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기대하던 우유니 소금사막이다. 해발 3,660m 고지에 크기는 우리나라 강원도만 하고, 인구가 만 명 정도인 작은 마을이다. 지각변동으로 솟아올랐던 바다가 산악 주변의 분지형 지역에 갇혀 호수가 되고, 그 호수 물이 모두 증발하며 세상에서 가장 평평한 소금사막이 되었다고 한다. 건기에는 새하얀 소금밭이, 우기에는 소금 위에 빗물이 잠겨 만물을 반사시키는 거울이 되는 신비스러운 곳. 하늘과 땅의 경계가 없어지고,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노을빛이 데칼코마니가 되어 그 신비함은 두 배가 되었다. 무엇으로든 이 감성을 온전하게 담아내지 못할 환상적인 풍경이다. 소금사막 벌판에서 어떻게 식사를 하나 걱정했는데, 랜드크루저 차를 이용하여 천막을 치고 음식을 차렸다. 다 현실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나 보다.
쁠라야 블랑카 만국기 광장으로 갔다. 세계 각국의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출국 전, 태극기를 사서 준비해 왔다. 일행들과 같이 태극기 한 장에 각자 서명하여 깃대에 묶어 달았다. 바람에 좍 펴져 나부끼는 태극기를 보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우리나라 태극기가 이미 몇 개 달려 있어서 더 기분이 좋았다. 다른 한국 팀이 왔다. 그들도 달았다며 나부끼고 있는 태극기를 가리킨다. 사소한 일이지만 동포애인가, 눈물 나게 반가웠다.
쁠라야 블랑카 만국기 광장에 태극기를 달다
소금사막에서 다양한 포즈로 사진 찍기는 여행의 백미다. 라파즈 공항에서 올 때, 비행대기 중에 사진포즈를 연구하고, 연습하며 기대에 가득 찼었다. 그러나 우유니 사람들만의 사진 노하우가 있었다. 현지 가이드들의 안내대로 하니 상상하지 못했던 재미있고 예쁜 단체사진이 나왔다. 개별 또는 팀별로 포즈를 취해주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들의 서비스란다.
찰박거리는 소금물 위를 걷기 위해 장화를 줬다. 이 장화마저도 여기 풍경과 잘 어우러진 사진 콘셉트가 되었다. 울긋불긋 화려한 노을에 온 세상이 묻힐 즈음, 저녁식사와 와인과 칵테일 한잔의 파티가 열렸다. 칵테일은 볼리비아 국기 색대로 빨강, 노랑, 초록 순으로 층을 이룬 색깔들이 투명한 유리잔 안에서 황홀하게 어우러졌다. 볼리비아 관광의 센스다. 자기네 국기를 이렇게 각인시키다니. 빨간색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용사들, 노란색은 광물자원들, 초록은 풍요로움을 의미한다니 기억해 주련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현재 이 자리에서 빛나게 해 준 볼리비아를 위하여.
우유니소금사막의 노을
소금호텔이 정말 소금으로만 지어졌을까. 기둥과 바닥에 깔린 소금 맛을 보니 실감 나게 짜다. 호텔 내 조각품들도 소금이다. 지내기는 좀 불편하나 이 정도야 사막에서 호강이다.
다음 날, 현지 민박을 하면서 약국을 찾게 되었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때라 여행 중에도 한국의 코로나 19 상황에 대해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 한국에 마스크가 품절되어 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동행자들 사이에 퍼졌다. 마을의 약국을 검색하여 마스크를 사러 갔다. 나도 한 상자를 샀다. 얼기설기 누에 집짓기 시작한 얼개같이 얇아서 코로나 방어가 되겠나 싶었다. 그 마스크는 결국 찬바람 막아주는 용도로 썼다.
이제부터는 우유니사막에서 안데스산맥을 따라 칠레 국경으로 넘어가는 여정이다. 랜드크루저로 해발 4,000미터의 광활한 알티플라노 고원으로 출발했다. 지구에서 가장 메마른 사막이란다. 사막이 마르기는 똑같은 것 아닌가. 그만큼 녹지대가 없다는 뜻인가. 많이 춥다 하여 방한을 단단히 했다. 알티플라노 고원을 질주하며 마주하는 장엄한 일출이라니. 김경호 노래를 스피커의 최대 출력으로 들으며, 길이 닦여지지 않은 이 사막을 직접 운전하여 달려보고 싶었다. 사막은 막막하고 거칠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정감 있고 스릴 있는 길이었다. 가는 도중 만나는 마을과 풍경들이 현실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것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다니….
비냐마르까지 가는 동안 사막 가운데로 난 도로 옆에는 작물들이 심어져 있었다. 마을이 있는 지역인지 드문드문 푸르름이 있었다. 한적하고 아기자기한 산크리스토발 마을이 나타났다. 산크리스토발 마을과 쿨피나 마을은 축제 중이다. 우리의 단소 같은 악기와 북을 연주하며 흥겨운 행진을 한다. 행렬의 뒤는 민속의상에 종이테이프, 곡식줄기를 등에 업은 아주머니가 따른다. 그 주위를 양쪽 귀와 등에 붉은 털실을 묶어 예쁘게 꾸민 알파카가 유유히 노닌다. 쿨피나 마을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음식점 앞 제단 같은 곳에 수수, 옥수수, 조 등의 곡식을 줄기째 묶어 십자가 형상으로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추수한 곡식들을 놓았다. 그들의 토속신앙인 듯하다. 어렸을 때 보았던 서낭당이 생각났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음악과 사람들의 소리가 왁자지껄하다. 젊은이들이 기타를 치고 마을 사람들은 댄스 한마당 중이다. 우리가 가니 환영한다며 종이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초등학교 때 만들었던 것처럼 길쭉한 색종이를 동그랗게 이어 붙인 것이다. 목걸이가 환영과 행운을 뜻한다고 한다. 우리도 축제에 같이 어우러졌다. 음식을 극구 권하는 것이 우리네 인심 같아 정겹다. 목걸이를 축제장에 놓고 왔더니, 가져가지 않으면 현지인들이 섭섭하게 생각한단다. 부리나케 다시 가서 가져왔다. 그들의 마음을 받아주고 싶었다.
쿨피나 마을 축제
알티플라노 고원을 달려 아나콘다 캐년에 도착했다. 협곡을 지나 올라선 산등성이 앞에 산의 능선들이 하늘과 닿아 있다. 기암괴석들의 향연이 새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눈이 시리다. 땅도 바위도 붉은 색인 우주 행성에 와 있는 것 같다. 먼지같이 푸석한 흙에서부터 큰 바위까지 크기도 모양도 제 멋대로인 것들이 여백을 두고 서 있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여 더 멋지다. 고도를 재보니 4,084m다.
사막을 지나가는 중에 다양한 호수와 개울들을 만났다. 호수에 사는 식물에 따라 호수색이 검게, 붉게 변한다고 한다. 호수 가까이에 민가가 있어 닭과 개를 기르는 것을 보니 고향에 온 듯 푸근하다.
이른 아침, 서둘러 라구나 콜로라다에 도착했다. 홍학 떼를 많이 볼 수 있는 호수다. 날씨가 추워 옷을 자꾸 여미게 된다. 인기척이 나면 홍학이 날아가 버릴까 봐 질척이는 호숫가를 묵언수행하듯 살금살금 걸었다. 붉은 듯 하얀 점들로 보이는 홍학 떼들이 멀리 호숫가를 메우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저 무리가 홍학이라고! 아무리 조심하여도 인기척을 듣고 날아가는 무리가 있다. 이 또한 멋진 풍경이다. 언덕에 호수를 조망하기 위해지어 놓은 듯한 아담한 집이 전체 풍경에 포인트 하나를 더해 준다.
코로라다의 홍학
용암지대 쏠데 마냐나(아침의 태양)에 왔다. 해발 5,000m, 지금까지의 최고 고지대다. 용암과 간헐천이 풀석풀석~ 죽 끓듯 끓고, 하얀 수증기가 폭발하듯 솟구쳐 푸른 하늘로 피어오른다. 약 36도의 천연온천에 몸을 담그니 그동안 쌓인 여행의 고단함이 노곤하게 녹아들었다.
볼리비아에서 칠레의 국경 초소로 가는 사막 길
칠레 국경 초소로 가는 길, 비켜가는 산들이 아름답다. 랜드크루저의 흔들림에 몸을 맡긴다. 달려도 제자리인 것 같은 먼 길을 같이 달려주는 산들의 형태와 색깔이 오묘하다. 나도 모르게 사막의 매력에 자꾸 매료된다. 볼리비아와 칠레의 국경 초소가 있는 이또 까혼에 도착했다. 육로로 국경을 넘는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나라 칠레를 만나볼 생각에 긴장과 설렘이 교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