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 김재경 박사는 2014년 가을 한국에서 열리는 한국산업응용수학회 강연을 위해 인천공항에 내렸다. 그는 당시 미국 오하이오주 컬럼버스에 있는 수리생명과학연구소(MBI)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공항에 내려 꺼놨던 핸드폰을 켜니, 이메일이 와 있었다. 발신자는 카이스트 수학과 학과장 곽시종 교수. 곽 교수는 카이스트 수학과 교수 채용을 위한 면접에 응할 것을 그에게 요청해왔다. 김재경 박사는 ‘이게 말로만 듣던 들러리인가’라고 생각했다. 뽑아놓을 사람은 정해놨고, 모양새를 만들기 위해 몇 배수 후보에 들어갈 들러리가 필요한가보다 라고 판단했다. 6월 30일 대전 IBS(기초과학연구원) 이론동 3층의 의생명수학그룹 사무실에서 만난 김재경 교수는 “누군가는 들러리도 서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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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편한 차림으로 한국에 왔다. 헌데, 돌발 상황이 발생하자 양복을 사야했다. 들러리라고 생각하니 투자할 필요가 없었다. 백화점에 가서 10만원 미만인 가장 싼 양복을 사고, 구두는 사기가 아까워 누군가로부터 빌려서 신고 갔다. 대전에 가보니, 김재경 박사 단독 면접이라고 했다. 또 놀랐다. 첫날 수요일 학과 교수들 면접을 통과했고, 다음날인 목요일에는 자연과학대 학장 면접, 금요일 카이스트 총장 면접 순으로 선발과정이 진행됐다. 그렇게 해서 김재경 박사는 카이스트 수학과 교수로 채용되었다.
김재경 교수는 “그전까지는 피인용지수가 높은 논문을 쓰지 못했다. 카이스트가 왜 나를 교수로 뽑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김재경 교수는 생물학 문제를 수학으로 푸는 수리생물학자다. 수리생물학자가 필요하다고 카이스트 수학과가 판단한 게 자신을 선발한 배경이 아닌가라고 풀이하고 있다.
김 교수는 미국에서의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정리하고 2015년 5월 카이스트 수학과 교수로 일하기 시작했다. 대전에 오고 석달 후인 2015년 8월에 최상위 학술지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다음달인 9월에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그 다음달인 10월에는 분자세포(Molecular Cell) 저널에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김 교수는 “카이스트 부임 직후에 좋은 학술지에 논문을 연달아 내게 되어 나를 뽑아준 분들이 안도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김재경 교수는 카이스트에 부임한지 6년이 지난, 지난 3월 IBS에 의생명수학 그룹을 만들었다. IBS는 31개 연구단을 갖고 있으며, 연구단 시스템말고 그보다는 규모가 작은 ‘그룹’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IBS 내 의생명수학 그룹을 이끄는 CI(Chief Investigator)가 되었다는 건 수리생물학자로서 다져온 기반을 보여준다.
김 교수는 “수리생물학자는 연구를 위해 컴퓨터와 종이, 책상, 펜만 있으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 커피도 있어야 한다. 폴 에르디시라는 헝가리 수학자가 말한 바 있다. 수학자는 커피를 정리로 바꾸는 기계’(A mathematician is a machine for turning coffee into theorems)라고”라고 했다.
수리생물학은 무엇인가? 생물학 문제를 수학이란 도구를 갖고 푸는 사람이라는 상식만 갖고 그를 찾아갔다. 김 교수는 “나는 학부에서 수학을 공부했고(서울대 수학교육과 01학번), 박사도 수학과를 나왔다(미국 미시건대학). 박사 때 공부한 게 수리생물학이다. 수리생물학은 수학을 이용해서 생물학 문제도 풀고, 의학 문제도 푼다”라며 “우리가 중학교 때 배우는 피보나치 수열이 수리생물학의 가장 쉬운 예”라고 말했다.(피보나치 수열은 이미지 참고)
토끼가 증식하는 속도를 설명하는 게 피보나치 수열이다. 토끼가 모두 몇 마리인가를 세는 문제는 이렇다. ‘한 쌍의 토끼가 있고, 이들은 매월 한 쌍의 토끼를 낳는다. 태어난 한 쌍의 토끼가 다음 달부터 한 쌍의 토끼를 매월 낳기 시작한다. 그러면 1년이 지나면 토끼는 몇 쌍일까?’
참고로 피보나치 수열은 1, 1, 2, 3, 5, 8, 13,…이다. 피보나치 수열은 토끼 쌍 수가 처음 시작부터, 한달이 경과한 매 시점에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시작 때는 1 쌍, 한 달이 되었을 때는 짝짓기가 가능해졌을 뿐이니까 여전히 1 쌍이다. 두 달이 지나면 2쌍이 되고, 석 달이 지나면 3쌍이 되고, 넉 달이 지나면 5쌍이 된다. 김 교수는 “토끼 개체 수는 생물학 문제이고 피보나치 수열은 그걸 숫자로 표현한다. 수리생물학은 뭔가 우리가 관심 있는 생명현상을 수열로 표현할 수도 있고, 미분방정식, 혹은 위상수학 등 다양한 수학이론을 이용해서 표현한다. 이 덕분에 생명 현상을 컴퓨터에 구현하는 게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생명 현상을 컴퓨터 안에서 구현한다는 게 무슨 말일까? 김 교수에 따르면 수리생물학자는 예컨대 동물 세포(cell)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컴퓨터 안에서 일어나게 하고 싶어 한다. 가상 시뮬레이션이다. 세포 안에서 분자들이 반응하는 걸 컴퓨터 안에서 똑같이 실험하려고 한다. 컴퓨터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인 수학의 언어로, 수리생물학자가 관심 있는 생명현상을 표현하고, 컴퓨터가 그걸 풀면 바로 생명 현상을 컴퓨터 안에 그대로 구현하는 게 된다. 김 교수는 “수리 생물을 간단하게 표현하면 뭔가 관심 있는 생물학 현상이 있고, 그걸 어떤 수식으로 표현하고, 그 수식을 컴퓨터 안에 입력한다. 물론 컴퓨터는 0과 1로만 이해하겠지만, 그걸 컴퓨터는 계산한다. 컴퓨터 안에 구현했으니, 이제 이걸로 실험할 수 있게 된 거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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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에 따르면 생물학 실험에는 세 종류가 있다. 실리콘 반도체가 들어간 컴퓨터를 사용해서 하는 실험인 ‘in silico experiment’, 실험실 페트리 접시에서 배양한 세포를 갖고 하는 실험인 ‘in vitro experiment’, 생체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인 ‘in vivo experiment’다.
수리생물학의 큰 이슈는 무엇이 있을까? 뇌를 컴퓨터 안에 구현하는 게 최대 이슈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시작한 뇌 이니셔티브(Brain Initiative)가 뇌의 데이터를 모아서 컴퓨터 안에서 구현해 보겠다는 거다. 그는 “우리가 꿈꾸는 건, 수리생물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컴퓨터 안에서 구현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질병이 왜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신약을 개발하고 싶다고 하면 데이터를 그 안에 넣어보면 된다. 물론 이런 일을 해내는 게 1000 년, 2000년이 걸릴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인체의 생명현상을 완전히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체의 부분부터 연구 해가고 있다. 가령, 심장을 보는 사람은, 심장만이라도 컴퓨터 안에 완벽하게 구현해 보려고 한다. 피부를 하는 사람은 피부를 구현하려고 한다. 세포 연구자는, 세포 안에서 분자들의 상호작용만이라도 어떻게든지 보려고 한다. 김 교수 같은 연구자는 세포에서 시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관심이 있어 그걸 보고 있다.
그에게 뇌 프로젝트 말고도 다른 조직을 이해하려는 큰 프로젝트가 있는지를 물었다. 김 교수는 “심장의 경우도 연구가 몇 십 년 됐다”면서 이야기를 들려줬다. “가령 심장이 갑자기 멈추는 심 정지(Cardiac Arrest)가 있다. 심정지가 왜 갑자기 올까? 그 원리만 몇 십 년째 계속 하는 사람도 있다. 심장에서는 전기 파동이 예쁘게 퍼져나간다. 심장이 한 번 쿵하면 전기 파동이 아름답게 생긴다. 그런데 심정지가 올 때는 예쁜 파동이 아니라, 전류가 소용돌이처럼 흐른다. 예쁘게 생기던 리듬이 소용돌이로 바뀐다. 그걸 특이점(Singular Point)라고 부른다. 갑자기 뭔가 덜커덕 걸리는 거다. 사람들은 왜 소용돌이가 생길까를 연구했다. 왜 생기는지도 궁금하고, 미리 탐지해서 심 정지를 막을 수는 없을까를 연구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에는 김 교수처럼 수리 생물학자가 많을까? 그는 “많지 않다. 10명 정도 될까 싶다. 암의 성장을 컴퓨터를 갖고 연구하는 사람이 있고, 코로나 확산 속도를 연구하는 연구자가 있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수학 박사학위를 따는 10명 중 1명이 수리생물학자다. 10년 전에 그랬다. 지금은 더 많을 것이다. 통계학자는 절반이 의학을 한다. 그 분야는 생물통계학((biometrics statistics)이라고 한다.
김 교수도 2008년 미국 미시건 대학으로 유학 가기 직전에야 수리생물학이라는 분야를 알았다. 군대생활을 진주 항공과학고에서 미적분을 가르치며 하던 중 인터넷‘다음의 카페 ‘수푸동’(수학문제 푸는 동네)에 올라온 글을 보고 알았다. 카이스트 대학 신문에 나온 글이 카페에 올라왔는데, 그걸 읽었다. 글은 옥스퍼드대학과 뉴욕대 수학자는 심장을 연구한다, 심장이 멈추는 이유를 수학으로 찾는다라는 내용이었다. 서울대 학사를 마치고 대학원 석사 과정에 등록해놓고 군 장교로 복무하던 그는, 이 글을 보고 놀랐다. 순수 수학 말고 이와 같은 응용수학 분야가 있다는 걸 처음 접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몇 번이나 글을 읽었는지 모른다. 휴가를 받자마자 서울대 도서관에 가서 수리생물학 책을 찾아봤다. 몇 권 있었다. 그래서 수리생물학을 공부하기로 하고,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당초는 유학 생각이 없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미시건대학으로 공부하러 간 건, 그곳은 수리생물학자가 다른 대학에 비해 많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수리생물학에서도 하루 주기 리듬(Circadian Rhythm)에 관심이 많다. 미시건대학의 대니얼 폴저(Daniel Forger) 교수가 ‘생체 시계’ 연구자였다. 몸 안에 시계가 있어 어떻게 하루 24시간 주기의 생체 리듬이 만들어지는지를 알아내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김재경 박사과정 학생은 연구가 재미있었다. 24시간 주기의 리듬을 만들어주는 유전자가 있고, 이 유전자 이름은 ‘피리어드’(Period)다. 피리어드 유전자를 발견한 사람을 포함해서 세 사람이 2017년 노벨생리의학상(마이클 영, 제프리 홀, 마이클 로스배시)을 받은 바 있다.
세포 내 피리어드 단백질 양을 보면, 하루 24시간을 주기로 늘어났다가 줄어났다 하기를 반복한다. 학교 다닐 때 배운 사인(sine) 곡선을 그린다. 피리어드 단백질 량이 세포질 안에서 너무 많아지면 이걸 줄이는 ‘억제 피드백 고리’(Inhibitory Feedback Loop)가 생긴다. 피리어드 단백질이 핵 안으로 들어가 DNA이중나선에 들어있는 ‘피리어드 유전자’를 읽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 피리어드 단백질이 추가로 합성되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시간이 지나면 세포 내 피리어드 단백질 숫자가 줄어든다. 단백질도 세포에서 시간이 지나면 줄어드는 게 자연스럽다. 파괴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12시간이 지나면 피리어드 단백질을 다시 만드는 일이 세포 안에서 시작된다.
김 교수는 여기까지는 교과서에 나오는 얘기라고 했다. 그가 가진 과학적인 질문은 이랬다. 피리어드 단백질이 핵에서 생산되는 걸 막기 위해서는 핵 밖에 있던 피리어드 단백질이 핵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것도 모여 있다가 일제히 한꺼번에 들어가야 한다. 조금씩 천천히 들어가면 안 된다. 핵 밖의 피리어드 단백질은 핵 안에서 만들어져, 밖으로 나간 것들이다. 얘들은 출생 시점이 다르고 핵 밖의 세포질 내 위치도 다르다. 그런데 어떻게 특정 시간이 되면 일제히 핵 안으로 몰려 들어가는 것일까? 단백질 수천 개가 딱 12시간이 지나면 일제히 동시에 몰려 들어갈 수 있는 걸까?
세포 내부는 매우 혼잡하다. 물질이 가득해서 이동하려면 걸리적거리는 게 많다. 극심한 교통체증이 세포질 안에 있는 듯하다. 피리어드 단백질들이 핵밖에 잔뜩 모여 기다리고 있다가 일제히 들어가는 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 조금씩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24시간 주기의 사인곡선이 만들어지지 않으니까. 피리어드 단백질들의 협동심의 근원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에 도전했다. 김 교수는 “2017년 노벨상을 받은 연구자들도 일제히 몰려 들어가는 분자들의 메커니즘을 설명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김재경 교수 연구는 2014년에 시작했고, 2020년 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결과를 보고했다. 김 교수는 연구방법에 대해 “블랙박스를 푸는 건 수학자가 하는 일“이라며 ”(숫자 퍼즐인) 스도쿠 문제를 풀듯 이것저것을 블랙박스에 넣어봤다“라고 말했다. 세포핵 밖의 세포질에 있던 피리어드 단백질이 핵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인(P) 원소가 몇 개 붙어야 한다. 인산화 시키는 다른 단백질이 핵 주변에 있으면 모여 있다가 일제히 들어가나 하는 가설 등 몇 개의 가설을 만들었다. 김 교수는 ”컴퓨터로는 가설이 옳은지 그른지를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다. 1주일 만에 결과 확인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컴퓨터로는 이렇게 빨리 생명과학 분야의 시뮬레이션 실험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랍게 들렸다. 생명과학자가 같은 걸 실험으로 확인하려면 1년 이상 걸릴 수 있다.
김 교수가 대형 모니터에 관련 자료를 띄워서 보여주는 데, 세포핵과 세포질에 점들이 찍혀 있다. 피리어드 단백질 한 개를 점으로 표현했다. 첫 그림에는 핵 안에는 점들이 거의 없고, 핵 밖의 세포질에 많다. 두 번째 그림에는 핵막 주변에 점들이 대단히 몰려 있다. 그리고 세 번째 그림을 보니, 핵 안에 점이 가득하다. 피리어드 단백질 하나를 점으로 컴퓨터에서 어떻게 찍는지 궁금했다. 김 교수는 “미분 방정식, 확산방정식을 사용했다. 미분방정식은 뉴턴이 행성 운동을 표현하기 위해 발명했고, 확산(diffusion)방정식은 아인슈타인이 1905년 분자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브라운 운동을 표현할 때 사용했다”라고만 말했다. 그 이상의 수학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김 교수가 피리어드 단백질이 핵 주변에 모여 있는 실제 모습 사진을 보여줬다. PNAS논문의 공동연구자인 이주곤 교수(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 의대) 그룹이 찍은 사진이다. 피리어드 단백질에 형광물질을 집어넣었기에 사진 속 피리어드 단백질들이 녹색으로 보인다. 핵 주변이 녹색으로 환하다.
김재경 교수 연구실의 김대욱 박사가 문제를 풀었다. 피리어드 단백질은 인산이 여러 개 들러붙어야 핵 안으로 들어간다는 걸 확인했다. 피리어드 단백질에 인산이 하나 붙고, 또 하나가 붙고, 여러 개 붙으니 핵 안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해당 지역에 피리어드 단백질이 얼마나 존재하느냐 하는 농도가 중요하다는 걸 확인했다. 피리어드 단백질 농도가 특정 값을 넘으면 피리어드 단백질이 모두 한 번에 인산화됐다. 이어 일제히 핵 안으로 진입했다.
핵 안으로 몰려 들어가는 ‘문턱‘ 높이를 알아내기는 했다. 그런데 이게 의학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 김 교수에 따르면, 세포 내부는 서울 강남대로와 같이, 교통 체증이 심하다. 김 교수 그룹은 세포질 내부의 체증을 인위적으로 더욱 심하게 만들어보았다. 세포 내부에서 이동에 걸리적거리는 장애물을 더 많이 집어넣었다. 물론 컴퓨터 시뮬레이션 상에서다. 그랬더니 피리어드 단백질이 핵 주변에 잘 모이지 못하는 걸로 나왔다. 일제히 한꺼번에 핵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피리어드 단백질이 24시간 주기로 늘어나고 줄어드는 리듬이 깨졌다. 하루 주기 리듬 곡선이 예쁘게 나오지 않고 흐트러졌다.
공동연구자인 이주곤 교수는 생물학자다. 이 교수 그룹은 김 교수 그룹으로부터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를 받고, 실제 생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생쥐의 세포 안에 지방을 많이 넣었다. 비만형 생쥐를 만들었다. 실험 결과, 비만형 생쥐는 수면의 질이 매우 나빴다. 쥐는 야행성 동물이니, 밤에 깨고 아침이 되면 잔다. 그런데 이에 필요한 피리어드 단백질의 생산과 소멸이 잘 되지 않았다. 생체 리듬이 망가졌다. 김 교수는 “나이 든 쥐도 그럴까 해서 실험을 했다. 또 치매에 걸린 쥐를 대상으로 확인했다. 이주곤 교수 그룹의 실험 결과, 나이 들고 취매에 거린 쥐는 수면 질이 나쁜 걸로 나왔다. 세포내부의 혼잡이 수면의 질이 나빠지는 원인인 것 같다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하루 주기 리듬은 매우 중요하다라며 독감 백신 접종 얘기를 했다. 그는 할머니에게 아침 병원 문열 때 바로 가서 백신을 맞으라고 했다고 했다. 특히 60대 이상은 자고 일어나자 마자 새벽에 백신을 맞으면 항체가 3배나 잘 만들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했다. 독감 주사도 맞는 시각이 오전이냐 오후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항암제 치료는 하루 중 언제 받으면 효과가 더 좋은가 하는 연구를 했다. 그는 “획기적인 연구 결과가 나왔다. 현재 논문을 학술지에 보낸 상태라 더 이상 말을 할 수는 없다”라고만 말했다.
그가 약학 분야에 기여한 연구는 ‘미하엘리스-맨튼 식’(Michaelis–Menten equation)을 새로 쓴 게 있다. 이 식은 1913년에 독일 화학자와 캐나다 연구자가 개발했다. 약을 먹으면 효소가 분해하는 속도를 이 방정식이 알려주며, 이 식에 따라 환자가 먹는 양이 정해진다. 약학자는 지난 100년 간 미하엘리스-맨튼 식에 따라 처방하는 약의 양을 판단해 왔다. 김 교수에 따르면 미하엘리스-맨튼 식은 생물학자에게는 ‘근의 공식과 같다. 지난 100년간 인용 횟수가 22만번에 이른다.
그런데 김재경 교수가 약학 분야 학회에 초청받아 가서 이걸 접하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하엘리스-맨튼식에 따른 약 분량 처방은 실험실에서 배양한 세포에서는 괜찮으나, 생체는 배양한 세포와는 다르다. 그는 100년 된 방정식을 고쳐 쓴 논문을 학술지에 보냈다. 논문 평가자들이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100년 동안이나 써온 황금 규칙을 고친다는 건 쉽지 않았다. 결국 8번의 수정 작업을 요구받은 끝에 지난해 미국 약학지(CTS, Clinical and Translational Science)에 연구 결과를 보고할 수 있었다.
김재경 교수의 IBS 의생명수학 그룹은 사랑방이었다. 생명과학자는 물론, 물리학자, 의학자가 들려서 이야기를 하고 간다. 그리고 빈 방에 와서 그들은 혼자 연구를 하다가 간다. 일종의 자연과학의 십자로에 응용수학자인 그가 서있는 것으로 보였다.
김재경 그룹장은 “IBS 그룹을 만든 이유에 대해 ”카이스트에 오기 전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했던 수리생명과학 연구소(Mathematical Biosciences Institute, 오하이오주립대학 내 있는 국립과학재단 산하 기관)가 정말 좋았다. 나는 멘토가 없이 박사후연구원으로 2년을 그곳에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창발’이 항상 일어났다. 그곳에는 수학자만 있었지만 IBS 의생명수학 그룹에는 다른 분야의 학자도 모으고 있다. 나는 수학자이고, 나로부터 보면 물리, 화학, 생물학, 약학, 의학 순으로 거리가 멀다. IBS의생명수학 그룹은 수학과, 수학과 가장 먼 의학이라는 자연과학의 양극단 사람이 모두 모이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러다 보면 뭔가 된다. 평생 믿어왔던 게 다른 분야 사람을 만나면 깨진다. 세계에 없는 모델이다. 창발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