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은 저마다 그들만의 단어 사전이 따로 있구나 싶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낯익은 대상이 그들의 눈을 통해 새롭게 변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시를 읽으면서 그래, 맞아. 그렇지, 그래! 하고 맞장구를 친다. 시 읽는 재미가 이런 지점에 있다. 뒤돌아서는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하며 시인이 가진 겹눈을 경외하기도 한다. 시인은 어떻게 이런 겹눈을 가지는 걸까? 꽃들이 소곤거리는 소리에, 길고양이가 하는 혼잣말에 가만히 귀 기울이는 호기심에서 겹눈이 자라는 걸까?
싱싱한 하루
SING SING
하루가 살아 있을 때는
노래가 될 수 있다
애벌레의 시간
꼭 나비가 아니어도 좋아
싱싱한 오늘
오늘을 노래할래
실컷 오늘을 살 거야
냉장고에 가둘 필요 없는
싱싱한 오늘
싱싱과 sing sing을 연결하는 재치 - 하루가 살아 있을 때는 노래가 될 수 있다.
이른 아침 이런 시를 떠올리며 노래하듯 싱싱하게 하루를 시작하면 좋겠다. 애벌레의 시간도 긍정하면서^^
스탠드
딸깍
불빛 샤워기를 틀어
쏴아아
어둠을 씻어
환해진 어둠은
내 책상 위 모든 것을
깨워
조용한 방에서 스탠드를 켜고 무언가에 집중하는 시간. 스탠드 불빛 하나로 마음까지 환해지는 시간. 그 환한 시간들에 함께 해준 불빛 샤워기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싶어진다.
나무가 든든한 이유
나무는 수많은 입을 달고도
말이 없다
듣기만 한다
내 이야기도 들려줬다
역시 듣기만 한다
나무의 입은 귀라서
잎사귀라고 부른다는 걸 알았다
들어주는 입들은 고요한 응원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볼 수 있는 많은 것들 너머 그 존재가 불어 넣는 입김에 대하여, 그 따뜻한 기운에 대하여. 나무에게 귀만 있는 게 아니구나. 우리를 안아 줄 가슴이 있고, 응원을 보내는 수많은 손들이 있어서 나무 곁에 서면 그토록 편안했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