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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달샘 Feb 08. 2023

내가 살고 싶은 집에 첫 삽을 뜨다!

- 하늘을 담는 집

  아파트에 사는 것이 꿈일 때가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20년을 같은 집에 살았다. 한옥도 아니면서 양옥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집. 아귀도 맞지 않던 미닫이문 사이로 겨울 외풍이 어찌나 심하던지 밤에 이불을 뒤집어써도 코끝이 시리던 집이었다. 방보다 낮은 부엌에서는 신발을 신어야 했고 환풍구로 쥐들이 드나들었다. 밤에 소변이 마려우면 신발을 신고 컴컴한 마당을 지나 화장실을 찾아야 했다.  그집에서 아파트로 이사 갔을 때 평생 아파트에서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파트에 살게 된 지 30년이 지났다. 이제는 아파트를 벗어나 다시 땅을 밟고 살고 싶다. 지난여름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동료가 전원주택을 지었다고 집으로 초대했다. 마당에 잔디가 깔리고 언제나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는 집. 주방과 분리된 공간에 넉넉한 크기의 식탁과 의자. 흰색으로 환하고 깔끔한 주방이 눈에 띄는 집이었다. 그 집을 지은 건축가는 먼저 그녀의 가족에게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 일단 글로 써보라고 했단다. 나도 일단 써본다.



  나는 지금 25층 아파트 7층에 살고 있다.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곳이라 앞, 뒤 창밖으로 보이는 것이라곤 모두 아파트 단지뿐이다. 붉게 물드는 저녁노을도, 뭉게뭉게 흘러가는 구름도, 밤하늘에 떠오른 달도 잘 보이지 않는다. 울적한 마음이 들 때 하늘을 보면 금세 마음이 하늘처럼 맑아지곤 한다. 하늘이 구겨진 내 마음을 다림질해 준다. 노을지는 하늘보다 아름다운 작품을 본 적이 없다. 하늘은 날마다 다른 얼굴로 힘든 우리 하루를 응원해 주는 건 아닐까. 그런 하늘을 맘껏 올려다볼 수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다

  우리 집 고양이는 동물병원 갈 때를 제외하곤 35평 집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고양이는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면 불안을 느낀다. 그래서 고양이는 산책을 시키는 게 아니라고 한다. 창문을 열면 루루는 창문 위로 올라 앉아 한참 창밖을 바라보곤 한다. 창밖 세상이 궁금해서인지, 상쾌한 공기가 좋아서인지 그 순간은 생각하는 고양이가 된다. 마당이 있으면 루루도 흙을 밟을 수 있을 텐데. 나무에, 꽃들에 코를 가까이 대고 킁킁거리겠지. 날마다 상쾌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겠지.

  마당에 과일나무도 한 그루 심고 싶다. 어렸을 적 우리 뒷집에는 포도나무가 넝쿨로 있었다. 포도가 탐스럽게 영글어가는 여름이면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옆집에는 커다란 대추나무가 있었고 그 앞집에는 석류나무가 있어 탐스럽게 알알이 박힌 열매가 담장 밖으로 입을 벌리곤 했다. 지금은 외국에서 나는 과일도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과일나무가 있는 집은 왠지 풍요롭게 보인다.

  동물복지를 위한 자발적 비건이 늘어가는 시대라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우리 집 둘째는 고기를 무척 좋아한다. 식탁 위에 고기반찬이 올라오지 않으면 먹을 게 없다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몸무게와 키가 또래 100명 중 1%였던 아이라 뭐든 좋아하는 음식은 먹이고 싶다. 아파트에서는 삼겹살 한 번 구우면 온 방에 냄새가 배고 환기도 잘되지 않는다. 곤욕이다. 내 몸은 나이들면서 조금씩 비건으로 변해간다. 고기는 냄새도 맡기 싫다. 그러니 고기굽는 일은 점점 남편이 몫이 되어간다. 마당이 있으면 환기 걱정 없이 구수한 숯불 향 솔솔 풍기며 고기를 구워줄 수 있을 텐데. 물론 그 때도 굽는 건 남편이 몫이다.

  무엇보다 마당 있는 집이라면 햇살 흠뻑 맞으며 책을 읽다가 깜박 잠이 드는 게으른 오후를 보낼 것이다.   

   

  방은 몇 개나 있어야 할까

  두 아들 각각 하나, 부부가 함께 쓸 방 하나, 책을 읽고 오디오북 녹음이 가능한 조그만 방도 하나 있어야 한다. 욕심을 조금 부려 언젠가 혼자되실 부모님을 위한 방 하나를 더 두고 싶다. 감사하게도 90이 다 되신 아버지까지 아직은 양가 부모님이 건강하게 살고 계신다. 그래도 언젠가 두 분 중 한 분이 먼저 돌아가실 것이다. 혼자 사는 집에서 병이라도 나시면 누가 돌볼까. 부모님이 언제든 우리 집에 오실 때 쓸 수 있는 방 하나가 더 있다면 마음이 든든할 것 같다. 아니다. 아이들이 커서 집을 떠날 때 빈 방이 생길텐데. 방욕심을 부렸다 빈방이 생기면 오히려 쓸쓸한 마음이 들 수도 있겠다. 방은 네 개만 있어도 좋다.

  

  아직은 집 지을 땅도 없고,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 물어주는 건축가도 없다. 그런데 이 글을 써가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 내가 살 집에 첫 삽을 떴다. 공사 이미 시작된 것이다. 벌써 부자가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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