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리망스 Jan 23. 2024

이 월급 받고 회사 다니라고요?

사실 월급에 대한 고민은 계약직 근무 중후반부터 시작되었다. 초반엔 처음 해보는 회사생활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언젠가 정규직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초점을 두어 월급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느새부턴가, 월급명세서에 급여가 찍히면 내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2017년 7,8월 급여

그럴 만도 한 것이, 세금 제외하면 158만원이 안되는 금액이 월급여로 통장에 찍혔기 때문이다. 아무리 계약직이라지만 세후 158만원은 너무한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월세 30만원, 핸드폰 요금 5만원, 교통비 8만원, 보험료 2만원 등 고정지출을 제외하면 약 100만원 남짓한 금액이 실제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여기서 경조사비, 식대 등을 지출하면 저축은 언제 하지, 집은 언제 사지..., 하는 암담한 생각이 들곤 했다.


더불어 나와 비슷한 시기에 똑같이 계약직으로 입사한 현지씨의 탄식은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커지게 하는 데에 일조하곤 했다.


"지금 이 월급 10년 동안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도 내 대학 등록금 안된단 말이야, 씨..."


미국에서 명문대를 나온 현지씨의 4년간 총 대학 등록금은 1억원이 훌쩍 넘었고, 그의 투자금액에 대한 상환 기간을 현재 월급으로 산정하고 있노라면 나 또한 돌멩이만했던 분노가 바위처럼 커지곤 했다.


하지만 당장 공채를 준비해서 이직할 자신은 없었다. 나는 대학시절 동안 내가 좋아하는 불어불문학과 법학만 파고들었지 직무 관련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나름대로 인턴도 해보고, 여러 교육 이수와 봉사활동 경험도 있긴 했지만 경영학과를 졸업해서 직무 관련 경험을 잔뜩 쌓은 취업깡패들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정규직 기회가 올 때까지만 참아보자고 스스로를 달래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냉정하지만 사회에서의 나의 값어치가 월급이었겠구나 싶다. 스스로가 생각했을 때에는 학창 시절 공부도 열심히 했고 직장에 들어가기만 하면 누구보다 빨리 성장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N년차 경력직들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나는, 수많은 대학 졸업생들 중 한 명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취업시장에서의 나를 바라보고 경험을 먼저 쌓은 후 정규직에 도전하겠다는 생각은 괜찮은 결정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계약직 경험을 자소서에 잘 녹여서 여러 대기업에 도전했을 때, 승률이 많이 올라갔었다. 아마 현장에서 일해보지 않고 계속 책상에 앉아 준비만 했더라면 경험하지 못했을 터였다.


다만 하나 아쉬운 것은, 첫 월급에 대한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던 것이다. 대기업 합격 후 첫 월급을 탄 동생은 큰 금액에 만족스러워하고,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며 첫 월급을 충분히 기념했었다. 하지만 나는 계약직 당시 월급을 부모님께 드리기는커녕 부모님 지원을 받아 월세를 냈었다. 월급이 적은 것보다도 처음으로 경제적 독립을 꾀했는데 부모님께 용돈 한 푼 못 쥐어드리는 딸이라는 게 가슴 아팠다. 그래서 내게 첫 월급은, 가슴 한 켠이 아린, 그런 기억으로 남아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