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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Jan 20. 2023

<“It's reallly something”>

<아티스트가 별 건가? 아티스트 웨이 3주 차>

< 아티스트웨이 3주차>

시 드로잉을 시도했다. 점 선 면으로 표현하는 해칭 기법도 재미있었지만 특히 콘투어 드로잉은 정말 재미있었다. 컨투어 드로잉(contour drawing)은 프랑스어로 사물의 윤곽선을 뜻하는 말이다. 즉 사물의 형태를 라인으로 표현하는 드로잉을 의미한다. 즉 단 하나의 라인으로 펜을 떼지 않고 끝까지 표현하는 것이다. 

컨투어 드로잉을 해보니 잔선이나 털선을 당연히 생기지 않아 지저분하진 않다. 하지만 형체를 만들어 내야 하니 약간의 선들이 필요 없는 부분에 겹쳐서 지나가야 형태가 만들어지니 한편으로 지저분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정돈되지 아니하고 어수선한 지저분함이 아닌 다른 느낌이다.

컨투어 드로잉은 라인을 끊지 않고 그려야 하니 하나의 사물을 끈질기게 관찰하고 집중해야 한다. 펜을 놓고 싶지만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그릴지 모르는 기대감의 행위에 재미를 붙인다면 저절로 집중력은 좋아질 것 같다. 

나는 처음에 책상에 놓여있는 가위와 손톱깎이 그리고 마우스를 따라 그려보았다.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꽤 괜찮아 보인다. 

마치 신이 되어 하나의 마우스를, 하나의 가위를 창조해 낸 것 같아 직접 그린 그림에 애착이 생긴다. 

화장실도 가지 않고 그린 두 시간이 어찌나 빠른지 하루종일이라도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컨투어 드로잉 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이다.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은 그리는 대상만을 보면서 원 라인으로 그리는 기법이다. 눈과 손의 협응이 일치되어야 한다고는 하지만 보지 않고 그리다 보니 생각한 것과 다른 모습의 형태가 나온다. 직접 나의 얼굴을 그리자 괴괴한 추상화가 되었다. 드로잉의 구상 자체가 추상화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선생님은 내 그림을 보시고 웃으며 말했다. 


“흐트러진 선이 오히려 좋을 수도 있고, 틀려진 것이 이것처럼 더 멋진 그림으로 변형할 수 있어요! 아주 잘했어요” 사실 남들과 비교해 특별히 잘한 것은 없을 텐데도 좋게만 봐주시는 선생님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것이 바로 창의성이라는 것이구나. 


마치 컨투어 드로잉 기법은 레이몬드카버의 대성당을 내가 직접 그린 느낌이었다.


<대성당>은 단편작가로서 절정기에 있던 레이먼드 카버의 문학적 성과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카버의 대표작이다. 좋아하는 김연수작가의 번역으로 2007년에 소개된 이래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잠깐 줄거리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중년의 남성집에 아내의 오랜 친구인 맹인이 방문할 계획이다. 10년 전에 만난 아내의 친구는 상처한 맹인이다. 아내가 오래전 신문의 구인광고를 통해 장님에게 글을 읽어주는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을 때 만난 사람이다. 일을 그만두던 날 맹인은 그녀의 허락을 맡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구석구석을 만졌고, 이 경험은 아내에게 특별한 기억을 남긴다. 시를 쓰는 아내는 이 경험을 시로 남기게 되고, 이후 아내는 장님과 녹음테이프를 주고받으면 오랜 기간 연락을 이어나간다. 맹인 로버트는 드디어 주인공 집을 방문한다. 로버트는 얼핏 보기에 일반인과 다를 바 없고, 폭넓은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며 주인공은 놀라지만, 끝까지 장님으로서만 대하려 한다. 아내가 먼저 잠든 사이 로버트와 주인공은 함께 티브이를 시청한다. 그때 마침 티브이에서 유럽 여러 도시의 대 성당에 대한 프로그램이 상영이고, 로버트는 주인공에게 대성당에 대해 설명해 줄 것을 요청하지만 주인공은 아주 높은 건물이라는 것 외에 설명을 이어가지 못한다. 로버트의 제안으로 주인공은 펜과 종이를 가져오고, 눈을 감고 종이 위에 펜으로 성당을 그린다. 그리고 로버트는 주인공의 손 위에 손을 올려 그가 그리는 그림으로 대성당을 느낀다. 로버트는 대성당에 사람도 그려 넣을 것을 요청하고 주인공은 그가 시키는 대로 한다. 마침내 그림 그리기가 끝나고 로버트는 눈을 떠서 그림을 확인해 보라고 하지만, 주인공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다. 주인공은 이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느낀다.


“It's reallly something.” 말하자면 대성당은 낙원에서 추방된 뒤 자신만의 공간에서 고립된 채 눈멀고 귀먹은 채로 살아가던 한 남자가 자신의 언어로는 표현할 길이 없는 충만한 ‘뭔가’를 보는 것으로 끝나는 단편이다(김연수글 참고)


나는 나의 그림을 보면서 대성당의 맹인처럼 똑같은 충만함은 아닐지라도 아티스트웨이로서의 뿌듯한 하루를 보낸 것 같다.


그게 과연 무엇일까? 궁금하신 분은 당장 종이와 펜을 가지고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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