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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님 Apr 08. 2024

흔적(4)

아버지의 추억

다음 여정으로 형제들과 부모님 산소에 들렀다. 아버지를 모신 지 벌써 11년이 되었다. 시절도 이맘때다.

입관할 때, 아버지 이마에 뽀뽀를 하니, 차갑던 그 감촉이 지금도 생생하다. 돌아가신 즈음에는 산소에 가서 애도의 울음을 실컷 토하고 싶었다. 혼자 울고 싶었다. 그러나 산에 혼자 가려니 용기가 나지 않아서 속으로 삭였다. 이제는 산소에 갔다가 돌아서며 눈물을 애써 감추느라 힘들던 마음도 사그라졌다.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에서 고향의 장지로 왔다.

일꾼들이 묏자리를 파고 아버지 관을 안치했다. 관 위에 흙이 한 삽 한 삽 던져지기 시작했다.

오빠가 "형님, 이거 쓰세요." 하며, 아버지가 쓰시던 명아주 지팡이를 맞은편에 계신 사촌오빠에게 던졌다.

순간, 내가 지팡이를 얼른 집어 아버지 관 위에 던졌다. 일순간 주위의 동작들이 멈춰지고 정적이 흘렀다. 무의식이었다. 이건 아버지가 가지고 가서 쓰셔야 된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지팡이를 아버지 묘에 넣어드리게 되었다. 저 세상에서 지팡이를 필요로 하시는지 모를 일이다. 지팡이 없이 편안하게 계시면 더 좋을 일이다. 아니, 사촌오빠가 지팡이를 쓰면 아버지의 흔적이 남아 더 좋을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버지를 산에 모셔두고 집으로 왔다. 연못을 만들고 꽃을 가꾸시던 화단에 하얀 영산홍이 만발했다. 그 꽃 위에 나비가 앉았다, 날았다, 오랫동안 들락거렸다. 사람을 무서워하거나 피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연미복 같은 긴 양 날개 꼬리에 주황 점박이가 있는, 우아한 검은 나비였다. 긴 꼬리제비나비다.

아버지의 혼령이었던가. 만약에, 만약에 혼령이라는 게 있다면, 혹시나... 좀 더 오래, 자세히 봐둘 걸 그랬다. 그 당시에는 이 생각도 못 했다. 이제야 드는 생각이다. 사람이 살지 않아 빈터가 된 옆집 마당에는 파꽃이 만발했다. 호박벌, 일벌(양봉), 이름 모를 벌들까지 화려한 잔치다. 아버지를 차가운 곳에 모셔두고도 집에 가족들이 모이니 그래도 웃음이 나왔나 보다. 이 집에서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고목이 된 돌배나무 밑에서, 토방에서, 앉고, 서서 웃는 표정의 사진이 있다니.       


사람과 친숙한 듯,  긴꼬리제비나비


얼마간 지나 다시 집에 왔었다. 방 안을 둘러보고자 방문 앞에 섰다. 여닫이문의 쇠 문고리를 옆 문에 제쳐 잠가놓은 것을 열 수가 없었다. 무서움이 엄습해 왔다. 문을 열면 아버지가 앉아 계실 것 같았다. 그러면 좋은 것 아닌가. 그런데, 왜 두려울까. 끝내 방문을 열어보지 못하고 그냥 왔다. ‘정을 뗀다’는 말이 이런 건가,      




아버지는 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시는 큰 산 같은 분이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오히려 도움이 필요하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제야 내가 어른이라는 실감이 왔다. 어릴 때는 아버지가 어려워 피해 다녔다. 되도록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성인 되어 아버지 말 벗이 되고 보니, 감수성 풍부한 낭만 기질에, 다정다감함과 호기심 가득한 소년어른이셨다. 공감하는 대화의 시간을 많이 못 가졌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부모님께 알려드리고 싶다. 곁에 안 계셔도 좋으니,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기만 해도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내가 늙었음에도 부모님이 문득문득 그립다. 당신들과의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남겨주셔서 감사하다. 부모 자식 간에 추억을 많이 쌓아 놓는 것이, 자식에게 물려주는 행복한 자산이 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울 때 상기하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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