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장 헷갈리거든요
우리 할머니를 비롯해 집안 어르신들 역시 카톡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신다. 하지만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신 만큼 프로필 꾸미기에 인색하신 편이다. 기본 배경으로 해 두시는 경우도 많은데, 문제는 요즘 들어 기본 배경으로 두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어서 실수를 할 뻔한 적이 여럿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우리 할머니와 내 친구 두어 명이 그러한데 이들이 거의 동시간대에 메시지를 보내거나, 내가 확인을 못 하고 있다가 정신없는 상태에서 보면 상대를 바꿔서 대답을 하는 멍청멍청한 경우가 반드시 생긴다. 가령,
할머니: 어디니?
우리 할머니께서 자주 사용하시는 ~니? 화법이다. 하지만 나의 친구 중 몇 명도 이런 화법을 정말 자주 사용한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에게 대답을 하게 되는데, 정작 받는 사람은 친구가 되는 마법같은 일이 벌어진다.
친구 A: 어디뉘?
나 : 저 A랑 저녁먹고 들어갈 것 같아요.
친구 A: 그러뉘? 난 그럴 생각이 없는데?
나: : 네?
친구 A: 꺼지라고.
나 : 아, ㅋㅋㅋㅋㅋ 야이 미친
이 미칠듯한 전국민 카무플라주(camouflage) 기술 때문에 나는 일할 때는 정신 바짝차리고 카톡을 보내려고 애쓴다. 선생님 중에는 많지 않지만 학생들 중에는 기본 프사인 경우가 참 많다. 일하는 도중에는 정말 이 수많은 위장 군인(기본 배경)들이 총(메시지)을 쏴대는데, 이름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 나고야 말 것 같다. 이름이야 내가 지정할 수 있다지만, 가끔은 정말 이들의 프사를 싹다 바꿔주고 싶다.
예전에는 프로필 시스템이 적용된 그 어떤 것을 접하면, 정말 온 신경을 집중하여 관리했던 것 같다.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아마 그 시초가 아닐까. RPG 게임도 아닌데 나만의 캐릭터를 꾸미고 집도 꾸민다. 아바타가 따로 없다. 1~2년 전에 전망 있을 거라고 예상했던 '메타버스'기술에 사람들이 열광할 때 회의적인 입장을 가진 나였지만, 열광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충분히 이해하기는 했다. 내 캐릭터를 꾸미는 것은 정말 '미칠듯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단순한 프로필이라기 보다는 또다른 나 즉 '아바타'로서의 기능이 확실했던 것 같다. 이 시절에는 게임 쪽에서도 MMORPG가 유행했는데, 레벨업을 한창 땡겨 놓고 할 것이 없으면 같은 팀원끼리 수다나 떠는 아바타 채팅 재미도 쏠쏠했다.
카톡 프사는 사실 이런 것들보다는 인스타그램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지금이야 인스타그램이 허영과 망할 갬성의 온상이 되어 나를 비롯 젊은 사람들이 망상수치를 올리는 데 일조한 요물이었지만, 당시에만 해도 사진 원툴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플랫폼이었다. 내 일상을 공개하면서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자연스럽게 노출시키는 프로필 시스템의 전형이었다. 카톡도 이쯤되어 카카오스토리니 뭔가를 만들었지만 크게 활용하는 사람을 본 적은 많지 않다.
그래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의 활용도는 자신의 모습을 표출하는 기능으로 한국 사람들에게는 이제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되었다.
나도 처음에는 프로필 사진을 주기적으로 바꾸며 나만의 시즌이 바뀌어가는 것을 표출하고 있었지만, 요즘은 그게 점점 귀찮아진다. 기본 프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물어 본 적은 없지만 이들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기본 프사를 하는 사람들은 꽤 되는데, 이들도 한때는 SNS 꾸미기에 소홀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나이가 들며 굳이 꾸며하는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걸 수도 있고, 그저 몰개성을 추구하는 것일 수도 있고. 예전에야 다른 사람 프사도 꾹꾹 눌러보면서 눈팅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이제는 현생살기 바빠서 그냥 프사 이름과 전화번호가 잘 일치하는지, 내가 메시지만 똑바로 보냈는지만 확인해도 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여태껏 나를 표현하는 수많은 방법을 동원해 봤지만 결과가 허무하기 때문에, 면대면으로 만나는 인맥에만 집중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제는 탈 SNS를 하느 사람들도 점점 늘기 때문이다. 요즘 페이스북 하냐는 질문에 대다수는 안 한다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계정도 없앴다고 한다. 인스타도 점점 그렇다. 카카오톡도 최소한의 채팅 기능만 남겨 놓은 채 사람들은 하나씩 하나씩 내려 놓고 있는 것 같다. 헷갈려도 어쩔 수 없다. 이젠 이런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