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혹한 국제정치의 사회, 감정을 좀 빼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1918년에 일본에서 “쌀소동”이 벌어졌다. 일본인들이 먹을 쌀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일본은 조선에서 쌀을 강제수탈하기 시작했다. 근데 일본은 어쩌다 쌀이 없었을까? 1차 세계대전을 논할 수밖에 없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후, 영국은 저 멀리 동아시아에 있는 일본의 참전을 요청했다. 오쿠마 시게노부 총리는 8월 7일 오후 8시에 비상각료회의를 개최하여 대독전쟁을 결의했다. 8월 15일에는 천황 임석하에 대독 최후통첩안이 최종 채택되었다(박건영, 국제관계사, 119페이지). 일본은 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중국의 자오저우를 공습했고, 적도지역에 있던 태평양지역의 독일 식민지를 점령했다. 전쟁 진행 과정에서 군비를 충당하기 위해 일본 내 자원이 급격히 동원되면서, 시민들이 먹을 쌀조차 부족해지게 되었던 것이다.
영국이 일본은 언제부터 친했기에, 참전까지 요청하는 사이가 되었을까?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를 막고 싶었고, 일본은 해외로 진출하고 싶었다. 둘의 이해관계가 아주 잘 맞았고,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영국과 미국의 유용한 동아시아 파트너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미국은 우리에게 너무 야속한 존재였다. 1910년, 미국은 일본의 조선 강제병합에 일조했는데, 당시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해야 했던 미국, 영국에게는 매우 합리적인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한 세기 전의 사건을 언급하고 싶었던 이유는, 국제정치에 너무 감정을 담아 이입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일부 보수진영에서 미국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와 사랑을 표현하는 분들을 가끔 접하게 된다. 특히 교회 교단에 서시는 분들은 가끔 미국을 마치 하나님이 대한민국을 공산세력의 손아귀에서 구해내기 위해 동원한 구원자처럼 묘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참전용사에 대해서 정말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특히 태어나서 한국인을 만나본 적도 없는 젊은 외국 청년들이 한반도에 와서 피 흘려 싸웠던 것에 굉장한 경의를 표하고 싶다. 다만,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다.
미국과 유엔회원국의 한국전쟁 참전에 대해 우리는 감사를 표할 수 있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그들은 한국을 도우러 온 것이 아니다. 공산권 세력의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과 동맹국의 개입이 필요했던 것이고, 하필 그 격전지가 한반도였을 뿐이다. 공산 세력의 확장은 2차 대전 이후의 세계를 살아내야 하는 미국과 동맥국에게 굉장히 불리한 상황을 야기할 수밖에 없었고, 특히 미국은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도미노처럼 공산화되는 최악의 상황을 저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국가들은 자신의 생존과 이익에 따라 선택을 내릴 뿐, 과거사를 활용해 훌륭한 외교 관계를 이어나가려는 정치인과 외교관들의 발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MBTI가 F이신 분들은 좀 더 경계하자. 국제정치는 좀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