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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달샘 Jul 14. 2024

폰드로메다 별에서 오는 텔레파시

문봄

초록 달     


한밤중에 거실에서 

엄마 폰 아빠 폰 내 폰

나란히 앉아 야식을 먹는다     


멀티탭 3구 밥상에

기다란 빨대를 꽂아

따듯한 전기를 쭉쭉 빨아 먹는다     


폰드로메다 별에서 오는 텔레파시

얘들아, 오늘도 고생했어!     


폰들의 마음속에

초록 달이 뜨는 밤

네모나게 부푸는 밤           

   

-10쪽


초등학교 1학년만 되어도 목에 걸어주거나 손목에 채워주는 폰. 어르신들도 안 쓰면 서운하고 소외된 느낌이 든다는 스마트폰. 우리 생활에 이처럼 가까이 두는 물건이 또 있을까. 어느 장르를 막론하고 문학에서 지금 여기 삶을 반영하는 소재로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 읽는 이에겐 반갑다. 이 시집에 실린 첫 시 <초록 달>을 그렇게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한밤중에 야식 챙길 일이 종종 있는 엄마에게 폰 가족이 거실에 둘러앉아 야식을 먹는다는 표현이 친숙하게 다가온다. 폰들도 그렇겠구나. 재미있고 적절한 사유구나 싶다. 멀티탭은 3구 밥상이고, 충전기 줄은 빨대구나. 따듯한 전기를 쭉쭉 빨아먹는다니… 이런 따뜻한 비유 보게나. 그래, 너희 폰들도 종일 우리와 함께 고생했겠다. 고양이도 세탁기도 형광등도 소파도 tv도 모두 눈 감고 따듯하게 쉬고 있는 밤.     

폰드로메다 별에서 오는 텔레파시/ 얘들아, 오늘도 고생했어! 


따듯한 말 한마디가 마음을 녹인다. 이렇게 쉬운 말을 어째 그리 아끼고 살았을까. 폰드로메다 별에서 텔레파시가 오지 않아도 엄마가 엄마로서 엄마니까 자주 해주어야겠다. 아이들 마음속에 노란 달이 뜨는 밤 둥글게 부푸는 밤이 되도록. 




천 마일의 장례식          



알립니다 알립니다!

범고래 탈레쿠아가 엄마가 되었습니다

J무리 서른다섯 번째 집에서 만나요     


아니 다시 속보가 떴습니다

탈레쿠아의 새끼가 태어난 지 30분 만에

숨이 멈추었습니다     


휘이잉 휘이이잉

서둘러요, 장례식에 들고 갈 꽃이 필요해요

휘이잉 휘이이잉

새끼 잃은 어미 범고래를 따라가요

휘이잉 휘이이잉

끝이 어딘지도 모르는 길을 따라가요   

  

숨이 다한 새끼를 콧등에 올리고 

바다를 헤엄치는 스무 살 엄마 탈레쿠아

천 마일의 바다를 함께 건너가는 탈레쿠아의 친구들     


※ 탈레쿠아: 범고래. J35의 이름. 2018년에 죽은 새끼를 몸으로 받치고 17일 동안이나 바다를 헤엄치는 애도로 국제적 주목을 끌었다.           

- 48쪽




지난 5월 제주 바다에서 사는 남방큰돌고래 무리에서 죽은 새끼를 포기하지 않고 등에 업고 다니는 엄마 돌고래의 모습이 발견되었다. 새끼가 등에서 떨어져 물속으로 가라앉으려 하면 어미는 다시 새끼를 찾아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무리와 함께 이동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날마다 끔찍한 사건 사고를 전하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이 따뜻한 기사 하나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잠깐 이런 기사가 동시의 소재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메모를 해두었다. 벌써 문봄 시인이 이렇게 따뜻한 시를 쓴 줄도 모르고…. 

뉴스라는 형식보다 부드럽고 쉬워서 더 아름다운 장르인 동시로 환생한 엄마돌고래의 모성 가득한 이야기. 시간이 지나면 휘발되는 뉴스가 아닌 오래 읽힐 수 있는 동시 안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아 주니 참 좋다. 


 범고래 탈레쿠아의 이야기가 궁금해 뉴스를 검색해 보았다. YTN 기사가 뜬다. 「17일간 죽은 새끼 안고 다닌 범고래, 2년 만에 출산」 태어난 지 몇 시간 지나 죽은 새끼를 오랜 시간 떠나보내지 못했던 어미가 2년 만에 건강한 새끼를 다시 출산했다는 소식이다. 아, 따뜻한 동시 하나 더 나오려나.      

  

  알립니다 알립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숨이 다한 새끼를 

  콧등에 올리고 천 마일의 바다를 건넜던 어미돌고래

  탈레쿠아가 2년 만에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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