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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향 Sep 07. 2021

어떤 기억들에 대하여

<벌새>와 <마티네의 끝에서>

 

영화 <벌새>에서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은희가 수없이 엄마를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엄마는 은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어디론가를 향하고 있고, 은희는 불안하다. 그 장면이 어떤 의미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하겠지만, 나에게는 (김보라 감독의 유년 시절의 정서로 추정되는) 이 영화의 핵심 정서라고 느껴졌다. 나 역시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연속적인 기억이 아니라 어떤 단편적인 장면들이 떠오른다. 그 전 후의 사정은 희미하지만, 그 장면의 공기나 감정, 냄새 등은 선명하다.


 10 이전에 3개국에 살았고, 초등학교를 4군데 다녔다. 그래서인지 나의 유년기의 주된 정서는 새로운 곳으로 떠나거나 도착할 때의 불안감이다. 우즈베키스탄 공항에 우유없이 도착해서 우유를 달라며 울고 있는 3살짜리 아이와 정신없어 보이는 엄마의 뒷모습, 적응할 만하면 이사를 가던 이삿짐 차에서의 어떤 감정 같은 . 어떤 것들은 진짜  기억인지 사진으로 봐서  기억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명확하지 않지만, 적어도 나의 '심리적 현실' 그러한 불안감이었던  같다.


트라우마 기억을 다루는 치료법인 EMDR (안구운동 민감소실 재처리 요법) 워크샵을 들을 때마다 내담자가 되는 경험을 하는데, 이번 워크샵에서는 8살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전학왔을 때 왕따를 당했던 기억을 다뤘다. 아이들이 떠들고 있는 교실에 도착했을 때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얼굴이 큰 남자아이가 "우리 반 왕따 왔다"라고 외치는 장면. 그때의 당혹감과 사라지고 싶은 마음을 목표 기억으로 삼았는데, 연상이 진행될수록 나는 외로워졌다. 중학교 때 시험을 잘 봐 사람들이 내 주변에 모였을 때 처음으로 느꼈던 소속감, 하교하고 돌아와 책 속의 세계에 푹 빠졌을 때 비로소야 느꼈던 안정감, 웅성거리는 교실에서 혼자 헤드폰을 끼고 헤비메탈을 들었던 것. 필사적으로 어딘가에 소속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혼자 있을 때 가장 편안했구나, 라는 깨달음과 동시에 나는 더 슬퍼졌다.


다시 목표 기억으로 돌아갔을 때 그 8살 아이는 짱구 수준으로 작아져있었다. 너무 작고 가벼워서 그냥 한 손으로도 들 수 있는 정도의 어린아이로 보였다. 나의 치료자는 그 아이를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어봤고, 나는 아이를 안아 제 자리에 앉히고 너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는 연상을 계속해갔다. 나에게 그런 말을 해줬던 존재들을 더듬었다. 처음으로 나를 이해해주는 언니를 만났을 때 같이 걸었던 숲의 빛깔, 친구들에게 내가 하는 말이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느꼈던 날 먹었던 초밥의 맛, 왕따 피해자들이 쓴 책을 펀딩하고 받았을 때의 가슴이 부풀어오르던 감각, 왕따 경험을 고백하며 자기와 같은 아이들을 치료해주는 심리상담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던 아이를 진료했을 때 해줬던 말들을 떠올렸다. 그날 워크샵이 끝나고 나는 많이 울었지만, 스스로를 더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웃고 있고 다들 그곳에 있는 게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나는 영원히 이곳에 섞이지 못하는 이물질이 된 기분. 그 기분은 내 청소년기를 지배했고 성인이 된 후에도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지만, 외로움은 나의 자산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외롭지 않고, 과거의 외로움을 타인을 돕는데 쓸 수 있는 튼튼한 어른이 되었다. "인간은 바꿀 수 있는 것은 미래뿐이라고 믿고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미래가 항상 과거를 바꾸고 있습니다." 소설 <마티네의 끝에서>의 한 대사처럼, 나의 과거는 미래의 나를 통해 지금도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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