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 중이었다. 쇠골뼈 아래 심은 동전만한 캐모포트(중심정맥관)에 항암제를 놓기 위해 주사바늘을 꽂았으나 막혔는지 약물주입이 안 되었다. 잠시 쉬었다가 시도했는데도 또 실패다. 한 번 꽂를 때마다 아픔에 대한 공포를 견디기 힘들어 다른 선생님을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매번 참으려 했다. 능숙한 경력자들도 다 초급과정을 거쳐 전문의로 커가는 것이니 경험을 쌓게 하는 것도 의료발전에 일조하는 일이라는 심정으로 견뎠는데 결국은 참지 못했다. 상급자가 하는데도 결국은 실패했다. 캐모포트가 뒤집혔을 수도 있다 하여 담당과로 검사받으러 갔다.
흉부외과에서 x레이를 찍었으나 이상이 없다고 한다. 시술했던 의사선생님이 직접 주사바늘을 꽂아본다고 한다. 바늘을 여러 번 꽂았고 찌를 때마다 너무 아팠다고 하소연하듯 말했다.
"그러게요. 많이 찔렀네요. 자, 따끔합니다."
바짝 긴장한 중에 바늘을 꽂는 느낌이 왔다.
“주사액이 잘 들어가요”
막힌 곳이 뚫렸다며 간호사가 기쁨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 순간 눈물이 주루룩 귀를 적셨다. 진료가 끝나고 수납 절차 안내가 있을 때까지 계속 눈물을 훔치니 간호사가 무슨 잘못된 일이라도 있냐며 당황스러워 했다. 큰 수술할 때도 담담했는데 오히려 이 작은 일에 무너지는 내 자신이 민망하다.
의사선생님이 ‘많이 찔렀네요’ 라고, 내 말에 동조해주는 그 말 한마디가 무의식 속의 내 감정에 큰 울림으로 다가온 것 같다. 그동안 투병에 집중하느라 아픈 마음을 살피지 않았다가 의사가 던지는 한마디 말에 억눌렸던 감정이 터져버린 것이다. 이해와 공감은 물론 환자의 관점에서 정신적인 치료까지 해준 것이다.
한바탕 휘몰아친 감정에서 깨어나고 보니, 어느 학부모님의 마음이 읽혀졌다. 일상의 소소한 일에 감동하다가 어떨 땐 과민한 반응을 보여 당황했던 일들이, 어쩌면 자신의 아픔에 대한 예민함이 아니었을까. 장애를 가진 자녀를 기르며 힘들었던 학부모에게도 공감과 위로가 절실했을 것이다. 막막하고 힘든 항암 치료 중에도 나를 일깨우는 죽비소리가 곳곳에 있음을 어쩌랴. 매사에 감사할 따름이다.
항암치료가 끝나고 캐모포트를 제거하는 날, 끝까지 친절하게 마음을 토닥거려주던 의사선생님과 간호사에게 마음을 다해 감사를 드렸다. 막힌 캐모포트를 뚫던 날의 감동까지 얹어서.
예전에 학교 로비 입구에 카페를 만들었다. 학부모들도 활용하다 보니, 카페에서 들려오는 그들의 수다와 명랑한 웃음소리에 내 기분까지 덩달아 올라갔다. 어떤 음악이 이보다 더 큰 감동을 줄까. 학부모들이 차담을 나누며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힐링하여 마음의 균형을 잡아갈 것 같아 흐뭇했다. 코로나 19로 중단되었던 학부모들의 카페 수다를 다시 듣고 싶어진다. 내 마음이 의사의 공감하는 말 한마디로 위안을 받은 것처럼, 우리 학부모들이 카페를 이용하는 중에 서로서로 소소한 공감이라도 얻으며 위안받기를, 활기찬 생활을 해 나가기를 바래본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학교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