
‘제가 너무 다시 길어올리고 싶었던 이야기였어요’, ‘새롭게 길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동료는 그 뒤로도 ‘길어올리다’ 라는 단어를 종종 언급했고, 나는 단어에 매료되고 말았다.
깊은 우물과 같은 지하 속에서 무언가를 잡아서 표면으로 ‘길어다’ ‘올려둘’ 때에나 쓰일 법한 동사의 단어이지만, 어떤 개념을 우리의 현재 의식 속에 떠올리게 만드는 행위를 풍부하게 묘사하기에 너무 적절했다. 같은 의미의 문장을 말하더라도 단어 하나의 도움으로 그 주제가 눈앞에 길어 올려지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될 수 있다니, 주목을 만드는 시각적인 표현이였다.
갑자기, 낯선 집단에서 나의 ‘이를테면’의 기억이 길어올려진 것이다.
동료는 기억 속에서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 상황에서 쓰긴 했지만, 여러 장면에서 사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전혀 다른 상황에서 새로운 주제를 이야기 하는 상황에서도. 이를테면 (바로 이렇게 쓰인다)...
현대인의 삶 속에서 아날로그를 길어올리다, AI기술에서 사랑을 길어올리다, whatever…
어쨌든 촉수를 뻗어가며 적응을 요하던 시절, 흥미롭게 적응할만한거리가 (타의에) 길어올려진 덕분에 나는 금새 환경에 적응하고 말았다. 단어의 힘은 이토록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