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야연도리원서 : 이백
【아이 러브모텔】
1.
무릇 하늘과 땅이란 것은 만물이 머물다 가는 여관 같고, 해와 달이란 것은 영원한 시간을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와 같아. (夫天地者 萬物之逆旅 光陰者 百代之過客)
- 하늘과 땅은 만물이 잠깐 머물다 가는 ‘모텔’과 같고, 해와 달도 영원의 차원에서 보면 그저 지나가는 손님일 뿐이야.
부표처럼 덧없는 인간의 삶은 그저 꿈같은 거야. 이 인생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은 또 얼마나 될 것 같아? 옛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밤에 놀았다 하니, 과연 그 까닭이 있음이야. (而浮生若夢 爲歡幾何 古人秉燭夜遊 良有以也)
- 그에 비한다면, 진실로 인생은 그저 한바탕 찰나의 꿈일 뿐이야. 그래서 옛사람들은 시간이 아까워 밤에도 촛불을 켜고 놀았다 하니, 그 까닭은 말 안 해줘도 알겠지?
《이백(李白):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 中 일부 인용.》
2.
20여 년 전 사십 대 엄마는 가게가 망하고, 여관 청소 이모가 됐다. 청소 이모일을 시작으로 시간은 흐르고 흘러 강원도 영월에서 카운터 이모가 됐다. 영월과 내가 있는 곳은 거리가 꽤 멀었다. 전화로 엄마에게 안부를 전하며 “엄마. 안 힘들어?”하고 물었다. 엄마는 “안 힘들어. 잠을 좀 못 자는 것 빼곤.”이라고 답했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겨울 방학을 맞아 엄마를 만나러 고속버스를 타고 영월에 갔다. 영월의 겨울은 매서웠다. 엄마가 일하는 여관에 도착했고, 카운터 방 한편에 앉아 손님들에게 돈을 받고 방 키를 건네는 엄마를 거들었다. “잠깐만. 방 좀 치우고 올게.” 엄마가 말했다. “손님 오면 어떻게?”라는 내 다급한 물음에 “대실은 15000원, 숙박은 30000원, 칫솔, 면도기 주면 돼. 온돌방은 홀수 열쇠고, 침대방은 짝수열쇠야.”라는 대답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반달 구멍 창틈으로 인기척이 느껴질까 바짝 긴장하고 앉아있었다. 이윽고 검은 그림자가 반달창에 바짝 다가왔다. “대실이요.” “15000원입니다. “ 난 돈을 받고 아무 키나 잡아 검은 그림자에게 내밀었다. 한 번 해보니 별거 아니었다. 엄마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 같진 않아서 조금은 안심이 됐다.
3.
밤이 되자 엄마는 내게 키를 하나 주며 방에 가서 자라고 말했다. “아니야. 엄마. 옆에 있어줄게.”라는 내 말에 “가서 자.”라고 간명하게 대꾸했다.
큰소리에 잠이 깼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여자가 한 아저씨와 욕지거리를 주고받고 있었다. 엄마는 둘 사이를 두 팔로 벌려 말리는 중이었다. 내가 엄마에게 다가가 “무슨 일이야.”하며 소리쳤다.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리더니 경찰 두 명이 여관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 아저씨와 스카프 여자를 떨구었다. 스카프 여자의 블라우스 가슴 위쪽에 핏자국이 얼핏 보였다. 여자는 “이 새끼가 커피를 시켰으면, 커피만 마셔야지.”하며 씩씩거렸다. 그들은 잠시 후 경찰과 함께 여관에서 사라졌고 새벽녘 고요가 다시 찾아왔다. 엄마는 카운터 방으로 들어가며 내게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뭐 하러 나왔어. 어서 들어가 자.”
4.
<아이 러브모텔>을 단숨에 읽었다.
책을 덮자 오랜 시간이 지난 그때가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밤과 밤들 사이를 오로지 홀로 마주했을 사십 대 엄마의 담대함이 사무쳤기에.
한 집의 가장이라는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우리들을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뜻밖의 나이가 나 역시 되어버렸기에.
5.
책은 언제나 나를 비추는 거울인 것 같다. 다만 책이 나를 비추기 위해선 우선 저자가 자신을 솔직하고 담대하게 써 내려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백은정 작가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였고, 그녀의 첫 책은 있는 그대로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주었다.
백은정 작가의 담대한 오늘과 내일을 온마음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