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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모래 Sep 04. 2021

아니 근데 얘 말 좀 들어봐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그니까 나쁜놈은 나쁜놈인데

나는 마블과 심적으로 복잡한 관계에 있다. 언젠가부터 마블 영화를 보고 기분이 마냥 좋았던 적이 별로 없다. 실망하거나 재미는 있는데 뭔가 찝찝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스스로도 왜 마블을 욕하면서 마블 영화가 나오면 극장으로 달려가 세금 내듯이 티켓값을 납부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팝컬처 중독자에게 지난 십여 년간 마블의 존재감은 도시의 네온사인과도 같아서 안 보고 싶다고 안 볼 수도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당신이 마블의 전성기에 십 대와 이십 대를 보냈다면 필연적으로 가슴속에 어벤저스 한 명쯤은 품고 사는 법이다.(나타샤 사랑해)


세계관 끝판왕 빌런의 손가락 튕기기로 인구의 절반이 사라졌다가 돌아온다는 무리수 설정을 역시나 수습하지 못하고 대충 끝내 버린 <어벤져스:엔드 게임>의 여파는 그 이후에 나오는 모든 마블 영화와 드라마에 영향을 끼쳤다. 타노스를 처치하는 게 정말 "엔드 게임"인 것처럼 굴 땐 언제고 세계관은 계속 이어가야 하고 새로운 캐릭터도 계속 소개해야 하니, 이젠 새로운 히어로들의 등장에 일단 변명부터 붙이고 시작할 수밖에 없다. 곧 개봉 예정인 <이터널스>에서 신적인 존재들이라는 이터널스가 '우리가 타노스 때 왜 없었냐면 웅앵...'하고 변명하는 모습은 애잔하기까지 하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2021)

화려했던 마블의 첫 세대가 마무리되고 나온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두 번째 세대의 시작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작품이다. 그리고 <샹치>는 전략적으로 첫 번째 페이즈에서 쌓아 놓은 배경에 딴청을 부리는 길을 택한다. 영화는 어벤저스와 타노스 그리고 '블립'에 대해서 최대한 언급을 아끼고 고굽척하며 새로운 히어로와 새로운 세계를 소개한다. 이 전략은 꽤나 영리하다. 나를 포함한 일부 마블팬들은 아마 관짝에 들어갈 때까지 <엔드 게임>을 비롯한 각종 설정 구멍들을 욕하겠지만 사실 이런 과몰입 오타쿠가 전체 마블 관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얼마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샹치>는 대다수의 관객들이 마블 영화에 기대하는 요소들 - 잘 짜인 액션과 매력적인 배우들 그리고 화려한 시각효과를 보여주며 그 기대치를 충족시킨다. 특히 무협 장르의 팬이었거나 <캡틴 아메리카:윈터솔져>의 핸드 컴뱃 액션을 좋아했다면 <샹치>의 액션씬들이 아주 만족스러울 것이다.


또한 <샹치>에서 칭찬할 만한 지점은 액션에 홍콩 무술 영화들을 레퍼런스 삼고 내러티브에 중국 신화를 백분 활용하지만 서양인들이 아직도(!) 못 버리는 오리엔탈리즘의 함정을 피해 간다는 부분이다. 이미 이 백인놈들은 <닥터 스트레인지>같은 것을 만든 전적이 있기에 불신의 눈초리로 바라봤지만 놀랍게도 좆같은 오리엔탈리즘이 (거의) 없다! 아마 이 부분은 감독을 위시한 제작진에 아시아계가 포함된 것의 영향일 것이다. (그러니까 마블은 부디 <블랙 위도우>와 <샹치>의 성공을 초석 삼아 여성의 이야기는 여성에게 아시안의 이야기는 아시안에게 맡기기 바란다.)


그런데 영화의 시작과 함께 소개되는 텐링즈(웬우)의 화려한 전설을 듣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그가 그렇게 위대하고 강력했다면 타노스가 세상을 박살내고 있을 때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지나가던 외계인도 잡아서 호구 조사하는 쉴드가 미국 테러도 했다는 이자의 존재를 몰랐다고? 이렇게 얼레벌레한 설정이 어이가 없어서 마음속 한구석에서 '아니 근데...'가 튀어나오려고 할 때 <샹치>는 닥치고 양조위를 봐!를 시전해 관객의 주의를 돌리고 불평을 무마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샹치>의 전략적 고굽척을 가능케 하는 일등 공신은 양조위다.


눈을 봐라


양조위가 연기한 웬우의 설정은 이렇다.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악당이지만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 권력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자신의 과오로 아내를 잃고 훼까닥 돌아버린다. 어디서 많이 본 설정이라고? 맞다. 그런데 이 설정에 망한 사랑 전문가 양조위를 얹는다. 짜잔 모두가 아는 맛이지만 알아서 거부할 수 없는 그 맛이 완성된다.


웬우는 이상적인 연인이었을지는 모르나 이상적인 아버지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복수에 미쳐 아들은 살인 기계로 키우고 딸은 소외시키고 방치했다. 게다가 '어디서 감히 여자가'와 '어디서 감히 어린놈이'를 시전 하는 쉰내 나는 유교형 가부장 빌런이다. 그런데 양조위의 껍데기를 하고 죽은 아내의 목소리가 들린다며 아련한 눈빛을 하니 '아니 그래도 얘기는 한번 들어보자'가 된다. 양조위의 존재가 극에 부여하는 핍진성과 무게감은 연기가 예술의 영역이라는 것을 그리고 영화에 있어서 배우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상기시킨다.


신인 배우를 주인공으로 쓰면서 상대역에 베테랑 중견 배우를 데려오는 것은 이미 마블이 여러 번 반복해 온 전략이다. 그런데 문제는 양조위의 존재감이 주인공을 압도해 버린다는 것이다. <샹치>인데 샹치의 매력이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아콰피나의 '케이티'나, 동생 '샤링', 그리고 양자경이 분한 '난'이 매력적이다. 제작진도 이런 약점을 모르진 않았는지 케이티를 투톱 수준의 주연으로 등장시키며 샹치와 케이티의 상호작용에서 재미를 끌어낸다. 초능력도 없이 그 난장판을 기꺼이 따라가는 케이티의 깡 하나만큼은 히어로급이니 이 참에 후속편을 <샹치와 케이티>로 만드는 것도 좋은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다소 힘이 달리는 주인공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샹치>가 성공적인 오락 영화라는 것은 분명하다. 앞서 말했듯이 <샹치>는 우리가 코믹북 영화에 기대하는 요소들을 성실하고 우직하게 충족시킨다. 이런 훌륭한 팝콘 무비를 보면서 팝콘을 씹을 수 없는 이 시국이 애석할 정도로. 적절한 기대를 갖고 간다면 당신은 영화가 끝나고 호텔 캘리포니아를 흥얼거리며 상쾌한 기분으로 극장을 나설 것이다. 그리고 양조위의 필모그래피를 뒤지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럼 난 화양연화 복습하러 가야 해서 이만.



사족.

전투의 클라이맥스를 거대한 용과 러브크래프트 풍의 괴수가 튀어나와 장식하는 것은 전개상으로는 뜬금없었지만 거대 괴수 마니아에게는 뜻밖의 보너스였다. '드웰러'를 비롯한 <샹치>에 등장하는 다양한 크리처 디자인들은 정말 훌륭하다. 이참에 마블이 코즈믹 호러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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