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야 드럼통 살인사건'은 어떤 배경 위에서 생겼을까
"외국 나가면 한국 사람을 제일 조심해야 해."
이민, 심지어 여행을 하더라도 이 말은 진리인듯 싶다. 개인의 경험치에 따라 분명히 다르겠지만 내 개인 경험치에 따르면 80% 정도는 맞는 얘기인 것 같다. 말이나 통하지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 믿는가 말인가. 하지만 외국에 혼자 덜렁 나가면 한국말만 들어도 신뢰도는 99%까지 치솟는다. 한국에 살 때는 옆집과도 말도 안 트는 내가 외국에 나가면 낯선 바 옆자리에서 한국어가 들리면 먼저 말을 거는 괴현상을 보게 될 것이다.
가정해 보자. 외국에서 아는 사람도 없이 외롭게, 더도 말고 일주일만 있어 보면 같은 나라 사람이 반갑다. 그런데 위의 상황처럼 우연히 바에서 만났다고 치면 초면인데 신분증 좀 보여달라고 하진 않을 것이다. 경찰도 아니고. 그냥 그 사람이 "반갑습니다. 저는 김철수입니다."라고 하면 그냥 김철수인가보다 하고 알고, "어? 저도 김포 사는데요?"하면 동향친구 되는 것이다. 그 양반이 뭐하던 양반인지는 알려고 해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최근 '파타야 드럼통 살인사건'을 접하고 나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터질 게 터졌구나. 그 평화롭고 즐거움만 가득 차있을 휴양지에서 같은 한국 사람끼리, 젋은 사람들끼리 찌르고 담궜다. 이와 연관되어 요즘 'MZ 조폭'들이 활개치고 도주도 용이한 곳이 태국이라는 뉴스 기사를 접했다. 나는 솔직히 MZ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라 이 단어를 쓰면서 말하고 싶지는 않다. 더군다나 연령대이다. 늘어났다고는 해도 꼭 젊은 연령대만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내가 태국에 있었을 때는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오히려 중년층 사이에서 많았기 때문에 나이대 또한 중요하다 생각치는 않는다. 나쁜 놈은 어디에나, 몇 살이 되든 나쁜짓을 저지른다.
그럼 태국이 졸라게 위험한 곳인가? 바에 가면 칼빵맞고 그러는 곳인가? 아니다. 그래도 분위기인지는 알고 싶을 것 같아서 몇 자 적어본다.
방콕의 수완나품 공항은 알다시피 국제 이동선에서 허브를 담당하는 곳이다. 공항 걸어다니다가 지치는 경우가 많았다. 겁나 넓네....... 방콕이 경유지로써 많은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다 보니 장사하는 양반, 무역회사 사람, 여행객도 많고....... 그 사이에 섞여 빌런들이 뒤섞이기도 쉽다.
물론 공항이 허술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최근 마약 사건도 빈번하고 해서 랜덤체크도 계속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뭐 태국으로 흘러들어오는 루트가 하늘길만 있는 것은 아닐 터. 바다도 있고 산도 있다. 태국의 정글은 극악으로 험난한 곳이지만 그만큼 인적도 드물기 때문에 암루트를 짜면 찾기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예전에 탈북민을 도와주는 어떤 유명 다큐를 본적이 있는데, 탈출 루트 중에 태국으로 넘어오는 길을 보고 조금 놀랐다.
태국은 츠렌(ชื่อเล่น)이라고 하여 별도의 이름을 쓴다. 별명이라기 보다는 정식으로 쓰는 예명의 성격이 강하다. 본명이 상당히 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시험 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평소에는 츠렌으로 부른다. 일하는 직장 동료들끼리도 츠렌에 익숙한 나머지 본명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태국 사람들끼리도 본명을 우선 순위로 안 두다 보니 외국 사람들의 이름 역시 대충대충 안다. 어차피 발음도 어렵고, 특히나 한국 사람 이름을 정말 어려워한다. 연말에 학교에서 추첨행사를 하곤 했는데, 내 이름을 적어서 내도 발음을 이상하게 해서 상품을 못 받을 뻔한 적도 있을 정도다.
나쁜 마음 먹고 이름도 속이고 사람 없는 곳에서 슥슥 피하기 참 좋은 동네다. 외국인이라 금방 들통날 거라 생각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외국인 자체가 정말 많은 동네다.
이건 조금 문제의 소지가 있는 내용일 수 있겠지만 뭐, 나중에 사과하기로 하겠다. 태국 경찰들은 일을 선택적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애초에 태국에서 행정처리는 정말, 저엉말, 느리다. 이게 한국 사람 기준에서 느린 것뿐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래 내가 성격 졸라게 급한 한. 국. 사. 람. 이니까!
그런데 뭐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거나 여행해 본 사람들 말에 의하면 한국만 좀 빠른 느낌이라고 하니까 태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고, 우리나라도 외국인 범죄 수사에서는 난감해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태국 경찰만 탓할 수는 없겠다. 다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태국 경찰분들은 돈이 있으면 더 열심히(?)일하는 분이 아직도 많다는 것이다. 태국에서는 이런 말이 떠돈다. 사업하려면 무조건 친한 경찰 한 명 정도는 끼고 있어야 한다. 태국 경찰분들은 자국민 보호를 원칙으로 외국인들에게 불리한 처사를 하는 편인데, 과장을 보태면 이런 경찰이 내편이라면 날개를 돋고 태국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된다.
애둘러 돌려 말했지만 까놓고 말해서 청렴도가 높지 않다. 봐줄 때는 쿨하게 사정을 봐주기도 하지만 돈이 궁하면 갑자기 뜬금없는 구간에서 음주단속, 오토바이 단속(외국인 관광객 위주로)도 하면서 수금을 하기도 한다. 그게 정식적인, 정기적인 단속인지는 그들만 안다.
태국은 은퇴비자로 오는 사람들이 많다. 잔고 증명으로 몇 천만 원 이상이면 비자가 나온다. 그만큼 노후를 기후 따뜻하고 분위기 여유로운 곳에서 보내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가장 인기 있는 곳이 치앙마이인데, 나는 처음에 갔을 때 '노인을 위한 도시'인가 싶을 정도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이 계셨다.
한국 사람 중에는 중년층이 유독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젊은 사람들은 당시 유행했던 '한달살기'가 거의 90% 이상이었다. 모을 만큼 모아서 여유롭게 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뭔가 문제가 있어서 한국 살림을 정리하고 쌈짓돈 끌어 모아 온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은 한식당을 겸하면서 현지여행사 사업을 하는데 유명한 곳이 아니면 6개월 안에 폐업하거나 이전하기 일쑤다.
태국은 외국인이 땅을 매입할 수 없고 건물만 살 수 있는 거로 알고 있다. 그래서, 태국인 명의를 빌려준다고 하면서 사기를 친다. '어디에 큰 콘도가 생길 것이다, 이곳에 큰 쇼핑몰이 들어설 것이다'라는 말로 꼬득여서 거하게 부동산 투자 사기를 치는 경우도 당시에는 심심치 않게 들렸다. 태국에서 처음에 큰 재미를 못 본 사람들은 이런 말에 자기도 모르게 투자하게 된다. 이런 간 큰 양반들은 이렇게 뜯은 돈으로 옆나라 캄보디아나 라오스 등지로 빤스런을 친다.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자는 필리핀에만 가는 게 아니다. 태국에도 꽤 많이 숨어 들어온다. 나는 사실 태국 오기 전에 인터넷이 겁나 느리다는 얘기를 들어 잔뜩 겁먹었는데 웬걸, 인터넷 정말 잘 된다. 'AIG'라고 우리나라로 치면 메이저 통신 3사 같은 회사가 있는데, 여기를 필두로 5G를 대대적으로 밀기 시작하더니 상황은 더 좋아졌다(AIG 모델이 된 블랙핑크 리사가 도시 곳곳을 장악했었다......). 괜히 치앙마이가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가 아니다. 씁쓸한 건 이에 더불어 범죄의 성지가 될 발판이 된 것도 사실이다.
정리하자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참 '듬성듬성'인 부분이 없잖아 있다. 나쁜 양반들은 그걸 참 찰떡같이 잘 이용하는 것 같고. 사실 이렇게 얘기해도 어둠의 세계와의 경계가 얇을 뿐이지, 관심이 없으면 전혀 상관없이 살 수 있는 좋은 곳이다. 몇몇 나라처럼 특별히 우범지역이 있는 나라도 아니다. 요즘의 태국이라면 대마를 조심해야겠고, 조금 더 나아간다면 너무 친절하거나(?) 쎄한(?) 한국 사람만 조심하면 별 문제가 없다. 여행하기 좋은 태국이 계속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