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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달샘 Oct 15. 2024

착한 마녀의 일기

송현섭/ 문학동네/ 2018

암탉의 유언     


     

난 내일 죽게 될 거야. 

첫째 사위가 온다는군.

주인아주머니 말을 엿들었어.

네가 부탁 하나만 할게.

제발 새끼들만은 건들지 말아 줘.

대신 내 창자와 간과 콩팥을 줄게.

내일 두엄자리에 가면 있을 거야.

머리와 깃털을 장난감으로 써도 돼.

“야, 약속할게. 거, 걱정 마.”

노랗고 새콤한 병아리들을 바라보며

고양이가 말했다.     




     

《착한 마녀의 일기》라는 제목과 표지그림부터 심상치 않다. 동시라면 왠지 순하고 착한 아이들이 즐길 것 같은데 이 동시집은 순하지도 않고 책을 좋아하지도 않는 아이라도 슬쩍 집어들 것 같다. 첫 동시부터 마지막까지 우리의 예상을 비껴가는 이야기 전개로 가득하다. 언제부터 누군가가 동시에 차곡차곡 씌어놓은 착한 수식어의 굴레를 훅 벗어던지고 송현섭의 동시들은 저만치 데구루루 굴러가면서 우리를 보고 깔깔대며 외친다. 나 잡아봐라!


이 동시집이 재미있는 이유는 “소나무를 하얀 양말로 만들고/ ... / 마당을 살찐 암소로 만들고”〈우리 마을에 내리는 눈은〉처럼 개성있는 수식어와 “구름들이/ 더러운 물웅덩이처럼/ 하늘을 떠다닙니다.”〈일기 예보〉와 “젠장, 나는 분명 삥 뜯기고 있는 거야.”〈착한 마녀의 일기〉처럼 동시에서 흔하지 않은 낯선 표현에 있다. “뭐냐! 귀에 뭘 넣은 거야! 이놈아…………………”〈참매미 보청기〉처럼 낯설지 않지만 그동안 동시에서 표현되지 않았던 말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데 있다. 〈나무 위 고양이〉에서 보이듯 익숙한 풍경을 낯선 질문으로 치환해 버리는 데 있다. 뱉으면 안 될 것 같은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데 있다.     

 

〈암탉의 유언〉은 이런 말을 이렇게 거침없이 뱉어도 되나 싶은 동시이다. 

1행에서 독백처럼 내뱉는 암탉의 말은 이렇다 “난 내일 죽게 될 거야.” 이렇게 첫 마디를 내뱉는 누군가에게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급히 2행을 읽어가다 “첫째 사위가 온다는군.”에서 왠지 웃음이 난다. 그런데 암탉은 누구에게 말을 건네고 있을까? “제발 새끼들만은 건들지 말아 줘./ 대신 내 창자와 간과 콩팥을 줄게.”라고 말하는 5행에 와서야 우리는 듣는 이가 궁금해진다. 8행에서 암탉은 “머리와 깃털을 장난감으로 써도 돼.”라며  우리에겐 끔찍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면서 자신은 오히려 덤덤하게 부탁을 늘어놓는다. 암탉의 이야기 상대가 병아리 새끼를 먹잇감으로 노리는 고양이라는 것은 마지막 행에서 밝힌다. 마지막 “노랗고 새콤한 병아리들을 바라보며 /고양이가 말했다.” 까지 읽고 나면 송현섭 시인이야말로 참으로 능청스러운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어떻게 이야기를 들려줘야 우리가 귀를 세우고 들을지 감각적으로 알고 있는 탁월한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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