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국경에서 15인승 차량으로 이동했다, 칠레 국경을 넘어서자 잘 정비된 도로와 주변 풍경이 들어온다. 뒤로 멀어져 가는 볼리비아가 사링하는 이라도 남겨놓고 온듯 아쉽고 애달퍼 자꾸 뒤돌아 봐진다. 거친 사막을 질주하다 부드러운 길을 달리니 평온한 게 스르르 잠이 온다. 단잠을 잤다. 지도를 보고 남북으로 긴 해안 방위를 어떻게 하나 내심 궁금했던 나라다. 남북으로 길이는 4,300km에 폭 180km인 칠레에 왔다.
깔라마에서 비행하여 산티아고로 향했다. 공항에서 버스로 산티아고의 점심 식사 장소에 도착했다. 버스 짐칸에서 모두들 캐리어를 꺼내는 중에 비명소리가 들렸다. 소란스러운 가운데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다. 결국 찾지는 못하고, 소지품 보관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볼리비아에서 고산병으로 미리 와 있던 일행을 만났다. 모네다 궁전과 시내 주변을 돌아보고 산타루시아 언덕에 올랐다. 올라가는 산책길이 시원하고 아름다운 길로 완만할 줄 알았는데, 정상 막바지 경사가 꽤 가파르다. 정상에 오르니 산티아고 시내 전경이 시원스레 한눈에 들어왔다. 바위 위의 노동자상과 작은 성당, 성직자 상과 성곽 등이 고풍스러운 정원 같았다.
발파라이소의 ‘라 세바스티아나’로 갔다. 칠레의 민중 시인이자 사회주의 정치가 네루다의 집이다. 기념관을 돌아보며 그동안 몰랐던 칠레의 시인에 대해 알게 되어 뿌듯했다. 집 앞에서 내려다보이는 해안의 절경은 그의 명성과 걸맞으리라. 이곳의 낮은 지대는 도시, 높은 산동네는 벽화마을이다. 벽화마을은 미로 같은 언덕길의 건물들 벽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림을 감상하며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가이드가 없으면 길을 잃을 것 같았다. 건물이나 지형을 그대로 도화지 삼아 그린 그림들이 하나같이 개성 있고 인상적이다. 때로는 장난인가 싶은 것도 있지만, 그림이 된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림 중 가장 정이 간 것은 건물 코너 양옆을 가득 채운 할머니 모습이다. 화려하나 절제 있고 푸근해 보이는 느낌이다.
산티아고 벽화마을의 할머니 그림
이 마을에서 그림을 그리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골목길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젊은이들의 사랑스러운 모습마저 한 폭의 그림이다. 벽화마을에서 발파라이소 항구가 바라보인다. 발파라이소항 시내로 내려오니, 소토마요르 광장 회전교차로 가운데 ‘이끼께 전투’ 영웅 기념탑이 있다.
비냐델마르는 산티아고 근교의 아름다운 해안가 마을로 칠레의 대표적인 휴양도시다. 이곳 폰크박물관에 이스터섬에서 가져온 모아이 상 하나가 전시되어 있다. 이스터섬에는 600개 이상 존재한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모아이 상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선다. 비냐델마르의 교차로 언덕의 잔디에 화사한 꽃시계가 수놓아져 있다. 가까운 거리의 칼레타 아바르카 해변을 걸으며 도시와 바다를 동시에 만끽한다. 멋진 레스토랑의 해물 모둠요리로 산티아고 일정의 마지막 단추를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