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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님 Dec 15. 2023

지하철의 배려

아름다운 양보

지인 자녀 결혼식에 가는 길.

1호선 서울행 지하철 문이 열리고 들어서자마자 자리에 앉아있던 어떤 젊은이가

"여기 앉으세요 "하며 일어섰다.

그 상황이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는 종아리에 힘을 팍 주고 허리, 어깨를 쫙 폈다.

내 모양새가 어떤가도 훑어보았다.

그래도 결혼식장에 간다고 머리 염색도 하고 젊어 보이게 입느라 애쓴 차림이다.

코로나19가 성행할 때라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기도 했는데 자리를 양보한다.

나는 아직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어도 묻어나는 할머니 끼를 어쩌지 못하나 보다.

씁쓸하기도 했지만, 배려하는 아름다운 젊은이로 인해 기분 좋은 길을 갔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1호선 지하철에서 좌석을 잡아 앉았다.

어떤 젊은이가 내 좌석 맞은편 출입구의 안전대에 기대어 졸고 있다.

곧 고꾸라져 쓰러질듯하다 놀라 자세를 바로 잡아서고, 다시 쓰러질 듯이 하는 동작을  반복한다.

저러다 출입구에서 사고가 날 것만 같다. 자리에서 일어서면 행여 누가 앉아 버릴까 봐 가방을 놓고 엉거주춤 일어서서 젊은이를 콕 찔러 내 좌석을 가리켰다.

“여기 앉아요”.

젊은이는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좌석에 앉더니 바로 숙면에 들었다.

그런 젊은이가 되레 고맙고 예뻤다.

행여 서 있는 날 보면 미안할까 봐 그 자리에서 멀어져 서서 왔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그 젊은이는 주변을 의식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배려받고 배려하며 호의를 받아주는 것도 적선인 것을 깨닫는 날이었다.     


이 이야기를 동년배들의 카카오톡 단톡방에 올렸더니 이런 댓글이 올라왔다.

'빈 노인 좌석을 두고 일반석에 앉는 것은 젊은이에 대한 배려가 아닌 것 같아서 노인석에 앉는다. 그러다가 자신보다 힘들어 보이는 노인이 오면 양보해 주기도 한다'라고.

이에 대한 답글이 올라왔다.

'아, 노인석에 앉는 것에 그런 깊은 뜻이...  그렇네요, 젊은이 좌석을 늘려주는 것. 한 수 배웠습니다.'


어릴 적 외할머니께서 TV에 노인들이 나오면 보기 싫다며 채널을 돌리라고 하셨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이제 이해할 것 같다. 지하철을 타서 되도록 노인석 쪽에 안 가고 싶던 내 마음은, 나와 닮은 모습과 마주하고 싶지 않은 마음임을 이제야 알아차린다. 외할머니께서도 그러하셨던 모양이다. 그 노인들 모습이 당신과 동일시되어 싫으셨던 것이다. 부정하고 싶지만, 어느덧 자리를 양보받는 모습이 됨을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되려나 보다. 지하철을 타고 젊은이들 앞에 서서 자리양보의 부담을 주게 될까 봐 조심스럽다. 일반석 앞에 설 때는 일부러 자리를 양보할만한 여건이 아닌 사람 앞에 섰다가, 자연스럽게 자리가 나면 앉는다. 승차 때부터 좌석에 앉고 싶으면 노인석으로 간다. 그것이 젊은이 자리를 늘려주는 것이라니, 한 수 배움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왕이면, 배려하는 할머니가 되기 위함이기도 하다. 은이라고 힘들지 않을 없으니, 그들도 지하철을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었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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